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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Dec 14. 2022

비건이 되고 싶은 축산 여사님

본능에 충실한 식욕 넘치는 아줌마는 일자리 선정도 예외 없다. 혹시 모를 콩고물을 기대하며 즉석조리(튀김류, 초밥, 반찬 등을 조리하는 코너)나 베이커리 쪽을 넘보고 있던 것이다.


“혹시 가고 싶은 파트가 있으신가요?”      


“아이고 어디든 괜찮습니다.(굽신굽신)"


가득 찬 야망을 품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심장을 지닌 아줌마. '친절히 희망지까지 물었는데 그걸 이리 망쳐. 에라이 고분고분한 척이라도 해야겠다.'

사실, 면접 당시 아이 학원 라이드를 해야 하니 4시까지만 일을 할 수 있다는 제한을 두었기에 눈치 없이 뭔가를 덧붙이고 싶지는 않았다. 기억을 더듬더듬해가며 얼마나 진땀 빠지게 썼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란 말인가. 그런 노고에 재를 뿌리고 코를 풀어 재껴 쫓겨나고 싶지는 않았다. 속내는 감추는 게 나은 걸로. 그리하여 배정받은 곳은 축산. '엥? 축산? 축산이라고? 다시 즉석조리 베이커리 보내달라 땡깡 부려봐? 진짜 고기 코너만큼은 심히 부담스러운데 세상 도와주질 않는단 말이야.'


"아차차 사정상 축산만큼은 갈 수가 없습니다. 저의 능력을 한 껏 뽐낼 수 있는 베이커리 또는 즉석조리 쪽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내 머릿속 똑순이 이리 야무질 수가 없는데 현실세계의 소심이는 꿀 먹은 벙어리가 따로 없다.




축산을 망설인 이유? 고기 싫습니까? 없어서 못 먹는데 무슨 소리.

핏물 뚝뚝 덩어리 징그럽습니까? 무섭습니까? 그런 캐릭터 아님.

생계의 위협을 받고 뛰어든 곳에 뭘 따지겠냐만은,


몇 년째 계속되고 있는 내적 갈등이 있었으니.

고기, 맛 좋은 고기, 육즙 팡팡 거부할 수 없는 이 고기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귀요미 동물 친구들. 이 귀요미들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있는 것이다.

축산 쪽 동물들은 댕댕이 냥이들과는 다르지 않냐고.

'나의 문어 선생님'을 보면 바다 생물 문어와도 교감하고 소통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거의 모든 동물과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런 애들을 안좋은 환경에서 키워다 잡아먹는 게 너무도 못마땅한데,

그래서 방법은 있고? 이미 고기에 길들여진 내 입맛은 어쩔.




한때 비건의 삶을 걸어보려 시동을 걸어본 적이 있다. 완벽한 차단까지는 자신이 없었고 육고기만큼은 끊어보고자, 와씨 치킨은 어쩔 거냐. 꼬꼬닭을 꾀꼬닥 시켜 내 뱃속에 매장시킨 것만 몇 천 마리 인가. 그래 치킨은 제끼고서라도 뻘건 고기 얘들만이라도 어떻게 좀 안 되겠나 싶어 시도를 했다. 결과는 참혹스러웠다. 고기를 3일만 끊어도 금단현상이 일어나는 애다. 식구들이 둘러앉은 고기 파티에 매가리 없이 축 늘어져 있는 나를 보며 이제 그만하라며 그만하면 충분하다며 남편이 고기쌈을 내 입에 집어넣는 순간, 게임은 끝났다.

 

넘볼 수 없다면 쳐다도 보지 말랬던가. 하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기웃기웃거렸다.

내 생명 연장을 위해 희생되는 동물들을 덜 먹어 볼 궁리를 하고 있었단 말이다. 그런데

대놓고 축산이라니. 내가 축산 여사라니.

이건 말이 안 되는 거다.

'비건 축산 여사'

이 얼마나 괴상망측한가.


웃프다. 세상 웃픈 일이 비단 이것뿐이겠는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어정쩡함. 어쩌면  웃프다는 건 '제삼자는 우스운' '당사자는 슬픈'이지 않을까. 상황이 어쨌건 결론을 내려야 했다.

결국 입에 풀칠이 먼저였다. 가여운 동물들보다 내새끼 학원비가 먼저였다. 어디서 떠들어 댄 적은 없지만 속에서 뱉어낸 수많은 번뇌도 현실 앞에선 쪽을 못쓴다.


지금은 이렇게 물러나지만 동물을 위한 아니 더 원대하게,

지구를 위한 계획을 펼쳐 볼 날을 고대한다.


난 진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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