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빈센트 반 고흐의 초상'
19세기 유럽을 풍미했던 술 '압생트'
지금 우리가 소주를 즐기 듯 19세기 유럽 사람들은 압생트를 즐겼다. 당시 프랑스 전역에 판매된 압생트 종류가 1000개가 넘었다고 하니 얼마나 대중적인 술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압생트는 쑥을 주 원료한 증류주 인데 도수가 45~74도에 달하는 독주이다. 압생트라는 이름도 쓴 쑥이라는 라틴어 '압신티움(Absinthium)에서 유래했다.
19세기 유럽의 압생트의 인기는 포도 병충해의 영향이다. 필록세라(Phylloxera)라는 작은 진딧물이 1850년대 후반부터 1890년대 후반까지 유럽 전역을 휩쓸었는데, 포도밭이 큰 피해를 봤다. 포도 수확량이 크게 줄었고 와인 가격은 뛰었다. 와인이 비싸지자 서민들이 대안으로 찾은 게 압생트이다. 실제 프랑스 와인 생산량은 1875년 8,450만 헥토리터였는데, 1889년엔 2,340만 핵토리터로 급감했다. 이로 인한 프랑스의 경제적 손실이 10억 프랑에 달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근본위제였던 19세기 1프랑이 약 0.3225g에 해당하니 지금 기준으로 계산하면 우리 돈으로 18조 원 (금 1g 기준 약 5만 6000원 시세 적용 )이 넘는 피해다.
그럼 이런 포도밭의 피해는 어떻게 끝이 났을까? 유럽산 포도 품종에 미국산 품종을 접붙여서 해결했다. 필록세라에 취약했던 유럽산 포도와는 달리 미국산 포도는 저항이 강했기 때문이다.
녹색의 요정 vs 에메랄드의 지옥
쑥을 원료로 한 압생트는 녹색이다. 이 색깔 때문에 압생트는 녹색의 요정이라 불렸고 또 한편에서는 중독 문제 등으로 에메랄드의 지옥이라고도 칭했다. 그럼에도 수많은 예술가들은 압생트에 의지했는데, 반 고흐도 그중 한 명이었다. 앙리 드 룰루즈 로트렉이라는 작가가 그린 '반 고흐의 초상'엔 테이블에 놓인 압생트 잔이 그려져 있고, 반 고흐가 자신이 직접 그린 작품 중에도 '압생트와 카페 테이블'이라는 그림이 있다.
잘 나가던 압생트는 20세기 초반 음주법으로 금지된다. 압생트에 들어있는 투존이라는 성분이 뇌세포를 파괴해 환각을 일으키고 쉽게 중독에 빠지게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후 여러 연구 등을 통해 위험성이 과장됐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압생트에 함유된 유해물질은 충분히 조절 가능하다는 주류업계 주장이 받아들여져 1981년 다시 합법화 됐다.
압생트 중독이 만들어낸 '별이 빛나는 밤'
반 고흐의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에'가 압생트 중독의 산물이라는 주장도 있다. 밤하늘의 별들이 소용돌이치는 듯 묘사된 건 환각 때문이고 노란색이 많이 사용된 건 사물이 노랗게 보이는 황시증을 앓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앞서도 언급했듯 압생트 중독과 유해성은 과장 됐다고 밝혀졌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1980년대 우지 파동을 일으켜 라면 업계 부동의 1위 '삼양라면'을 끌어내린 것처럼, 당시 프랑스 와인업계가 압생트에게 빼앗긴 시장을 되찾기 위해 압생트의 유해성을 과장한 것으로 해석한다. 물론 고흐는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이 알코올 중독에 가깝다고 인정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고흐의 그림 스타일이 오로지 압생트 중독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과한 주장이라고 하겠다.
<참고자료>
https://www.vangoghmuseum.nl/en/collection/d0693V1962
https://www.vangoghmuseum.nl/en/collection/s0186V1962
https://artsandculture.google.com/asset/the-starry-night-vincent-van-gogh/bgEuwDxel93-Pg?hl=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