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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여행할 땐, 책 - 김남희

여행은 몸으로 읽는 책,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

by 장형

# 여행은 몸으로 읽는 책,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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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제목 : 여행할 땐, 책

ㅇ 저자 : 김남희

ㅇ 3줄 개요

-. 여행은 몸으로 읽는 책,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

-. 나는 왜 떠나고 싶은가

-. 책읽기가 만들어 낸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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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매혹적이라 책을 읽다 그곳으로 향하게 만든 책, 삶을 바꾸는 한 번의 여행에 관한 이야기, 오롯이 책을 위해 떠나는 여행…. 이 책은 그렇게 여행지와 그녀를 연결해 준 책에 관한 이야기다. 읽다 보면 떠나고 싶고, 읽다 보면 또 다른 책이 읽고 싶어진다.
- 여행할 땐, 책


여행과 독서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모험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행위이다. 작가 김남희는 ‘여행은 몸으로 읽는 책,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라고 표현한다. 커피잔을 앞에 두고 조용한 카페에 앉아 책을 읽다, 어느새 주인공이 되어 유럽의 도시를 걷고 있는가 하면, 지평선 너머 샹그릴라를 찾아 떠나기도 한다.


책 속의 세계가 너무도 매혹적이어서 배낭을 메고 설레는 마음으로 그곳을 향해 여행을 떠난다. 그렇게 떠난 여행지에서 책 속의 세상과 조우하고 주인공과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양지바른 카페에 앉아 다시 책장을 넘기며 그 안에 있는 나를 찾는다. 작가는 몸으로 읽는 책인 여행과 앉아서 하는 여행인 책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기 위해 책을 읽는다. 책을 읽으면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가 서점에 가는 이유도 이 넓은 지구에서 내가 누군가와 이어져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서점은 섬처럼 외따로 떨어진 우리를 이어주는 매개체 책과 나를, 이 세계를.
-여행할 땐, 책


나는 혼자 하는 여행을 즐기는 편이다.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도 즐겁지만 혼자만의 여행은 부담없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물론, 쓸쓸함과 외로움은 반대급부로 안아야 하지만 말이다. 책 속 작가도 대부분의 여행이 혼자 떠나는 여행인 듯하다. 혼자 떠나는 여행의 가장 큰 친구는 역시 책이다. 책을 읽는 동안은 혼자가 아니고 주인공과 함께 호흡하며 그 속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책 속 배경이 내가 여행중인 장소와 동일하다면 책을 내려놓아도 여전히 책 속 세상과 나는 연결되어진다. 책 속 세상과 책 밖의 세상이 하나됨을 경험하면 여행의 즐거움은 두 배, 세배가 된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처음 읽던 날을 기억한다. 1월이었고 나는 네팔 포카라의 호숫가 카페에 앉아 있었다. 겨울 햇살이 위로라도 하듯 어깨를 어루만지는 오후였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이 되어 버렸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손끝으로 누르며 한동안 호숫가를 서성였다.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을 엿본 듯 마음이 일렁였다.
-여행할 땐, 책


네팔의 호숫가 카페에 앉아 겨울 햇살을 맞으며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책을 읽는다. 책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채,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호숫가를 서성인다. 너무도 아름다운 모습이다. 여행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꿈꾸는 모습이다.


나는 꽤 많은 여행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여유를 가지고 여행지에서 책을 읽은 경험은 흔하지 않다. 직장인의 휴가는 고작해야 일주일에서 열흘. 휴양을 목적으로 호텔이나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낼 작정으로 떠난 여행이 아니라면 마음이 급하다. 그나마 혼자 떠난 여행이라면 볕이 드는 카페나 시원한 바닷가 그늘에 자리를 잡고 책 한 권을 읽는 호사를 누려볼 수 있지만, 흔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내가 꿈꾸는 것은 장기여행이다. 시간의 강박에서 벗어나 편한 마음으로 책을 읽고 공상에 잠길 수 있는 여유로운 여행. 김남희 작가처럼 포카라의 호숫가에서 책 한 권을 다 읽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호숫가를 산책하며 설렘을 만끽할 수 있는 그런 여행을 꿈꾼다.

