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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클 Dec 29. 2021

바흐의 음악이 깃든
토마스 교회

영혼의 소리를 전달하는 바로크 건축 음향


신앙과 예술의 결합으로

완성한 대위법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는 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을 남긴 훌륭한 작곡가이지만, 그의 음악적 특징은 '대위법'의 완성에 있다. 그의 작품들은 엄격하고도 완벽한 구성으로 작곡됐고, 이전부터 내려온 이탈리아식 다성음악이 완성돼 이후의 음악가들에게 '화성악'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독실한 루터교 신자였던 바흐의 음악성은 그의 신앙과 예술의 결합으로 음악 예술의 극치를 이루게 된다. 바흐의 음악은 베토벤, 그레고리오 성가와 함께 불후(不朽)의 예술로 남아 있다. 


바흐는 독일 바이마르(Weimar)에서 궁중 오르가니스트(1708~1717)로 근무했으며, 쾨덴(Cöthen)에서 궁중 성당 오르가니스트(1717~1723)로 있다가 1723년부터 죽을 때까지 27년간 라이프치히(Leipzig)에 있는 토마스 교회(Thomaskirche)에서 합창 지도자 및 음악감독으로 있었다. 바흐의 걸작과 대표작들은 거의 모두가 바흐가 토마스 교회의 전속 작곡가 겸 악장이었을 때에 작곡됐다. 라이프치히 시대에 작곡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마태오 수난곡, 요한 수난곡, 미사곡 B단조, 그리고 300개가 넘는 수많은 칸타타(Cantata)가 있다. 


바흐 미사곡 B단조, 성 토마스 교회 합창단 ©accentusmusic


바흐의 음악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의 음악이 만들어지고 연주된 공간을 알아야 한다. 토마스 교회는 바로크 시대에 지어진 가장 대표적인 독일 교회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라이프치히의 토마스 교회에 가면 바흐의 동상이 전면에 서 있고, 교회 제단의 바닥 한가운데 바흐의 무덤이 있는 것을 보면 바흐와 토마스 교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을 알 수 있다. 즉, 바흐의 음악은 바로 토마스 교회인 것이다. 그렇다면 토마스 교회는 어떤 곳이었을까?


(좌) 토마스 교회 앞에 있는 바흐의 동상 / (우) 제단 중앙에 있는 바흐의 묘





다성음악을 위해 태어난 공간

음악을 위해 태어난 사람


중세의 고딕 성당에서는 강론을 중심으로 하는 미사보다는 제식과 형식에 따른 미사가 주를 이뤘으며, 미사의 배경과 도구로서 느린 찬트(Chants)가 연주됐다. 중세 이후에 종교개혁이 시작됐고, 기존의 가톨릭에서 분리된 프로테스탄트(개신교)는 성직자의 직접적인 메시지 전달과 강론이 중심이 되면서 이전의 성당과는 다른 공간이 필요했다. 그 이유는 이전의 성당과 같이 매우 긴 잔향시간의 공간에서는 음성의 명료성이 매우 낮아서 강론을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신교의 교회들은 천장이 낮아지고, 내부는 돌이 아닌 목재와 석고로 마감하기 시작했다. 공간의 잔향시간은 체적에 비례하고 실내의 흡음 면적에 반비례하기 때문에 소리를 흡수하지 않는 돌에서 회반죽으로 실내의 마감 재료가 대체된 것은 획기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잔향시간이 이전 성당의 최소 5초대에서 2초대로 줄어들면서 사람들이 훨씬 더 명료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이것이 바로크 음악과 바흐의 음악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보다 훨씬 빠르고, 다성의 화음으로 구성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이다.


