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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제발 그만요.

친정과 시댁은 이렇게 먼가요

by 페이지 스위머 Feb 07. 2025

시댁 이야기 풀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그동안 꽁꽁 싸매뒀는데 드디어 이번 명절 풀리고 말았다.





시댁과 친정과는 한동네 차로 5분 거리이다. 걸어도 10분 내외로 걸리는 가까운 거리.

그런데 막상 결혼하고 와서 시댁에서 10번이 넘는 명절을 지내고 나고 보니 시댁은 우리 집이랑 달라도 너무 다르다.

양가 부모님들은 이미 같은 동네에서 30년 이상 사셨지만 서로 고향이 달라서일까 이렇게 다를 수가 없다.



명절에 가면 일단 양가 차례상을 차리는데 (하, 이것도 할 말이 많다. 어머님댁은 원래 아버님이 둘째 아들 셔서 차례 제사를 안 지내셨는데 내가 결혼 직전 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며느리가 들어오자마자 집안 처음으로 덜컥 차례며 제사가 생겼다.)

친정 엄마는 탕국을 끓이고 어머님은 미역국을 끓이신다. 엄마는 산적 고기를 넓적하게 구웠는데 어머님은 갈비며 주물럭이며 우리 먹고 싶은 거 하자며 아무 고기나 올리신다. 여기까지는 음식 편하게 해서 좋다 했는데 가장 문제는 어머님은 설에는 만두를 추석에는 약식을 꼭 만드신다.

 친정은 설날 떡국은 뽀얀 사골국물에 떡만 넣어 끓여 달걀지단 김가루 파 고명을 올려 먹는 떡국이었는데, 시어머님은 꼭 설에 만둣국을 끓이자고 하시곤 만두 빚기부터 시작하신다. 더더군다나 마트에서 파는 만두피는 맛도 없고 뻣뻣하고 방부제가 많이 들었다며 직접 만두피부터 반죽해서 밀기 시작하시면 나는 당황 그 자체에 머물 수밖에.


처음 한 두 번은 만드는데 동참했다. 근데 만드는데만 끝나는 게 아니라 시어머님은 남편이 좋아한다고 우리가 집에 갈 때 만드신 잔뜩 싸주신다. 그러면 남편은 집에 와서 나에게 몰래 마음을 내비치곤 했다. 어머님 만두가 예전엔 맛있었는데 이제는 예전만 못하다고 비비고가 낫다며. 그럼 이 만두는... 어떻게 해?? 진작 어머님 집에서 말 좀 할 것이지. (어머님 제발 싸주지 마세요. 어머님 아들이 비비고 먹는대요)


  지난 신정에 친정 갈 일이 있어서 갔다가 시댁에도 들렀다. 아이들이 하도 심심해하고 신정에 체험학습을 내고서 할머님댁에 간 터라 어머님의 만두 만들기를 함께 하고서 사진을 찍어서 왔다. 그랬더니 어머님은 아이들이 만두 만드는 걸 이렇게 좋아하는지 몰랐다며 구정 설 연휴에 또 만들 준비를 해놓으신단다.

어머님 아니에요. 그만요 그만.


물론 어머님 마음이 이해 안 가는 바는 아니다. 자식들 좋아하는 거 손주들 좋아하는 거 해주고 싶은 옛날분이니까 본인이 힘드셔도 기꺼이 해주시고 같이 하자고 하시는 모습이 이해도 되는 바이다.

하나밖에 없는 막내아들 며느리 늦잠자도 안 깨우시고 조용히 기도하시며 기다리셨다가 일어나는 소리가 들리면 그제야 며느리 아침밥도 기꺼이 차려주시는 어머님이 가끔은 나이 많으신 어머님이지만 그래도 고지식한 옛날 어른들 말과 행동은 안 해주셔서 감사하다 싶다가도 만두에 너무 집착하시는 게 그만. 결혼 10년이 지나 며느라기는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며느리 역할은 너무 줄타기 하듯 피곤하네.



그래도 나중에 나중에 먼 훗날 아이들이나 나나 만두를 보면 어머님이 생각나겠지.

다음엔 하자고도 하지 말자고도 말고 그냥 가만히 있어야지. 효도는 못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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