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영의 인생극장1
왕십리 먹자골목, 그 당시 호텔 나이트클럽 뒷골목에서 부모님은 장사를 시작하셨다. 따로 주거공간이 없었기에 그곳에서 먹고 자고 모든 생활을 했다. 그렇기에 장사가 끝나고 손님들이 다 나간 뒤 에야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있었다. 운 좋게 입식테이블에만 손님이 계시는 날엔 방은 우리(2살 터울 여동생과 나) 차지가 된다. 냉큼 문 걸어 잠그고 우리만의 공간을 즐겼다. 하지만 그런 날은 손에 꼽힐 정도였고 대부분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겨우 손님들을 내보내면 다음은 잠자리 세팅에 들어간다. 테이블을 한쪽 구석으로 밀어 놓고 방을 쓸고 닦는다. 그리고 나선 후다닥 다락에서 이불을 꺼내와 나란히(동생과 내 거, 부모님 거) 넓게 깐다. 그럼 세팅 완료. 잠시 대자로 누웠다가 양쪽 처음부터 끝까지 굴러 다니기. 마치 눈에서 뒹구는 강아지처럼, 이불이 주는 모든 감각을 즐겼다. 다락방의 찬기와 냄새를 품은 이불. 차갑지만 포근했고 내가 환장하는 냄새들을 가득 담고 있었다. 헌책방 지하주차장 나프탈렌이 섞인 냄새였는데(느낌 오는가) 그 어떤 향수도 이를 대적할 수 없다. 이 냄새와 감촉을 몽땅 흡수하려는 듯 이불에 코를 박고 비비적거렸다.
설명할 수 없던 설움이 달래지는 순간이었다.
가게 위치상 늦은 시간에 손님이 많아 새벽까지 장사를 하셨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술 취한 손님들이 나가기를 기다린 날들이 얼마던가. 너무 졸려 눈꺼풀이 뒤집어지는 날에는 손님들 계시는 건너편 테이블 밑에 벌러덩 누워 있거나 이불을 꺼내와 돌돌 말고 연기를 펼친다.(연기가 아니지) 우선, 눈빛 발사. '세상에나 이 늦은 시간까지 말이에요. 새 나라의 어린이 두 명이 너무 졸려도 잠을 청할 수가 없지 뭡니까. 거기 분들이 우리가 잘 장소에서 술을 드시고 계셔서요. 서둘러 물러나 주시와요, 제발.'
우리 최대치의 불쌍하고 가여운 느낌을 발산하며 서로를 기대고 웅크렸다. 이 작전이 먹힐 때도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거의 대부분 만취한 손님들이었기에 우리의 딱한 사정이 보일리가 없다. 그렇게 웅크린 채 잠들어 버린 날이 많았고 결국 이대로는 안 되겠는지(이렇게 잠들어 버린 새끼들을 보는 마음이 오죽했을까) 가게 바로 뒤, 우리가 생활할 수 있는 간소한(?) 집을 구하셨다. 여기에 또 기막힌 아이디어를 얹었는데, 가게 벽을 뚫어 집과의 연결통로를 만들어낸 것이다.(가게소유주아님주의, 아묻따 똥배짱 아빠작품) 고개를 숙여 들락날락할 만큼의 크기였는데 이곳을 뻥 뚫린 채로 그냥 두자니 좀 기괴하기도 했고 여러 이유로 문이 필요했을 것이다. 뻔질나게 드나들며 아빠를 뿌듯하게 해 주었다. 갑자기 문을 박차고 나오는 꼬마에게 놀라는 손님이 한 둘이 아니었는데 이게 또 꼬마들의(동생, 나) 쏠쏠한 재미기도 했다.
장사 안에서 자랐다. 그래서 장사가 친숙했고 그 속의 광경을 눈으로 머리로 담을 수밖에 없었다.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익혀진 것들(족발플레이팅(?)을 보고 앞발인지 뒷발인지 구분가능한 것도 재능일까), 너무 이른 나이에 알게 된 어른들의 세계, 친구들과 다른 가정환경.
받아 들일지말지 선택의 권한 같은 건 없었다.
그냥 난,
족발집 첫째 딸로 태어난 거다.
현재도 쭈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