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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outseohyeon Nov 17. 2023

오늘도 안녕한가요


 문득 궁금해진다.

 이 나이쯤 되었으면 제법 살았다고 해도 되는 걸까. 여전히 멀었다고 해야 되는 걸까. 백세 시대가 열렸다고 하지만, 죽음에는 순서가 없는 법이고, 한 사람의 운명이라는 게 정해져 있다면, 지금 나는 내 인생에서 어디쯤 온 걸까. 비로소 출발선에 선 걸까. 아니면 이제 한 구간을 돌았을까. 슬프게도 피니쉬 라인을 앞두고 있을까. 누군가는 이런 생각을 두고, 비관적이라 할 테고, 또 누군가는 재수 없는 소리라고 할 테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러거나 말거나 하겠지만. 나로선 그저 궁금할 뿐, 딱히 부정적도 비관적인 것도 아니다. 물론 긍정적이라고 하기엔 조금 아쉬운 면이 없진 않지만. 


 인생의 지점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건, 요즘 들어 내 생각이 백팔 십도 가까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도 마음도, 내 행동도 정말이지 최악의 한 해를 보냈는데, 그렇게 바닥을 치고 나니, 비로소 내가 가지고 있던 고질적인 문제점이 보이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벌어진 모든 일이 전부 내 탓이라 할 순 없지만 내 탓도 온전히 없었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언젠가 악연이 나타나는 이유는 나의 문제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그렇게 나도 깨달았으니, 그래 모든 게 다 이유가 있는 법이라고, 자조 어린 위안을 하면 되는 걸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런 것 같기도 하면서,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가 쉽사리 멀어지지 않는다. 이제는 평온을 찾아가고 있다고 하면서도,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은 여전히 허전하다.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인연을 지나왔을까. 개인적으로 모든 인연은 시절인연이라 믿는 편이다. 평생을 가는 인연도 있겠지만, 그 역시 기나긴 시절을 보내고 있는 거겠지. 대부분은 좋았어도, 나빴어도, 결국 어느 시기가 되면 사라졌던 것 같다. 인연이 다 그런 것이라 하면서도, 우스운 건 좋은 인연보다 나빴던 인연이 더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다는 것(여전히 남아 있는 인연들에 대해선 굳이 생각을 할 필요가 없으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상처를 주고받은 인연이 불쑥 떠올라 머릿속을 헤집는다는 것. 그 기분을 던져 내기 위해 친구에게 투덜거려보기도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들이 잘 살든 못 살든 개의치 않는 편이다. 그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는 정도. 내가 상처를 받았던 만큼 당신도 상처를 받았을까. 정말 나쁜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내게만 나쁜 사람이었을까. 그저 인연이 아니었다는 말로 다 흘려보내면 되는 건가. 역시나 화가 난다 하면서도, 굳이 화를 낼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이건 무슨 쿨한 척인가 싶기도 하고. 어째서 나는 그때의 내 기분을, 내 마음을 돌보지 않았을까. 괜한 자책을 하기도 한다. 결국 이런 생각엔 끝이 없어서, 그냥 할 일이나 하자. 혹은 잠이나 자자가 돼버리지만. 


 최악의 해였어. 올 해가 차라리 빨리 가버렸으면 좋겠어. 그냥 사라지고 싶어. 도망치고 싶어,라는 말을 하면서도, 웃는 날이 적지 않았다. 불안감에 시달리며 멍하니 나를 놓아버린 순간에도, 기어이 나를 찾아오고 나를 끄집어 내주던 소중한 이들이 있었고, 기대치 않았던 애정과 관심도 적지 않은 해였다. 그저 내가 고통스러운 일에만 매몰되어 있었을 뿐. 나의 안녕을 뒤로하고 끊임없이 고통을 놓지 않았던 점도 분명 있었던 것 같다. 일상의 안녕을 되찾고 나서야 그 사실이 보였다. 시간이 좀 더 흘러서, 이 터널을 전부 지나가 버린 후에, 더는 뒤돌아 보지 않는 순간이 되면, 이 시간을 이 인연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확실한 다짐도, 마음속 응어리도 내려놓기로 했다. 오늘의 안녕을 위해서. 누군가의 안녕을 바랄 순 없어도, 망치고 싶진 않으니까. 그렇게 나의 안녕을 지켜내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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