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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의 추락과 '막시밀리안 1세'

'막시밀리안과 마리 공주의 결혼'

by 김큐

1947년, 뉴욕 매디슨 애비뉴의 한 광고대행사. 회의실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담배 연기가 가득하고 책상엔 커피잔과 여러 장의 광고 시안이 보인다.


"강렬한 상징이 필요해. 드비어스가 원하는 건 단순히 반짝이는 보석을 알리는 게 아니야"

팀장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광고주가 원하는 걸 직원들에게 다시 주입시키려는 듯 제법 강한 어조로 말한다.

이때 누군가 말을 잇는다


"사람들이 보석을 비싸게 사는 본질을 봐야 하지 않을까요?

반짝이고 예뻐서 보석을 '살까요? 아니거든요.

뭐랄까요...... 신분상승 같은 느낌?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중세 유럽 왕족들이 루비, 에메랄드 같은 거 차고 다니면서 너네들은 이런 거 없지?

우린 달라 뭐 이런 느낌으로 보석을 마치 신분의 상징처럼 여겼으니까요"


머뭇거리며 테이블 끝의 한 직원이 입을 연다

"다이아몬드에 그런 스토리가 필요하다면......

며칠 전 신문에서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된 막시밀리안 1세 얘기를 봤거든요.

부르고뉴 지역을 얻으려고 마리 공주랑 결혼할 때 다이아몬드 반지를 들고 갔다고......"


회의실 사람들이 순간 서로 눈을 마주친다.


"황제와 다이아몬드 그리고 결혼? 이거 괜찮은데!"

"그들의 사랑이, 영원히 함께 하자는 약속이 다이아몬드 반지라는 거잖아"

‘A Diamond is Forever'


"다이아몬드 이제 단순한 보석이 아니라고

사랑의 표상이고 이 사랑을 영원히 함께하자는 약속의 상징이 될 거야"



'막시밀리안 1세와 마리 공주의 결혼'

'막시밀리안과 마리 공주의 결혼'

안톤 페터는 오스트리아 역사화와 전통을 계승한 화가이다. 그의 그림은 대부분 왕실과 귀족의 의뢰로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매우 사실적이고 극적으로 담았다. '막시밀리안 1세와 마리 공주의 결혼' 역시 왕실 역사의 결정적 장면을 옮겨 놓은 작품이다. 왕가의 결혼은 늘 있는 일임에도 합스부르크 왕가가 이 장면을 역사적으로 남기려 했던 이유는 유럽 변방에 머물던 합스부르크가를 유럽 중앙으로 끌어올린 결정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재계 100위 밖의 기업이 M&A 한건으로 재계 서열 5위권 안으로 들어온 사건이라고 할까.


실제 막시밀리안 1세는 부르고뉴의 상속녀 마리 공주와의 혼인으로 지금의 프랑스 동부 지역인 브루고뉴를 비롯해 샹파뉴 등 프랑스 북동부지역과 벨기에, 네덜란드 여기에 룩셈부르크 지역까지 얻게 됐다. 막시밀리안은 마리 공주의 환심을 사기 위해 청혼 선물로 다이아몬드 반지를 보냈다. 하지만 결혼식을 올리기 전 마리 공주의 아버지 용담공 샤를이 사망했고. 프랑스 왕 루이 11세는 남자 후계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마리 공주의 부르고뉴 지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프랑스는 전쟁을 일으켰고 막시밀리안 1세는 약혼자인 마리 공주를 지키겠다며 서둘러 그녀와 결혼했다.


중앙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두 인물이 바로 막시밀리안 1세와 부르고뉴의 마리 공주이다. 안톤 페터는 두 인물을 중앙에 배치하고 서로를 응시하는 시선과 표정 그리고 마주 잡은 손(손에는 다이아반지가 그려져 있다)을 통해 많은 것을 표현했다. 고전주의 역사화가 그렇듯 인물과 배경이 명확히 구분되도록 빛과 색채를 사용한 것도 눈에 띈다. 상대에게 매료된 것인지 아니면 의심을 품고 있는 것인지 모를 두 사람의 눈빛과 시선에선 두려움과 희망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A Diamond is Forever

드비어스 광고

막시밀리안 1세의 다이아몬드 반지는 드비어스의 1947년 광고 캠페인의 모티브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사용되는 이 광고 카피는 광고 업계에선 성공한 광고 캠페인의 대표적 사례이다. 드비어스(De Beers)는 전 세계 천연 다이아몬드 시장을 한때 독점하며 쥐락펴락하던 사업자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이슈가 된 반클리프 아펠(Van Cleef & Arpels)과 글로벌 다이아몬드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회사이다. 드비어스는 영국이 기반이고 반클리프 아펠은 프랑스가 기반이다. 드비어스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엄청난 다이아몬드 광맥을 소유하며 판매 업자들의 카르텔까지 조직해 관리하는 등 공급량과 가격을 조절해 다이아몬드 시장을 지배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거대 다이아몬드 광맥은 드비어스사의 가장 큰 고민거리기도 했다. 매년 백만 캐럿에 달하는 중급의 다이아몬드를 쏟아내는 광산 때문에 가격 유지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이 광산에서 생산하는 다이아몬드 양은 전 세계 천연 다이아몬드 생산량의 5배가 넘었다. 판매자 카르텔을 통해 공급량을 조절하며 가격을 유지하는 것도 한계가 존재한다. 더구나 중급 다이아몬드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이들에게는 새로운 소비처가 필요했다.


