brunch

비너스 피부의 비밀 '달걀'

산드로 보티첼리와 앙드레 코스톨라니

by 김큐

산드로 보티첼리는 일어나자마자 시장으로 향했다.

아침햇살은 눈 부셨지만 한기가 채 가시지 않은 아침 바람은 제법 차가웠다.

옷을 여미며 급한 마음으로 시장에 들어서자 상인들이 익숙한 듯 인사를 건넨다.


"산드로~ 오늘도 일찍 나오셨네요~ 달걀 구하러 가세요?"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그의 걸음은 바쁘다.

달걀 상인들이 모여 있는 곳에 다다라서야 걸음을 멈춘 그가 대뜸 한 상인에게 말을 건다.

"오늘 아침에 낳은 가장 신선한 걸로 주게. 오늘은 얼마 받을 건가?"

"10개에 2솔디 주셔야 합니다. 아시면서 만날 가격 물어보시고 깎자고만 하십니까!"

상인의 말투에 짜증이 섞여 있다.


"10개에 1솔디오 6데나리 합시다. 빨리 싸주시게"

상인의 답을 듣지도 않고 그가 테이블에 돈을 꺼내 놓는다.

"아침 댓바람부터 만날 나타나서는 제일 좋은 놈으로 골라서 가져가면서 가격은 한 번도 제대로 쳐준 적이 없어요. 화가님 정말 너무하십니다"

투털거리며 상인이 산드로 보티첼리가 내민 가죽 가방에 짚과 함께 달걀을 푹 쑤셔 넣는다.

가죽 가방을 챙긴 산드로 보티첼리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됐어! 오늘은 비너스의 백옥 같은 피부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겠군"



화가와 달걀장수

이른 아침부터 산드로 보티첼리가 장터에서 달걀 장수와 흥정을 한 이유는 템페라(Tempera)라 때문이다. 템페라는 색을 내는 안료에 달걀의 노른자를 섞어 만든 일종의 물감이다. 이 물감으로 그린 그림을 통칭해 템페라 또는 템페라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화학 물감이 개발되기 전 화가들은 색을 구현할 안료를 직접 주변에서 찾았다. 또 안료가 변색되지 않고 오래가도록 하는 방법도 끊임없이 연구했다. 그런 연구 결과 중 하나가 템페라였다. 일반적으로 템페라는 곱게 간 안료에 계란 노른자와 식초, 무아과즙 등을 섞어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상황에 따라 꿀이나 우유를 섞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재료들만 놓고 보면 주방 식재료나 별반 다름없어 화가의 작업실이나 당시 주방의 풍경이 비슷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템페라에 식초가 들어간 이유는 천연재료들이 상하는 걸 막는 용도였고, 달걀노른자는 썩어 놓은 재료들이 잘 결합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더구나 달걀노른자는 마르는 과정에서 산소와 만나 산화되면 얇은 막을 형성하는데. 이게 그림의 보존력을 높여줬다. 화학의 발달로 합성 물감이 등장하가 전까지 화가들에게 가장 사랑받은 물감인 템페라는 단점도 있었다. 너무 쉽게 마른다는 것이었는데, 많이 만들면 굳어버려 사용하지 못하니 매번 그릴 때마다 새로 만들어야 했다. 이런 특성 때문에 화가들은 매일 상인들과 달걀 수량과 가격 등을 흥정을 했던 것이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산드로 보티첼리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대표적 화가이다. 그는 종교와 신화적 주제를 함께 작품에 다룬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작은 '비너스의 탄생(The Birth of Venus)'이다.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비너스가 바다 거품에서 태어나 육지로 올라오는 모습을 생생하게 담았다.

산드로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산드로 보티첼리는 이 작품에서 템페라의 특성을 잘 활용했다. 특히 비너스의 아름답고 투명한 피부톤, 푸른 바다와 하늘의 자연스러운 색감을 잘 살려냈다. 앞서 템페라의 단점으로 언급한 빨리 말라버리는 특성은 템페라로 그린 그림들의 독특한 특징으로도 나타난다. 화가들이 색을 칠하는 사이 굳어버리니 얇게 여러 번 칠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템페라화는 표현이 매우 정교하고 세밀하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런 특징은 비너스의 탄생에도 잘 드러나는데, 그림 중앙을 차지하는 비너스의 생동감 넘치는 금발과 매끈하면서도 생기 있는 피부톤 등이 그렇다. 아마도 템페라가 아니었다면 그 시대 이런 표현은 불가능했을 것 같다. 아침마다 신선한 달걀을 구하지 못했다면 말이다.