# 나는 왜 떠나고 싶은가?


“어디로라도! 어디로라도! 이 세상 바깥이기만 하다면!” 보들레르의 절규는 여전히 살아있다. 우리는 종종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꿈꾼다. 이곳이 아닌 저곳이라면 진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어떤 가면도 쓰지 않은 얼굴로 지낼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장소를 찾아 평생을 방황하기도 한다.
- 여행할 땐, 책


머물 수 없어서 나는 떠난다. 이 자리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견딜 수 없어서 떠난다. 멈추는 것은 퇴보하는 것이고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나는 떠난다. 여행이란,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지만 떠나지 않으면 살아갈 의미를 찾을 수 없기에 세상의 바깥이라면 어디라도 보들레르가 그랬듯이, 호메로스(오디세이아)가 그렇게 노래했듯이 그렇게 우리는 떠나야 한다.

# 책읽기가 만들어낸 여행


나를 향해 달려오는 기차의 기적소리가 들려온다. 기차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레일이 부딪히는 바퀴소리도 점점 높아진다. 내 시야를 가로막을 정도로 커진 기차가 연기를 내뿜으며 달려와 내게 묻는다. 끝내 지금껏 살아온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언제 찾아올지 모를 인생의 마침표를 앉아서 기다리고 있지는 않겠다고, 나는 모스크바행 비행기표를 손에 든 채 레일 위에 버티고 서 있다. 끝까지 간 사람들, 속을 알 수 없어 더 마음을 끄는 무수한 안나를 만나러 가기 위해.
- 여행할 땐, 책 - 안나까레리나와 모스크바 이야기 중


작가는 톨스토이의 안나카레리나를 읽고 러시아로 향한다. 안나의 죽음으로 상징되는 기차의 기적소리 속에서 안나의 외침을 듣는다. 너는 잘 살고 있는 것이냐고, 너의 방식은 옳은 것이냐고. 그 안나를 만나기 위해 러시아를 여행한다.


세상의 안나는 러시아에만 있지는 않겠지만 러시아의 안나를 만나기 위해 우리는 러시아로 가고 조르바를 만나기 위해 그리스로 향한다. 여행 속에서 많은 안나와 조르바를 만나며 우리는 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집으로 돌아온다. 책은 안나와 조르바를 만나게 하는 매개체가 되기에 훌륭한 도구이다.


안나를 만나기 위해 러시아로 떠났던 작가는 이번에는 모스크바 신사 로스토프를 만나기 위해 모스크바의 메트로 폴 호텔로 여행을 떠난다. 에이모 토울스의 소설 ‘모스크바 신사’는 한 호텔을 여행의 시작과 끝으로 만들었고 작가는 한 호텔에서 러시아 백작과 함께 탐험을 경험한다. 책읽기는 새로운 여행을 만들어 내고 신비한 자극을 생성하는 호르몬이 된다.


#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


집을 떠나와 남의 집을 기웃거리는 삶이 이번 생의 내 운명인 것 같다. 1년의 절반은 집이 아닌 ‘숙소’에 머무는 탓인지 숙소를 고를 때면 꽤나 공을 들인다. 부지런한 주인이 시간과 마음을 들여 가꿔온 작은 곳이 내 취향이다. 그런 곳에는 생활의 향기가 배어 나를 안정시킨다. 기껏해야 사나흘 머물 곳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숙소를 내 집처럼 여기고 싶었다. 세면대나 거울이 지저분하면. 반짝이도록 닦는 일부터 시작했다. 작은 꽃다발을 사다 컵에 꽂아놓기도 하고, 엽서나 그럼을 창문에 붙여놓기도 한다. 볕이 잘 들거나 전망이 좋은 자리로 책상을 옮겨놓는다.
- 여행할 땐, 책


이 단락을 읽고 나서 작가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머물 숙소의 세면대나 거울을 닦고 작은 꽃다발을 사다 컵에 꽂아놓을 수 있는 사람. 작가가 말한 대로 글쓴이는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이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이런 갈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스스로에 대한 갈망도 큰 사람이 아닐까 하는 호기심이 일었다.


여행을 하면서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다. 값싸고 좋은 숙소를 고르려고만 했지, 숙소를 꾸미려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다음 여행에서는 콜라병에 한 송이 꽃을 꽂고 지금 흘러나오는 Tony Bennett의 음악을 틀어야겠다. 작은 의자를 볕이 잘 드는 창가로 옮겨 책 속으로 들어가 봐야겠다.


고단한 일상에서도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나는 존경한다. 깊이 패인 주름 속에서, 거칠고 굵어진 손가락 마디 안에서도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잊지 않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오늘은 아내가 퇴근하기 전에 식탁에 작은 화병을 놓아두고 싶다. 여전히 아름다움을 갈망하고 있음을 말하고 싶다.


