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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리 Feb 26. 2021

학창 시절 친구에 대한 환상

추억을 기억하려는 노력

요즘 부쩍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 모든 인간관계는 아니고 첫 번째는 가족, 두 번째는 중고등학교 친구들, 즉 학창 시절 친구들이다. 오늘은 후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나랑 잘 맞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지금은 나랑 정말 안 맞는구나 싶고, 반대로 나랑 그다지 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친구는 오히려 지금은 나랑 찰떡같이 맞다고 느껴졌다. 갑자기 왜? 이유가 뭘까? 곰곰이 그 원인을 찾아보니 답이 나왔다. 그건,


나를 알게 되면서.


과거의 나를 떠올려 보면 나 스스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를 정도로 ‘두리뭉실한’ 나였다. 하지만 나이가 한 살 한 살 들수록 나 자신이 보다 명확해졌다. 과거에는 이것도 좋다 저것도 좋다며 그렇게 인간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 주관과 취향이 뚜렷해져서 나와 맞고 안 맞는 사람이 뚜렷하게 보인다.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단순히 내가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단면을 보고 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지만, 판단하게 된다. 진심을 의심하지 않으려는 건 어쩌면 내가 상처 받고 싶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학창 시절 친구의 단면을 보고 ‘아, 우린 이렇게나 안 맞았구나.’를 깨달으며 거리를 둔다. 가슴이 답답하다. 실망하기 싫은데 실망을 했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결국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인간관계에 쿨하고 싶지만 쿨하지 못한 편이다. 이상하게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쿨한 사람들이어서, 세상 쿨한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있자면 나 자신이 한심해져 결국 또 자괴감이 든다.


누구의 말이 더 옳은 지 모른다. 그들은 내 마음이 편하도록 최선의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최선의 해결책, 여기서 말하는 그 해결책은 굳이 그런 인간관계를 끌고 가지 말라는, 그 해결책대로 못하겠다. 끌고는 가고 싶다. 하지만 끌고 가기에는 스트레스받는다.


왜 굳이, 나 자신이 힘들어하면서까지 끌고 가야 하는가 질문을 던져봤다.


어렸을 적 추억을 함께한 친구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


가끔 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어색하지 않고 편한 친구는 보통 학창 시절 순수했던 시절에 만난 친구라고 한다. 사실이기도 하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그 친구들과 만나면 8할은 옛날 추억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그것도 반복해서. 물론 1년에 한두 번 만나며 우리의 추억을 잊지 않으려 애쓰는 느낌도 있다.


내가 만나오고 있는 고등학교 친구들도 여러 무리가 있다. 무리마다 저마다 다른 색을 가지고 있고, 나 또한 어떤 무리 속에 있는가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의 다양한 나로 변신해오고 있다. 모든 무리를 끌고 갈 필요가 없다. 지금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 무리를 단칼에 잘라버린다는 건 내 성격상 어려우니, 그렇담 잠시 쉬어가는 것도 중요하고, 또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교 친구들이 더 나랑 잘 맞고, 더 평생 친구가 될 것 같다.


‘친구’란 뭘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요즘이다.


그렇게 내가 내린 결론 아닌 결론이 있다. 친구란 뭘까라는 질문 자체가 너무 거창했다. 친구는 그냥 친구지. 더군다나 학창 시절 친구에 대한 의미가 너무 미화되어 있는 건 아닐까? 추억이라는 환상에 너무 빠져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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