(좌) 독일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 외관 / (우) 당시의 내부 전경


문화적으로 바로크 시대에 바흐를 비롯한 많은 음악가는 교회에서 사용되는 종교음악을 많이 작곡했다. 바흐 작품의 대다수를 이루는 것은 '칸타타(Cantata)'이다. 칸타타는 예배음악으로서 설교의 간주곡과 반주를 동반하는 곡이다. 낭독조(Recitative)와 독창곡으로 구성되며, 독창은 반주가 곁들여져 합창으로 마무리되는 형식이다. 칸타타 곡은 나중에 오라토리오(Oratorio)로 발전했는데, 바흐는 3백 개가 넘는 교회 칸타타를 작곡했으니 그가 얼마나 많은 칸타타를 토마스 교회에서 연주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바흐는 처음 5년 동안 토마스 교회에서 매주 칸타타를 새롭게 작곡해서 주일마다 연주했고, 성금요일을 위한 수난곡과 축제일을 위한 마니피캇(Magnificat), 장례식이나 결혼식을 위한 모테트(Motet)나 특별 칸타타까지 쉴 새 없이 작곡했다. 바흐의 칸타타 중 약 25% 이상은 유실됐고,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는 것은 약 200개 정도이다.


바흐 칸타타 BWV 80, '내 주는 강한 성이요(Ein feste Burg ist unser Gott)' ©서울모테트합창단


바흐의 음악이 토마스 교회에서 연주될 때마다 사람들은 칸타타의 내용을 들을 수 있었고, 그 가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칸타타는 음악인 동시에 예배였다. 이에 바흐의 시대(18세기 초)는 칸타타의 시대라고 불렸다. 독일 프로테스탄트 코랄(Chorale)에서 영감을 받은 모테트 합창곡이나 코랄(Choral) 곡 등은 칸타타와 더불어 당시 음악의 주류를 이루었다. 이러한 종교음악은 깊은 영적 심성을 표현한 것으로 본래 루터교 미사를 위해 작곡된 것이지만, 지금은 종파와 관계없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바흐는 교회 칸타타 이외에도 일반적인 주제를 가진 세속 칸타타도 작곡했는데, 주로 특별한 행사를 위한 것이었다. 이 곡들은 토마스 교회뿐만 아니라 콜레기움 무시쿰(Collegium Musicum) 연주회장과 귀족들의 저택에서 연주되곤 했다. 여기서부터 음악이 처음으로 교회가 아닌 일반인에게 옮겨가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당신 곁에

살아 숨 쉬는 영혼의 소리


바흐의 음악은 그의 죽음 이후 한동안 잊혀 지내다가 19세기 중반에 라이프치히의 젊은 음악가 멘델스존에 의해 널리 알려지게 됐다. 그는 젊은 나이에 독일의 유서 깊은 악단인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Gewandhaus)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바흐를 비롯한 바로크 및 고전주의 음악들을 발굴해 소개함으로써 세상에 그들의 음악을 널리 알렸다. 


네스코 토마스 교회의 문화유산 안내판


토마스 교회는 세계기념물기금에 의해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독일 정부에서 지속해서 복원하고 관리한다. 토마스 교회는 바흐의 거의 모든 음악이 초연된 곳이고 당시 매주 연주된 곳이다. 바흐의 곡들은 이 교회의 음향과 환경 속에서 영향을 받으며 작곡된 것으로, 이전에 없던 새로운 음향 환경에 맞는 곡이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토마스 교회는 보존할 가치가 매우 높은 건축 유산이 됐다. 바그너의 음악을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에서 들어야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 있듯이 토마스 교회에서 바흐의 음악을 듣는 것은 원형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음악과 공간, 그리고 음향은 삼위일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매우 밀접한 관계다. 건축물과 음향이 지닌 하드웨어 안에서 음악의 소프트웨어가 작동할 때, 진정한 음악 예술이 실현될 수 있다. 지금도 토마스 교회에서는 바흐의 곡을 연주하고 있다. 라이프치히를 가면 꼭 한번 토마스 교회에서 울리는 바흐의 음악을 감상해 보길 바란다. 지금껏 어디서도 체험하지 못한 영혼의 소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014년 직접 촬영한 토마스 교회의 현재 모습



한찬훈 (충북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

건축학 박사이자 충북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 전 한국음향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아태지역 국제음향학회(WESPAC) 회장을 거쳤다. 안산 문화예술의 전당, 부산 국립국악당, 광주 아시아 문화예술의 전당, 인천국제공항 등 100여 프로젝트의 건축음향 작업에 참여했으며 모두가 사랑해마지않는 서초 예술의전당 음악당을 비롯한 오페라극장, 리사이틀홀도 그의 손 끝에서 탄생했다. 어쩌면 우리가 듣는 첫 음은 그가 그리는 종이 위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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