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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쇄도전러 수찌 Mar 20. 2024

오첨지의 운수 좋은 날 in 뭄바이

낯선 도시에서 착한 현지인 친구를 만나 도움 받을 확률은? 

밤 11시 반 정도에 뭄바이 공항에 내렸다. 표정은 까다로운 데 과정은 대충인 듯한 입국 심사 절차를 마치고 나왔더니 이미 12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여기서 나는 조금 별로인 선택을 하게 되는데, 바로 뭄바이가 ‘인도니까’ 위험할 거라고 지레짐작하고 내일 아침 첫 차까지 공항에서 버티기로 했다는 점이다. 사실 뭄바이는 인도에서 최고로 안전한 도시 중 하나로 우버 정도를 타면 밤이라도 공항에서 나가는 건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어쨌든 새벽 1시쯤부터 몇 시간 정도 공항 노숙 아닌 노숙을 하고 (사실 그냥 노숙이 맞다.) 7시 첫차를 타고 뭄바이 시내로 나갔다. 그런데 공항 안에 SBI 은행 ATM기가 있다더니. 열심히 찾아보았지만 고장이 난 지 한참인 듯 먼직 뿌옜다. 따라서 지금 수중에 인도 돈이 한 푼도 없는 상태. 공항버스를 타려면 티켓을 사야 하고, 그러려면 카드 결제가 가능한지 알아야 한다. 마침 공항 외부로 나가는 게이트 앞에 노오란 공항버스 판매 부스가 문을 열었지만, ‘카드 결제도 되나요?’ 물어볼 정도로 가깝지 못했다. 


한 번 나가면 다시 들어올 수가 없는 인도의 공항

문제는 인도 공항은 한 번 게이트 밖으로 나가면 다시 들어올 수 없다는 점. 딜레마가 시작됐다. 

1. 수수료 나오는 ATM기에서 돈 뽑고 안전히 나가서 버스를 살 것인가? 

2. 어떻게든 카드 결제되는지 알아볼 것인가?


안전한 낭비보다는 약간의 도전을 해보고 싶어서, 게이트를 지키는 총 든 가드에게 말을 걸었다. 나도 그렇지만 그도 영어가 유창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 내가 물어봐 줄게!’ 정도 뉘앙스는 충분히 내게 전달해준 가드가 저벅저벅 걸어서 공항버스 판매 부스로 갔다. 잠깐 이야기를 나눈 뒤 다시 내게 돌아와 뭐라고 말을 전해주는데. 사실 그 분은 ‘거의’ 영어를 못 하는 분인 것 같았다. 카드/캐쉬 정도는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데, 어찌 1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갈팡질팡하고 있으니, 그쪽도 어지간히 답답했는지 ‘나가라’는 손짓이 이어졌다. 


‘아 된다는 말이구나! 오케이!’

노숙하던 밤새 열심히 끌어안았던 가방을 확실히 둘러매고 공항 밖으로 당당히 나섰다. 


“꼴라바 지역 갈 건데 버스표 카드 오케이?”

“당연히 가능하지.”


이럴 수가. 내가 인도를 너무 얕봤다. 175루피를 카드로 긁고 한국 고속버스에 비교될 만큼 깨끗한 버스에 올라 꼴라바 지역 (주요 관광지가 몰려있는 지역)으로 향했다. 


뭄바이의 출근길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내 숙소 위치를 지도로 보여줬더니, 한 삼거리에서 기사가 차를 멈추고 내리라는 시늉을 했다. 아마 정식 정류장이 아니지만 멈출 수 있는 숙소와 최대한 가까운 곳에 차를 세워준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정도는 남발해도 손해가 없다. 땡큐와 따봉을 동시에 날리며 버스에서 내려 짐을 둘러메고 숙소로 갔다. 


New Vasantashran hotel이라고 재래시장 한 가운데 있는 호텔이 가격도 위치도 적당해 보여 예약해뒀다. 뭄바이는 숙소비가 인도 다른 어떤 도시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싼데, 꼴라바 지역 내에서 싱글룸을 2만 원에 쓸 수 있다는 점이 선택의 이유다.


감옥 입구 아닙니다...

호텔(이라고 부르기는 좀 머쓱한) 숙소 입구는 마치 영화 테이큰 속 한 장소를 연상케 할 만큼 살벌했지만, 인제 와서 뭐 어쩔 도리는 없으므로 4층까지 계단 따라 올랐다. 


‘뭄바이 중심에 있는 100년 된 건물에 숙박해보는 기회!’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조금은 얼리 체크인을 기대했는데) 오늘은 아직 손님이 있어서 10시 이후에 방을 쓸 수 있다고 했다. 지당한 규칙이므로 우선 아침을 먹고 오겠다고 인사한 뒤 나섰다. 


오는 길에 이미 과일 장수와 짜이 장수가 눈에 띄었지만... 그놈의 ‘캐쉬!’가 없어서 하나도 사 먹을 수가 없었다. 

‘아 돈이 없으면 이렇게 서럽다!’


