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와 함께> 로빈 월 키머러
이끼의 모든 것을 담은 책이다. 성가신 모기와 파리들, 가시 넝쿨에 긁힌 상처에 굴하지 않고 작은 세계, 이끼를 탐험하고 탐구하면서 저자는 이끼를 배웠다. 덕분에 20년이 흐른 지금 나는 안락한 의자에 앉아서 이끼를 알게 된다. 읽고 나니 그야말로 ‘이끼가 내게로 왔다’.
책 제목과 소제목들을 보며 감탄한다. 저자의 능력인지, 번역가의 능력인지, 아마도 두 사람의 탁월한 능력일 테다. 제목을 이렇게 지어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작아서 아름다움-’, ‘역할 분화의 아름다움-’, ‘변화를 받아들이는 법’, ‘생명을 부르는 생명’, ‘재난이 빚는 공존’, ‘선택하는 삶’ 책 제목으로 써도 근사한 소제목들을 넘겨보고 있으면 얼른 다음 장이 읽고 싶어진다. 책 속에 담긴 이끼 세밀화도 예술이다. 화려한 색을 칠하지 않고 흙백으로 그린 수묵화처럼 이끼의 자태와 어울리는 그림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낮은 자세로 이끼를 꼼꼼히 들여다보며 이끼의 모습을 담았을 그린이의 마음이 그려진다.
이끼가 처음 눈에 들어온 건 대학생 때 가본 일본 여행이다. 덥고 습한 일본 날씨를 피해 인근 숲에 들어갔는데 서늘한 숲의 기운에 압도되었다. 이끼 군락이었다. 바위 더미, 나무 귀퉁이, 심지어 사람들이 다니는 길 위에도 구둣발에 굴하지 않는 이끼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때 느낀 숲 속의 냄새와 촉감, 기운이 깊은 원시림에 들어온 듯 살아있었다. 대자연. 그것은 이끼가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며 내뿜은 숨의 향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새로 이사한 집 부엌 창가는 왕복 5차선 도로 쪽으로 나있다. 차 통행량도 많고 밤낮없이 차들이 쌩쌩 달린다. 음식을 하면서 피어나는 연기에 부엌 창문을 열면서도 매연 걱정을 했는데 이제는 걱정 하지 않는다. 이끼가 환경오염 척도임을 알게 되었다. 오염된 환경에서는 이끼가 자라지 않는다. 우리 집 부엌 창문 아래에는 이끼들이 융단처럼 빽빽이 자라고 있다. 지은 지 4년밖에 되지 않는 아파트 단지 그늘에 이렇게 이끼가 자라고 있다니 의문이 들지만 책의 내용대로 추리해본다. 그늘이 짙고, PH가 낮고, 흙이 압착되어 있는 땅이라 이끼가 잘 자라지 않나 생각해본다. 특히 강변과 가까워 습기를 얻기도 쉬웠을 테다. 오가다 보면 나처럼 현관 그늘 한쪽에 이끼가 있음을 관심 있게 지켜본 다른 이가 있는지 이끼의 일부분을 떼어가 움푹 파인 부분도 눈에 띈다.
책의 뒷부분인 ‘소유하는 사랑’ 장에서는 여러 생각이 든다. 이끼 정원을 만들기 위한 소유주의 욕망과 행동이 헛되고 무모한지 알려준다. 이끼는 시간만이 키울 수 있다. 예전에 문샘이 내게 “상림의 이끼정원은 괜찮아요?”하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는 “네! 생각보다 오래 가요!” 하고 대답했다. 이 글을 읽고 나니 문샘이 왜 그렇게 물었는지 상림의 이끼가 생각난다. 그곳의 이끼는 어디에서 가져왔을까? 강력접착제로 붙였을까? 이끼는 서로 사이좋은 이끼들로 옮겼을까? 이끼 정원에 물을 계속 뿌려주는지 상림 입구에서 습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처럼 깊은 원시림을 생각하는지 신랑은 갈 때마다 이끼정원을 보고 감탄한다. 그 내막을 알게 되었으니 나는 씁쓸한 마음으로 이끼정원을 오갈 것만 같다.
이제는 도로 블록 틈에 난 이끼가 은이끼임을 안다. 저자처럼 소음과 공해가 가득한 횡단보도에 서서 돌 틈에 난 이끼를 보며 잠시나마 위안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