1·2차 세계 대전과 미국의 부상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은 사치품을 외면했다.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주요 보석 시장은 이 시기 심각한 침체기에 들어간다. 드비어스가 이 시기 미국을 주목했다. 미국은 세계 대전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고 도리어 재건에 열을 올리는 유럽 등 주요 국가들을 대상으로 큰돈을 벌었다. 이를 바탕으로 급성장하는 미국 경제는 두터운 중산층을 만들어냈고, 드비어스에게 이들은 과잉 생산된 중급 다이아몬드를 처리할 최적 마켓이었다. 문제는 이들의 다이아몬드 구매를 어떻게 자극할 수 있느냐였고 그걸 해결한 게 바로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라는 광고 마케팅이다. 역사는 막시밀리안 1세와 마리의 결혼이 만들어 낸 왕실 동맹에 큰 의미를 뒀지만 드비어스에게는 마리의 손에 끼워진 다이아몬드 반지가 더 소중했던 셈이다. 청혼의 순간을 떠올리면 반지가 빠질 수 없고, 열이면 아홉은 그 반지는 다이아몬드 반지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결혼 문화는 그들의 영향력이 닿는 여러 국가들로 퍼져나갔고 다이아몬드 반지도 같이 팔려나갔다. 미국은 현재 전 세계 다이아몬드 최대 소비 시장이며, 다이아몬드 소비의 50%를 차지한다.


트럼프 관세에 다이아몬드 가격 폭락

다이아몬드 가격 추이 출처: 조선일보

얼마 전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신문에 실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고율 관세 영향이 다이아몬드 시장에 큰 타격을 줬다는 내용이다. 금은 안전자산으로 부각돼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데 말이다. 주요 다이아몬드 유통 시장 중 하나인 벨기에 앤드워프의 다이아몬드 하루 선적량이 미국의 상호관세 발표 이전에 비해 1/7 수준으로 급감했다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즈의 보도도 있었다. 미국은 다이아몬드에 대해 그간 사실상 관세를 부과하지 않았다. 다이아몬드가 고가의 사치재이지만 미국 내에 가공 산업이 전무해 사실상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는 원석을 캐낸 광산이 있는 곳이 아닌 이들 원석을 커팅 등 가공한 곳을 원산지로 보는데, 이 가공 시장의 90%를 인도가 장악한다. 불행히도 트럼프 대통령이 인도에 27% 세율의 상호관세를 부과했고 다이아몬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금과 구리 등 산업재로 쓰이는 광물들은 상호관세에서 제외됐음에도 말이다.


관세는 핑계,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역습

다이아몬드 가격 추락이 꼭 관세 때문만은 아니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공세도 한몫을 하고 있는데,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실험실에서 기계장치를 이용해 만드는 인공 다이아몬드를 말한다. 외관과 성분이 거의 동일해 천연 다이아몬드와 육안으로는 구별이 힘들 정도이다. 그럼에도 가격은 천연 다이아몬드의 1/10 이하 수준으로 저렴하다. 더구나 환경을 중요시하는 트렌드까지 가미하며 상대적 우월성을 뽐낸다. 천연 다이아몬드를 캐내기 위해서는 3~4km 깊이로 땅을 파내고 흙 등 오물을 제거하기 위해 상당량의 물을 사용해야 하는데,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땅도 파지 않고 물 사용량도 훨씬 적다. 더구나 여러 다이아몬드 광산 등에서 불거지는 아동 노동착취 문제도 없다. 가성비와 착한 소비 트렌드까지 맞물리며 젊은 층의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수요가 증가하자 천연 다이아몬드가 수요가 줄고 가격도 하락 추세이다. 실제 국제 다이아몬드거래소에서 산출하는 다이아몬드 지수는 1년 전(2024년 4월) 107을 웃돌다 지금은 90 초반으로 떨어져 10% 이상 하락했다. 다이아몬드 지수는 2001년 2월 가격을 기준점 100으로 삼아 산출하니, 이 지수가 지금 100 아래에 있다는 20여 년 전보다 다이아몬드 가격은 떨어졌다는 의미이다.



<그림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aximilian_I_and_Maria_von_Burgund.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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