같은 시간인데 왜 하나는 열려있고 다른 데는 닫혀있을까...?

가장 먼저 SBI 은행 ATM을 찾아갔다. 10분 정도 걸어간 첫 ATM은 허탕이다. 인도 ATM 건물은 때때로 너무 이른 시간에는 열지 않는단 사실을 잊지 말자. 옆 가게 상인에게 언제 문을 여냐 물어보니 한 10시 정도일 거라고 갸우뚱거리며 확신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조금 기다릴 수도 있었지만... 아주 현금이 급했던 나는 두 번째 ATM을 찾아 나섰고 결국 그 곳에서 2만 루피(32만원)을 손에 넣었다. 


돈 내놔!


돈이 생기자 단숨에 기세가 의기양양해졌다. 돌아 나오자 코코넛이 보여 한 통을 사 먹고 아까 못 마셔서 서럽던 짜이도 바로 사 마셨다.


뭐든 보이는 대로 사 먹을 태세로 걷다가 구글맵에서 유독 평점이 높은 식당이 있어서 ‘본격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방향을 구체화했다. 


(대부분의 인도 식당이 그런 경향이 있지만) 그 식당은 김밥천국도 울고 갈 만큼 메뉴가 다양했다. 뭐가 뭔지 1도 알 수가 없어서 겨우겨우 몇 가지를 손가락으로 집어 주문해 버렸는데, 역시 오믈렛과 튀김은 뭐 실패할 수가 없는 메뉴였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나니, 아까부터 엄청나게 신나 보이던 옆 테이블 인도 애들이 갑자기 내게 말을 걸어왔다. 자기들은 원래 뭄바이와 인근의 다른 주 출신인데, 지금은 전부 호주 멜버른에서 일하고 있다가 휴가로 고향에 놀러 왔다고 했다. 멜버른에서 인도 식당을 운영한다는 오너가 이 파티의 주축인 듯했는데, 그녀는 음식에 실로 진심이었다. 그래서 오늘 파르시 (이란 계열로 이 지역에 정착한 사람) 레스토랑을 투어 하려고 한다고.


“You wanna join us?”

“Yes, why not?”

그래서 이때부터 헤일리 등 네 명의 인도 친구와 혼자 왔다면 절대 들를 수 없었을 작고 유명한 맛집을 엄청나게 돌아보게 되었다. 


식당 다섯 군데,

뭄바이 최고의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파는 카페,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영어 버전과 힌디어 버전 책을 파는 서점까지.


카페와 서점은 붙어있었는데, 커피는 한 잔에 300루피, 책은 한 권에 140루피이었다. 상대적으로 책이 무척 싸게 느껴져 (급) 어린 왕자 힌디 버전도 한 권 사 버렸다. (마지막 날 까지 짐이 되는) 그 자세한 이야기는 이 글로. https://blog.naver.com/sujittw/223298610414


아침에 만나 한 4시 정도까지 이 친구들과 떠들며 식당 뿌수기를 했다. 나는 배가 터질 것 같은데 이 친구들은 몇 식당을 더 들를 기세...! ‘고맙다 정말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고 인사를 전하고 나는 내 갈 길로 빠졌다.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할까? 어째 여행 첫날부터 이 친구들을 만나서 뭄바이에 관한 여러 설명을 들으며 한나절이나 같이할 수 있었을까? 현지인들의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몇 시간 만에 뭄바이에 급속도로 적응한 기분이 들었다.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시오...

그리고는 그 길로 걸어서 CST 기차역까지 가 보았다. 관광객은 물론 인도인도 움직이기 좋은 겨울 시즌에 기차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을 듣긴 했다만. 


겨우 찾아간 외국인 전용 창구

혹시나 ‘외국인 전용표’나 전날에 풀린다는 ‘따깔 티켓’이라도 살 수 있을까 하고.


어림도 없었다! 서울역을 갖다 붙여놔도 규모상 아우 격으로 느껴지는 CST 기차역. 그 안을 헤매는 나는 티끌 같은 존재였다. 일단 표 사는 곳을 겨우 찾아갔더니 네가 가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고 저 다른 건물에 있는 외국인 전용 창구라기에 또 한참을 헤매어 도착했더니 도대체 어떤 과정으로 표를 끊어주는 건지 내 앞에 10명 정도 외국인이 줄을 서 있지만 한 명도 사람이 줄어들지를 않아서. 휴.


결국은 포.기.했.다. 

기다릴 수도 있었지만, 이 기세라면 한두 시간을 기다려야 내 차례가 될 거 같았다. 그런데 기차표가 없다고 하면 너무나 절망스러울 것 같았기에. (아마 없을 가능성이 컸고)


그냥... 식민풍으로 멋들어지게 지어졌다는 (나름의 관광지) CST 기차역을 구경한 셈으로 치기로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뭄바이 대중교통에 도전했다. 기차역에서 게이트 오브 인디아까지 시내버스를 찾아서 탔더니. 

‘세상에 이렇게 좋을 수가.’

