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지금, 호캉스 왔어요
뇌종양 방사선 치료 입원기, 호스피텔 바캉스
호캉스. 나와는 거리가 먼 단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예기치 않게 일주일간의 호캉스를 보내게 되다니.
그런데 호텔 바캉스 아니고 호스피텔 바캉스.
지난해 수술받은 종양이 재발하는 바람? 에 서울에서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아직 특별한 증상이 없으니 혼자 생활하기에 무리가 없지만, 부산에서 서울까지 오가며 통원 치료를 받기엔 어려우니 보호자 없이 일주일간 입원을 하게 된 것이다. 야호?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아이들 먹을 아침, 입고 나갈 옷, 어린이집 가방까지 챙겨두고 회사 출근하면 일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가고, 퇴근하면 식구들 저녁 챙겨 먹이고 아이들 씻기면 어느새 자야 할 시간. 그런 바쁜 하루하루를 살다가 갑자기 혼자 덩그러니 병원에 넣어진 채, 강제 슬로우 라이프를 살고 있다. 비록 병가이긴 하나, 결혼 이후 처음으로 온전히 '혼자' 만의 시간이 주어진 셈이다.
서울 사는 언니가 미처 못 챙긴 물건들 가지고 병문안 와줘서 같이 수다도 떨고, 갑갑한 병실에서 탈출해 이렇게 로비에 앉아 노트북으로 글도 쓰고... 환자복 신세에 바깥출입이 자유롭진 않지만 그저 '혼자' 오롯이 보낼 수 있는 이 시간 자체가 나에게는 금쪽같다. 이 정도면 호캉스라 불러도 되는 거겠지?
지난해 17시간의 긴 수술을 받고 입원했던 한 달과는 사뭇 다른 입원 생활이다. 그때는 수술 직후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고, 뇌척수액을 빼내야 해서 머리와 허리에 구멍을 뚫어 배액관을 달고 있는 기간은 그야말로 곤욕이었다. 배액관을 빼낸 뒤에도 열이 잡히지 않아 예정되었던 퇴원일도 미뤄지고 기약 없이 열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던 그때.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버텼나 싶다.
로비에 앉아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술 직후인 듯 침대에 실려 지나가는 환자들이 보인다. 한 번 겪어본 일이라 남 일 같지 않다. 부디 저분들도 무사히 회복하셔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일상으로 돌아가실 수 있기를 마음 모아 기도해 본다.
최근 종양이 재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고 1년 전 뇌종양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많이 놀라고 힘들었지만, 사실은 원인을 제대로 모른 채 건강이 점점 나빠지고 있던 그 이전이 훨씬 힘들었던 것 같다. 정확한 진단, 그리고 어려운 수술이지만 나을 수 있다는 가능성. 그것이 환자에게 가져다주는 의미는 너무나 크다. 실제 경험하는 고통의 크기보다는 지금 내 상태에 대한 불확실성이 더 크고 무겁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예측할 수 있고 어려워도 방법이 있다면 희망이 있다. 버티고 살아갈 힘이 생기는 것이다.
입을 모아 어렵다고 했던 수술을 흔쾌히 도맡아 주셨던 우리 교수님.
추석 연휴에도, 주말에도 꼬박꼬박 회진을 돌며 환자 상태를 체크하고 신경 써주신 덕분에 길었던 한 달을 그나마 잘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교수님도 나도, 희박한 가능성을 뚫고 종양이 재발하는 바람에 적잖이 당황을 했지만 정기검진으로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도 바로 하게 된 것이 다행이라 생각한다.
병명도 증상도 다르지만 같은 색깔의 환자복을 입고 마주치는 다른 환자분들을 보며, 병원 밖에서 누렸던 그들의 일상을 잠시 떠올려본다.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 회사의 대표, 직원 아니면 가게 주인? 평범했을 그들의 일상이 지금은 각자가 간절히 돌아가고픈 과거가 되어 있다.
일상의 소중함을 떠올리며 돌아갈 내 집이, 다시 만날 가족이 있음에 감사하다. 부디 이번이 종양과의 마지막 만남이길, 그래서 이 예기치 않은 휴가를 조금만 더 누리다 돌아갈 수 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