# 여행 글쓰기의 확장


단순하기 그지없는 일상을 보내는 이곳 ’알베르게 비에이라‘가 지금 나에게는 우주 정거장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몸을 움직이며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내게 화성 탐사대의 우주 비행사들이나 마찬가지다. 오가는 순례자들은 행성 사이를 여행하는 고독한 우주 비행사들. 나는 그들이 보내는 구조 신호를 해석한다.
- 여행할 땐, 책


작가는 앤디 위어의 SF소설 ‘마션‘을 여행과 연관지어 글을 썼다. 작가는 화성에서 표류하는 과학자의 이야기인 마션을 어떻게 여행과 연결할 수 있었을까? 화성에 여행을 가겠다는 것인지? 작가는 도보여행으로 유명한 스페인 산티아고의 숙소인 알베르게의 자원봉사자로 일하던 시기를 마션과 연관지어 서술한다. 작가가 일한 숙소를 우주정거장에 고단한 몸으로 알베르게를 찾은 여행자는 홀로 화성에 표류한 마크에 비유한다. 우주정거장에서 일하는 본인은 여행자가 보내는 긴급한 구조신호를 해석하는 임무를 띤 사람으로 상상한다. 좀 억지스럽기도 하지만 알베르게에서 마션을 읽는다면 그렇게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일생에 아무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기에 화학은 내 단골 땡땡이 과목이었다. <영일레븐> 녹화에 온 ‘이치현과 벗님들’을 보겠다고 교실을 탈출하고, 학교 앞 개미만화에 <올훼스의 창> 신간이 들어왔다고 담장을 넘던 과거를 후회하며 화성에서 죽음을 맞았을 것이다.
- 여행할 땐, 책


내 발걸음은 공산당 본부였던 콜론 호텔과 당신의 아내가 머물던 콘티넨탈 호텔을 지나 당산의 이름을 딴 조지오웰 광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도시는 여전히 과거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사형당한 대통령의 이름을 딴 올림픽 경기장, 사회주의자 지도자의 이름을 붙인 도서관, 당신의 이름을 내건 광장.
- 여행할 땐, 책


여행을 하면서 여행기를 쓰는 여러가지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내가 생각한 방식 가운데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아내나 아이들에게 쓰는 편지의 형식을 띤 여행기이다. 자와할랄 네루의 ‘세계사 편력’은 감옥에서 그의 딸 인디라 간디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세계사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쓰는 여행기도 아내나 딸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으로 써보면 어떨까 생각했었다. (실제로 퇴직 후 여행을 하며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여행기를 쓸 예정이다.)


내가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여행기를 기획했다면 작가 김남희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며 ’까탈로니아 찬가‘를 쓴 조지오웰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으로 조지오웰에게 바뀐 시대의 바르셀로나를 소개한다. 이 도시는 여전히 당신을 기억하고 있다고 당신이 소중히 여긴 가치를 기억하고 있다고 말한다. 당신의 신념은 과거에도, 지금도 여전히 가치있음을 써 내려간다. 작가는 현재와 과거, 책과 여행 그리고 조지오웰과 연결된다. 그리고 작가는 나에게 여행 글쓰기를 무한히 확장할 수 있음을 가르친다.

# 내가 연결해 보는 책과 여행


김남희 작가의 이 책 ’여행할 땐, 책‘을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던 모양이다. 거실의 책장 앞에서 서서 내가 읽었던 책 가운데 여행과 연결할 수 있는 책은 어떤 것이 있을까 살펴보게 된다.


ㅇ 제임스 힐튼 ’읽어버린 지평선‘ - 샹그릴라

ㅇ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 니카타현 온천마을

ㅇ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 무라카미 하루기 ’먼북소리‘ - 크레타

ㅇ 김영하 ’검은꽃’ - 멕시코

ㅇ 김훈 ‘하얼빈‘ / 박경리 ’토지‘ - 흑룡강성, 길림성

ㅇ 에르네스토 체게바라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 남아메리카

ㅇ 이명환 ’유라시아 견문 -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중동

ㅇ 양정무 ’난처한 미술이야기’ - 지중해

ㅇ 주제 사라마구 ‘눈먼자들의 도시‘ - 포르투갈

ㅇ 이운정 ’누들로드‘ - 중국 서부

ㅇ 하인리히 슐리만 자서전 - 트로이

ㅇ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 그리스

ㅇ 이븐 바투타 여행기 - 북아프리카, 중동

ㅇ 류시화 ’지구별 여행자‘ -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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