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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큐 May 08. 2024

불에 탄 옛 증권거래소와 명화

 페더 세버린 크뢰이어 '코펜하겐 증권거래소에서'


덴마크 옛 증권거래소 건물에 화재가 발행해 큰 피해가 발생했다. 건축된 지 400년에 가까운 문화재급 건물에 불이 났으니 이를 지켜본 덴마크 국민들의 마음이 어땠을지 상상이 간다.

덴마크 옛 증권거래소 화재 관련 뉴스

우리도 국보 1호 숭례문의 화재를 TV를 통해 생중계로 봤던 기억이 있으니 말이다. 이 건물은 1640년, 국왕 크리스티안 4세의 지시로 지어졌다고 한다. 그는 코펜하겐을 무역 중심지로 키우고 싶어 했다. 흥미로운 건 4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 건물을 덴마크 상공회의소 본부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국왕 크리스티안 4세의 꿈을 현재의 덴마크 상공인들이 이어받아 이 건물을 사용하고 있었던 셈이다. 또 우리나라에 증권거래소가 설립된 게 1956년이니, 이들과 우리의 주식투자 경험이 무려 300년이나 차이가 난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된다.  

 

급히 옮겨지는 '코펜하겐 증권거래소에서'

긴박했던 명화 구출작전 그리고 그림 속 인물 50명

역사가 오래된 만큼 이 코펜하겐 옛 증권거래소 건물에는 국보급 그림과 물건들이 꽤 보관돼 있었다. 화재가 나자 이런 문화재급 물건들이 급히 밖으로 옮겨졌는데, 그중에서도 언론의 관심을 받은 작품이 페더 세버린 크뢰이어의 '코펜하겐 증권거래소에서'이다. 실제 이 작품이 급히 여러 사람들에 의해 옮겨지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돼 TV 뉴스로 보도되기도 했다. 이 그림은 큰 홀에 연미복을 차려입고 탑햇을 쓴 50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그린 단체 초상화이다. 1895년에 완성된 이 그림에 그려진 인물들은 당시 덴마크의 내로라는 상업과 금융업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그림 위치에 자릿값이 있었다.

페더 세버린 크뢰이어 '코펜하겐 증권거래소에서'(출처 위키피디아)

당시 코펜하겐 증권거래소는 크뢰이어의 작품 '코펜하겐 증권거래소에서'를 포함해 4개의 단체 초상 작품을 구상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덴마트의 주요 산업이었던 무역, 농업, 해운업 등을 대표하는 인물들을 그려 넣은 단체 초상화로 건물의 가장 큰 홀(그레이트 홀)의 사방을 채우려던 계획이었다. 하지만 50명을 그려 넣은 이 작품만 완성됐는데, 아마도 비용 문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코펜하겐 증권거래소에서'라는 작품의 제작비도 그림 속에 그려진 인물들에게 기부 명목의 자릿세를 받아 충당했다. 앞쪽 가장 눈에 띄는 자리는 800 크로네(DKK), 사람이 몰려있는 중앙 자리는 500 크로네 그리고 그 뒤쪽은 300 크로네 이런 식으로 말이다. 모든 걸 돈의 가치로 평가해 사고파는 현장인 증권거래소와 그림 속 인물의 위치마저 값어치를 부여해 그려진 그림. 썩 잘 어울리는 조합이긴 하다. 어쨌든 130여 년 전 덴마크를 이끌던 산업 역군 50명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이 그림은, 현재 덴마크에서 국보급 자산이다.    


빛을 사랑한 '페데르 세버린 크뢰이어'

덴마크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서 회화 교육을 받은 크뢰이어는 1877년에서 1881년 유럽 여러 지역을 다니며  인상주의 화가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진다. 

특히 프랑스에 머무는 동안 모네, 드가, 르누아르 등과 만나며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한다. 그는 이런 단체 초상화뿐 아니라 산업 현장의 모습도 포착해 그림으로 남겼는데, 인상주의 화가들의 특징인 빛의 활용이 인상적인 작품이 '프라 부르마이스터 오그 웨인의 주조소에서'라는 작품이다. 달아오른 쇳물과 그 주변의 일군들을 그려 넣은 그림에는 쇳물의 온도가 느껴질 정도의 밝은 빛 그리고 그 빛 때문에 생겨난 그림자와 땀 흘리는 노동자들의 얼굴에 반사된 빛들이 잘 묘사돼 있다. 


텐마크의 땅끝 '스카겐'과 화가들

크뢰이어는 이른바 스카겐 화가들 중 한 사람이다. 스카겐은 덴마크 북쪽 해안 끝 어촌 마을이다. 

덴마크 최북단 어촌마을 스카겐

19세기 후반 젊은 예술가들이 사실주의와 자유주의 등에 영향을 받아 도시를 떠나 고립된 지역으로 옮겨갔는데, 그곳이 바로 스카겐이다. 화가들 뿐 아니라 조각가, 시인, 음악가, 건축가들까지 이곳에 모여들어 자유로운 예술활동을 펼쳤다고 한다. 크뢰이어 역시 이곳에서 머물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 

덴마크 스카겐 미술관에는 당시 활동했던 많은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는데,  온라인으로도 얼마든지 작품 감상이 가능하다. (https://artsandculture.google.com/partner/skagens-museum)


스카겐 화가들의 작품에는 저녁 그림이 많다는 것도 특징인데, 크뢰이어가 14년에 걸쳐 완성한 말년 작품 '스카겐 해변의 한여름 전야 모닥불' 역시 해변의 저녁 풍광을 그렸다. 

'스카겐 해변의 한여름 전야 모닥불'

이 그림에는 숨겨진 포인트 몇 가지를 들여다보면, 먼저 모닥불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배치이다. 모닥불의 밝은 빛이 비치는 쪽에는 예술가들과 자산가들을 배치했고 상대적으로 어두운 부분에는 스카겐 지역 사람들을 배치했다는 점이다. 근대화가 진행되며 왕정시대가 마감하고 신분제도는 약화됐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사회적 차별을 빛과 사람들의 배치로 표현하고자 했던 건 아날까 생각해 본다. 또 그림 속 가장 밝은 빛인 모닥불을 중심으로 왼쪽 끝의 희미한 등대와 오른쪽 하늘에 떠 있는 달빛 이렇게 세 개의 광원을 삼각형 구도로 만들어 넣어 둔 점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크뢰이어는 이 작품을 스케치한 후 암 투병을 했고 14년이나 걸려 작품을 완성했다. 그 후 3년 뒤 숨을 거뒀다. 



그림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Fra_Burmeister_og_Wains_jernst%C3%B8beri.jpg

https://en.wikipedia.org/wiki/Peder_Severin_Kr%C3%B8yer#/media/File:Fra_K%C3%B8benhavns_B%C3%B8rs.jpg

https://g.co/arts/RNKGQxXgiJdVy4K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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