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문화 적응하기 4
한국과 미국 생활은 다른 점들이 더러 있지만
일상 속에서 가장 큰 차이를 느끼는 순간이 바로 마트? 한국식 표현으로 슈퍼마켓에 갈 때다.
한국에서는 주로 인터넷 쇼핑으로 장보기를 해왔던 터라
이곳에 와서 그로서리 스토어에 가야 한다는 사실이 좀 귀찮았다.
물론, 처음에 미국에 도착해서 찾아간 슈퍼마켓은 신세계였다.
입구를 들어서면 풍겨오는 향긋한 꽃향기,
그 옆에 빙글빙글한 진열대에 꽂힌 귀여운 감사 카드들. (미국인들은 여전히 손 편지를 잘 쓴다.)
활기찬 직원들의 웃음과 카트를 끌고 오가는 사람들.
프로모션 상품들이 쌓여있는 현란한 진열대와 둥실둥실 떠있는 색색의 풍선들.
빨강 노랑, 초록의 신선한 과일과 채소가 눈을 즐겁게 하고
한쪽 편에는 온갖 브랜드의 식빵과 베이글. 난. 토르티야. 사우어도우빵까지 착착.
막상 뜯어보면 같은 맛의 스낵과 칩들이 화려한 포장으로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고
치즈와 햄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낸다.
주류 코너에는 온갖 나라에서 온 맥주와 와인들이 줄 서있고
일렬로 마주 본 냉동코너에는 미국. 브라질. 중국. 일본. 태국. 인도. 한국... 온갖 나라의 유명 브랜드 제품들이 꽉꽉 들어차 있다.
심지어 개. 고양이. 금붕어. 이구아나. 마우스의 사료들 마저도 종류가 수십 가지다.
그곳은 내가 한국에서 큰맘 먹고 찾아가는 대형 마트와는 또 다른 세계였다.
식품의 세계.
그래서 그로서리 스토어라 부르는가.
내가 사는 크지 않는 동네에도 이미 몇 가지의 대형 그로서리 마켓 브랜드가 있어서
처음 미국 온 두어 달 열심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플렉스를 즐겼다.
셀프 체크아웃이 주 계산방식이라 아이들은 바코드 찍는 걸 큰 재미로 여겼지만
나는 한국의 무나 파, 향신료인 고수 같은 물건의 이름을 찾으면서 내 어휘실력의 한계를 실감했고
맥주를 살 때는 직원이 다가와 신분증을 확인할 때까지 꼼짝없이 서 있어야 했다.
그러다가 어떤 날에는 한국의 온라인 배송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한번 들어가면 30분은 기본으로 소비되는 넓은 마트에 들어가는 게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동네 마트에 슬리퍼 끌고 가서 소량으로 그때그때 사 올 수 있는 채소나 과일을 사기 위해
차로 수분은 가야 하는 것도.
동네 편의점에 가면 냉장고에서 1캔씩 꺼내 마실 수 있는 맥주가 꼭 6개 이상씩 묶여 있는 걸 볼 때.
시장에서 할머니들이 말끔히 까놓은 마늘이나 잘 다듬어주신 산나물 같은 것들을 사던 기억에 젖어들 때.
겨울 무렵 시장 어귀에서 호박죽이나 붕어빵, 손두부 같은 걸 사 먹던 게 생각나면
자본주의 본실인 미국의 그로서리 스토어가 로봇이나 인공지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2년 여가 흐르고
나는 가끔 아이들에게 제안한다.
"얘들아 오늘 슈퍼마켓 갈까?"
아이들에게 공짜 쿠키를 집어주는 유쾌한 베이커리의 키 큰 젊은이.
내 신분증을 보고 오. 나도 같은 해에 태어났어요!라고 웃어주는 인도인처럼 보이는 남자.
카트를 밀며 지나다 마주치면 늘 쏘리라고 인사하는 다양한 연령의 손님들.
눈만 마주치면 하와유와 미소를 건네는 직원들.
바코드를 찍으면서도 항상 안부를 묻고 내가 입은 ZARA 셔츠를 칭찬하는 계산원. (이 동네 사람들은 ZARA를 잘 모른다)
우리나라의 전통시장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을
미국인들은 여기서 느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뭐랄까.
한국에서는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를 최소화하고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던 내가
어느 날부터. 눈으로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상대의 손톱을 칭찬하고.
더 이상 하와유.라는 인사에 당황하지 않게 된 것에는,
미국의 그로서리 스토어의 생기와 친절함이 큰 공헌을 했다고 믿는다.
쿨해 보이려. 무심해 보이려 부단히 애쓰며 살아온 나에게
동네 마트 할아버지가 내미는 요즘 어때요?라는 안부인사가 참으로 따뜻하고 정겹다.
우리 집 7살에게 그로서리 스토어는, 언제든 공짜쿠키를 먹을 수 있는 과자의 집 같은 곳이 아닐까.
내가 우울할 때 마트에 가는 이유.
시간이 걸리고 양팔이 무거워도 그곳에 가고 싶어지는 것은.
현란한 진열대 위에 놓인 새로운 나쵸칩을 집어드는 즐거움에 더해
"'나도 이거 좋아해요!"
라고 오지랖을 떨어주는 초면의 이웃이나 직원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들의 오지랖을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인 줄 이제야 알았다.
비난에 가까운 간섭 말고.
적당한 거리에서 내미는 기분 좋은 추임새.
한국에 돌아가면 나는 다시 바닥만 보며 걷는 아줌마로 돌아갈지 모르지만
조금만 용기를 내어 인사를 해보고 싶다.
"How are you?"
오.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일까.
이래서 내가 아무 말도 못 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