그 덥던 낮에 계속 걷던 시간이 미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단돈 6루피(90원)를 내고 에어컨 나오는 버스에 앉아 갈 수 있다니. 어쨌든 첫 도전부터 쉽게 정확한 버스를 타서 자신감이 생겼다. (앞으로도 시내 버스를 타는 일이 쉬울 줄로만 알았지. 물론 매번 쉽지는 않았다!) 


세상에 일찍 하루를 시작했더니 아직도 날이 밝다. 게이트 오브 인디아에 5시 정도에 도착했지만 아직도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다. (많은 인도 관광지가 그렇듯) 피부색이 다른 동양인은 인기를 끈다. ‘사진 한 장 같이 찍자’는 요구가 빗발치는데, 아직도 그들이 같이 사진을 찍고자 하는 이유 혹은 심리는 잘 모르겠다. 바라나시에서 (내 추정 수학여행을) 온 여학생 무리와도 사진을 수십 장 찍고 어떤 가족과도 열심히 찍어보았다. 모르는 남자 한두 명과 같이 찍는 건 이상한 오해의 씨앗이 된다고 하여 거부하기도 하고. 하여튼 이러한 요구는 인도 여행을 하는 내내 신기한(혹은 피곤한) 경험이 된다. 


누구나 인도에 가면 연예인이 될 수 있다
좌-게이트오브 인디아    우 - 타지마할 호텔

게이트 오브 인디아는 과거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던 시절, 여왕의 인도 방문을 ‘축하’하기 위하여 항구 옆에 지은 것이라 한다. 식민시대가 아득히 저문 지금, 왜 인도인들도 이 개선문 앞에서 환호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찌 되었든 뭄바이 넘버-원 관광 명소기에 나도 사진 몇 방을 남겼다. 바로 옆에는 타지마할 호텔이 가장 좋은 목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 호텔에도 식민시대의 슬픈 역사가 서리어 있다. 이 호텔은 타타 그룹 (우리나라의 삼성 정도 포지션)의 소유인데, 과거 타타 그룹 창업주가 외국계 고급 호텔 체인에 방문했다가 인도인이라 차별을 받고 (인도 국내에서!) 이를 갈면서 최고의 인도 자본 호텔을 만들겠다고 지은 것이라 한다. 


사실 이 두 가지를 감상하면 ‘뭄바이 관광 퀘스트’는 80% 이상 성취했다고 볼 수가 있다. 뭐 이따위 도시가 있냐고? 나머지 시간은 유유자적의 시간이 될 테니 오히려 좋다(?) 


하루가 이렇게 길 수가 있다니. 아직도 체력이 남았고 날씨도 드디어 선선하기에 걸어서 마린 드라이브에 갔다. 마린 드라이브는 커다란 만을 따라 방파제를 쌓아둔 곳으로, 마치 그 모양이 여왕의 목걸이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사실 들러보니 여왕의 목걸이건 뭐건 간에 현지인들에게 사랑받는 ‘바람 쐬기 포인트’임은 분명해 보였다. 마치 부산의 민락 수변공원 혹은 해운대스러운 느낌으로 사람들은 삼삼오오 둘러앉아 밤바다를 즐기고 있었다. 각자의 하루를 마치고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모여든 사람들 사이에 입 다물고 끼어 앉았더니, 밤이 드리울수록 좀 더 ‘외국인임’이 가려져 마음이 놓였다. 장미꽃을 파는 아이, 짜이티를 파는 장수, 음료수를 파는 상인이 지나갔다.


해운대스러운 분위기에 취해 계획보다 더 늦게 숙소로 복귀했다. 터벅터벅 계단을 올라오는 나를 보자 아침에 잠깐 봤던 스태프는 아연실색이 된다. 


“너 너무 늦게 와서 이제 경찰에 신고하려 했어.”

“오 아니야 아니야. 나 오늘 인도 친구들 우연히 만나서 잘 놀다 왔어.”

“너 아까 아침 사 먹으러 나간다고 하고 나간 거 알아?”

“아 그랬지... 미안...”


리셉션 테이블을 보니 정말 아까 복사했던 여권 사본과 비자 사본이 어지럽게 놓여있다. 다시 한번 사과하며 ‘걱정해줘서 고맙다 내일부터는 일찍 들어올게’를 약속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오늘 8시에 아침 사 먹으러 나간 길에 순조롭게 (혹은 신기하게) 일이 이어져 평소라면 이틀 혹은 삼 일에 걸쳐 볼 만큼을 다 봐버린 기분이다. 


기대보다도 더 단출하게 (흡사 감옥) 생긴 싱글룸에 짐을 풀고, 인도식 버킷 샤워 (양동이에 물을 담아 끼얹는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찬물로 샤워를 해야 했지만 생각보다 괜찮았다...? 나 건강해지는 걸지도...) 그리고 꿈도 하나 안 꾸고 꿀-잠을 자 버렸다. (노숙의 힘)


뭄바이는 의외로 (종종) 아름다운 구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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