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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완도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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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형 Sep 22. 2023

생활같은 여행, 여행같은 생활을 꿈꾸며...

완도 살이를 시작하며...

완도에서 근무해 보는 게 어때?


         지난해 겨울, 담당 임원에게 완도근무를 제안받았다. 전라남도 완도. 핸드폰을 꺼내 살펴보니 제주를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하는 곳, 완도다. 바다를 좋아해서 남해안의 많은 도시를 여행했고, 여수에서는 3년을 살기도 했다. 완도는 가본 적이 없다. 단박에 수락했다.


          2년 전 건강문제로 휴직을 하고 복직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았다. 건강은 점점 회복되고 있었고 근무강도도 예전 업무에 비해서 덜한 편이라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헛헛했다. 가슴속 한 자락이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어쩌면 숨차게 달려온 25년간의 직장생활이 휴직으로 하락기를 맞이했다는 자괴감에서 헛헛함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복직하고 다시 출근을 시작해 몇 달이 지났다. 이른 새벽 시작되는 출근길, 콩나물 시루가 되어 숨쉬기 힘든 1호선 지하철의 퇴근길. 인생의 모든 것을 베팅한 듯 살벌하게 으르렁 거리는 회의. 다람쥐 쳇바퀴 돌듯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여행을 다시 시작했다. 퇴근을 하면 10KM를 걸었다. 주말이 되면 동해의 해파랑길을 걸었다. 발바닥에는 물집이 잡혔고 얼굴과 팔, 다리가 검게 그을렸다. 아름다운 동해안의 해변길을 걸으며 자연을 마주하고 사람들을 스쳐보내며 내 알 수 없는 허함도 가슴속에서 조금씩 밀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변화된 생활이 필요했다. 여행이 필요했다. 그래서 주저 없이 완도행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렇게 완도행을 결정하고 여름부터 완도생활이 시작됐다. 이제 아침 창을 열면 제주도 여객선 기적소리와 완도항 주도(珠島)의 상록수림이 바닷바람과 함께 내 가슴을 채운다.

완도여객터미널 언덕에서 본 완도항의 아침


생활같은 여행, 여행같은 생활을 꿈꾸며


          완도에 왔다고 해서 마냥 여행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매달, 매분기 계획과 실적 속에서 살아야 한다. 단지 출퇴근길이 북적이는 서울지하철이 아니라 갯내나는 완도항길을 걷는다는 것. 업무를 보기 위해 복잡한 서울시내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것이 아니라 여객선을 타고 완도군의 섬으로 들어가는 일이 잦아졌다는 것이 변화된 내 생활이다.


           사무실에 출근해 아침 창을 열면 주도의 아름다운 모습과 뱃고동소리가 업무의 시작을 알려준다. 섬으로 향하는 여객선 객실에서 직원들과 간단한 회의를 진행하고 뱃전으로 나오면 그림같은 다도해 국립공원의 모습이 펼쳐진다. 나는 이제 치열한 월급쟁이이자 자유로운 여행자이다. 나는 생활같은 여행을, 여행같은 생활을 꿈꾸는 사치를 누려보고자 한다. 

청산도 서측 당락리 해변 전경


완도살이


          완도행이 결정되고 완도에서 어떤 여행을 해볼까 고민했다. 완도행으로 동해안을 따라 길을 나선 해파랑길* 여행을 중단한 아쉬움에 남파랑길** 여행을 계획했지만 이내 마음이 바뀌었다. 내 평생 완도에 살 수 있는 날들이 얼마 안 될 텐데 완도 인근 섬들을 여행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해파랑길 : 강원도 고성에서 부산까지 동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750KM의 도보여행길

** 남파랑길 : 전라남고 해남에서 부산까지 남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1,470KM의 도보여행길


          그리고 불현듯 떠오른 책이 '곽재구의 포구기행'이었다. 곽재구 시인이 우리나라의 여러 포구를 여행하며 쓴 여행기이다. 포구를 여행하며 각 포구의 특색,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 음식이야기, 자연의 이야기들을 엮은 책이다. 곽재구 시인처럼 완도 인근의 도서를 여행하며 섬과 자연 그리고 사람들에 대해 기록하고 싶어졌다. 완도군의 섬들은 일 때문에 방문해야 하는 섬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완도의 섬이야기는 생활의 기록이자 여행담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나에게는 생활이자 여행인 완도살이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이야기의 섬을 어디로 할까 고민했다. 맨날 생일이라는 생일도, 윤선도로 유명한 보길도와 노화도, 교량이 만들어져 교통이 편해진 신지도, 조약도 고금도, 완도읍 다음으로 사람이 많이 산다는 평일도 등 많은 섬들이 있지만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서편제로 유명한 청산도로 정했다. 내일 청산도로 가는 여객선을 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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