앙드레 코스톨라니의 '달걀 모양 이론(Egg Theory)'

앙드레 코스톨라니라는 유럽의 워런버핏이라 불리는 투자대가이다. 헝가리에서 태어나 주로 프랑스 금융가에서 활동했는데, 단기 시장 변동에 흔들리지 않는 장기 투자를 강조한 인물이다. 그가 한 유명한 말이 "우량주를 몇 종목 산 다음, 수면제를 먹고 몇 년 동안 푹 자라"이다. 실제 그는 모두가 두려움에 떨 때 과감한 투자로 엄청난 수익을 올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대표 사례가 1차 세계대전 이후 1930년 독일이 발행한 이른바 영-본드(Young bond) 투자이다. 영본드는 독일 정부가 1차 세계대전 패전 배상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행한 채권이다. 하지만 히틀러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기 전 채무불이행을 선언하며 휴지조각 취급을 받았었다. 하지만 앙드레코스톨라니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6년 이 채권을 집중 매수해 5년 뒤 1400%에 이르는 수익을 올리고 매각한다. 전후 독일이 국제사회에 복귀하기 위해서는 채무불이행을 해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실제 상환 가능성이 커지자 금융시장에서 영-본드의 가격이 치솟았고 그는 250프랑에 산 채권을 3만 5천 프랑에 매각했다.

앙드레 코스톨라니 '달걀모양 이론'

템페라를 이야기하다 갑자기 앙드레 코스톨라니를 언급한 건 그가 주장한 달걀 모양 이론(Egg theory)을 소개하고 싶어서이다. 주식시장의 순환주기를 달걀모양의 곡선으로 표현해 시장의 흐름과 투자자의 심리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달걀의 겉면을 따라 올라가는 것 주식시장의 상승 반대로 내려가는 건 하락을 의미한다. 위에서 아래로 달걀을 삼등분해 앙드레코스톨라니는 가장 윗부분은 주식을 팔아야 할 때 그리고 중간은 기다릴 때 아랫부분은 주식을 살 때로 규정한다. 다시 말해 주식이 하락해 투자심리가 극도로 부정적인 침체기에 주식을 사고 투자심리가 과열돼 가격이 최고점에 도달할 때 주식을 매도하라는 얘기다. 그럼 주식시장의 고점과 저점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앙드레코스톨라니가 제시한 기준 중 하나는 금리이다. 금리가 높을 경우 사람들은 주식보다는 안정적인 이자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예금이나 채권을 선호하게 되고 금리가 낮아지면 조금이라도 더 높은 수익을 찾아 주식시장으로 이동한다고 봤다. 매우 간단하고 다들 아는 얘기 같지만 이 이론은 8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주식 투자의 기본으로 여겨진다.


트럼프의 관세가 흔든 주식시장... 지금은 기회?

트럼프

최근 주식시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이슈로 연이어 추락하고 유예 발언에 급반등하는 등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주식시장은 탐욕과 두려움으로 움직인다고 얘기한다. 탐욕 때문에 실제 가치 보다 주가가 더 오르고 두려움 때문에 더 빠진다는 것이다.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그래서 전체 투자금의 30%는 대중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70%는 대중과 반대방향으로 움직일 것을 권했다. 시장 하락의 트리거가 된 트럼프의 무차별 관세 부과가 아직 진행 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주식시장의 하락이 이젠 끝난 건지 아니면 또 다른 추락이 있는 건지 예측하기 힘들다. 하지만 앙드레 코스톨라니의 달걀이론에 따른 투자법 신뢰한다면, 주식을 너도나도 팔면서 시장이 겁에 질려 있는 순간은 주식 투자를 조금씩 늘려야 하는 타이밍일 수도 있다.



추가 읽을 거리들이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그림 출처>산드로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https://artsandculture.google.com/asset/the-birth-of-venus-0002/MQEeq50LABEBV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