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그대
이별 후에 찾아오는 온갖 감정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다양한 지옥을 맛보게 한다. 이 고통이 언제 끝날지, 끝이 있긴 할는지 의사에게 진단받는 기분으로 검색창에 '이별 후 단계'를 쳐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이론이 있다. 바로 미국의 심리학자 퀴블러 로스(Kubler Ross)의 '임종 5단계'이다.
퀴블러 로스의 연구에 따르면, 임종을 선고받은 사람은 현실을 직시하기까지 감정 변화의 5단계를 겪는다고 한다. 이는 임종에 관한 이론이지만 갑작스럽게 소중한 존재 또는 가치를 상실했다는 점에 있어서 이별에도 적용이 된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도민준은 대학교 사회과학부에서 '긍정심리학' 강사로 나온다. '별에서 온 그대'의 13화에서 도민준이 강의 중에 퀴블러 로스의 이 이론을 설명한다. 도민준의 목소리가 내레이션으로 깔리면서, 도민준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천송이의 일상 장면들이 예시로 나온다.
이 나쁜 자식, 어떻게 복수하지??
이별 통보를 들으면 차인 쪽에서는 가장 먼저 믿기지 않는 감정과 더불어 분노가 찾아온다.
"지금까지 사귄 시간이 얼만데,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했는데 헤어지자고 말을 해?"
그리고 친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거나 카톡을 한다. 곧장 달려와 술을 사주는 친구들의 맞장구와 위로를 들으면서 욕을 한바탕 퍼붓고 나면 속이 좀 후련해지는 듯하다.
말이 돼? 지금 몰래카메라지?
그가 떠난 것은 이유가 있을 거야, 내가 싫어진 게 아닐 거야. 혹시 무슨 사정이 있어서 잠깐 헤어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온갖 드라마의 시나리오를 쓰게 되는 단계다. 어제까지만 해도 사랑한다고 말해줬는데. 나에게 닥친 이별을 믿을 수가 없다.
그래, 걘 원래 내 스타일이 아니었어.
무뚝뚝하고 말도 싸가지 없게 하고.
그 사람의 단점들, 안 맞았는데 관계 유지를 위해 참고 있었던 것들을 떠올리면서 합리화를 한다.
"잘 헤어졌어, 더 안 끌고 지금 헤어지길 잘했지."
이 단계가 찾아오면 얼핏 쿨하게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 길고 긴 터널이 남아 있다.
이건 우는 게 아니야. 눈에서 눈물이 난 거야.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우울의 단계. 평소엔 생각 없이 듣던 발라드 가사들이 모두 내 얘기 같다. 성시경, 심규선, 윤종신, 벤 등등.. 온갖 명곡의 가사들은 어쩜 그리도 내 마음과 같은지. 플레이리스트는 온통 이별 노래로 도배가 돼 있다. 혹시 그 사람과 자주 가던 곳을 지나치기라도 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온다. 밤이 되면 '숨김 친구'로 해두었던 그 사람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면서 혹시나 마음이 바뀌진 않을까, 다시 돌아오진 않을까 미련을 가져 본다.
그래, 내가 더 이뻐져서 네가 땅을 치게 만들어주마!
마지막 수용의 단계가 되면 비로소 이별했다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대부분의 정신 질환들이 현실을 직시하려고 하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비추어보면 이별의 수용은 매우 건강한 감정이다. 내가 지금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을 때,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고 내 삶의 주도권을 가져오게 된다.
이 마지막 단계에서 남녀의 모습이 확연히 다르다. 천송이, 즉 여자는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러닝머신을 뛰며 스스로의 발전에 집중한다. 그러나 도민준, 남자(남외계인?)는 자기 파괴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견딜 수 없는 상실감에 여자보다 훨씬 더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터넷에 떠도는 글 중에 '이별 후 남녀 변화'라는 유명한 짤이 있다. 여자는 이별 직후 힘들어하지만 한 달이 지나면 괜찮아지는 데 반해, 남자는 이별 직후 기쁨과 해방감을 느끼고 한 달이 지나면 후회하며 힘들어하는 그림이다. 이 또한 아마 성별에 따른 수용 단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지 않을까.
사람마다 이별의 단계를 겪어내는 기간은 다르지만 결과적으로는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상실로 인한 슬픔과 우울에서 나를 꺼내기 위해 내 뇌가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이 모든 단계들을 지나고 나면
반드시 괜찮아지는 단계가 온다는 뜻이다.
예전엔 나도 갑작스러운 이별을 겪고 밀려오는 분노와 슬픔, 우울함을 감당하지 못해서 일부러 엄청 바쁘게 지낸 적이 있었다. 감정에 신경 쓸 겨를도 없게 몸을 혹사시켰다. 밀려오는 감정들을 감당하기가 벅차서 한 구석에 밀어 두고 외면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헤어짐의 상처는 몇 년이 지나도 틈만 나면 떠올라서 두고두고 나를 괴롭히곤 했다.
오히려 온전히 감정들을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졌을 때 회복이 훨씬 빨랐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고 친구들 앞에서 엉엉 울어도 보고, 슬픈 발라드를 일부러 몇 시간 동안 들으면서 눈물을 흘려도 보고, 시체처럼 방에 누워서 하루 종일 멍하게 있기도 해 보고,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좋았던 추억들을 떠올려봐도 좋다. 다만, 절대 피해야 할 것은 그 순간의 감정을 외면하는 일이다. 이별 후에 찾아오는 감정은 결코 이상한 것이나 피해야 할 것이 아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기분이 좋으면 노래를 부르듯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부디 모든 감정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길.
그 누구보다 당신을 가장 사랑하는 자기 자신이,
온 힘을 다해 당신을 응원하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