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 읽는 법

우울증과 공황장애 환자의 과거1

by 박모씨

과거에 있었던 일을 하나 두 개씩 적어보고자 한다. 내 PTSD가 어쩌다 생겼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일을 떠올리는 것보다 적어두는 게 더 객관적으로 나를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나의 기억력에 의존한 과거의 일이다 보니, 단편적으로 기억하는 일들을 과대하게 받아들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특히나 내가 major depression(주우울증)과 social neurosis(사회 불안 장애)를 r/o 못한 상황이기에 어디까지가 우울증 환자가 아닌 사람에겐 평범한 일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니 글을 읽는 분들이 너무 분노하거나, 나에게 공감하거나, 공감하지 않을 필요가 없음을 알려드리는 바이다.



아날로그시계를 읽는 방법을 초등학교 1학년, 2학년 두 번에 나누어서 배웠던 것을 기억한다. 나에게 시계를 읽는 법은 너무나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다들 아는 것이었지만 나에겐 어려웠다. 12 단위로 셈을 해야 하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평소에는 10 단위로 넘어가는 숫자를 쓰면서 왜 하루는 24시간인가? 하루를 100시간으로 맞추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가?. 마찬가지로, 왜 60 단위로 1분, 1시간이 되는가? 그것은 누가 정했을까?. 왜 시간은 24시간이면서 분은 24분이 1시간이 아니지? 여태 상위의 개념으로 갈 땐 항상 1, 10, 100, 1000…. 순서대로 갔는데.. 시계에는 왜 12까지만 표시되어 있지? 24시간이라면서 24로 표시하면 왜 안 되는 걸까?



읽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어른들 처지에선 퍽 난감했을 것이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정했다고 바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세기말에 몇 명이나 되었을까. 선생님 중에서도 대답해줄 사람이 어디에 있었을까? 당시에는 선생님에게 선뜻 물어보기도 어려웠다. 지금도 그렇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은 일명 `짬`이 많이 찬 나이 많은 선생님이 들어오시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였던 내가 보기엔 그냥 할머니 할아버지였고, 나는 그 사람들에게 물어보기가 싫었다. 전국의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셨던 퇴직하신 분들에겐 죄송하지만, 내가 겪었던 담임 선생님은 전부 그냥 직업이 초등학교 교사였던 사람이었다.



1학년 땐 한 아이가 나를 식판으로 뒤통수를 후려친 일이 있었는데 가서 억울하다고 말을 했더니 둘이 똑같다면서 같이 체벌을 줬다. 초등학교 2학년 땐 성홍열에 걸렸는데 엄마가 나를 억지로 학교에 보냈다. 엄마는 할머니가 아프셔서 돌보러 큰집에 가셔야 했고, 집에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학교에 전화 한 번 하지 않으시고 나를 학교에 보내셨다. 그때 선생님은 나를 혼냈다. 아픈데 학교에 왔다고. 나는 졸지에 다른 애들한테 병균 옮기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그런 사람들한테 내가 무슨 믿음을 가지고 저런 질문을 해볼까? 과연 잘 듣고 대답을 해주셨을까? 저런 거 하나 물어보지 못하게 하는 상황이었으니 대학에 가서도 교수들이 엉망으로 말을 해도 의문을 가지는 사람 하나 없이, 자기 생각이라고는 하나 없이 가르쳐주는 대로 머릿속에 집어넣는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궁금한 점들을 입안에 꾹꾹 눌러 담고 엄마랑 집 앞에 공중전화 부스 옆에 떨어져 있는 버려진 시계로 시간 읽는 연습을 했다. 당시에는 (요즘에도 그러는지 모르겠다. 요즘은 전부 인터넷 텔레비전이라 접속하면서 시간도 뜨겠지) 아침이나 저녁에는 방송사 로고 밑에 시간이 숫자로 표시되어 있었고, 나는 그것으로 시간을 읽었다. 원형으로 된 시계로 시간을 읽는다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심지어 집에 있던 시계는 로마자로 표시되어 있어서 밖에 나와서 아라비아 숫자로 쓰인 시계를 읽는 연습을 해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시계를 못 읽었다. 정오부터 왜 다시 0부터 시작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시침과 분침을 따로 읽는 것이 되지 않았다. 60진법과 12진법을 제대로 읽지 못했던 나는 이 났다. 엄마는 시계조차 못 읽는 내가 싫었는지 혼자서 집에 들어가 버리시곤 했다. 나는 몰라서 계속 질문을 했고, 엄마는 그걸 버티지 못하셨다. 나는 아파트 단지가 떠나가라 울었다. 버림받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시계를 못 읽어서 속상한 마음에 울면, 술에 취한 아빠는 시끄럽다면서 이런 것도 하나 못한다고 시계를 나를 향해 던졌다. 그렇게 우리 집엔 시계가 없어졌다. 생각해보니 그때부터 나는 '이런 거 하나 못하는' 사람이었구나. 시계뿐만 아니라 집에는 사진이 들어가 있는 액자도 없어졌다. 자꾸 던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던짐을 받는 대상은 주로 나였다. (나는 그래서 공놀이를 극도로 무서워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 뒤로는 휴대전화를 확인하면 되었으니, 시계를 굳이 읽을 필요가 없어지긴 했다. 거기에다 매사에 착한 딸이었지만 예민한 자매가 시계 초침이 수면에 방해된다고 하여 우리 집은 아날로그시계를 다신 집에 들이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아직도 어딘가에 걸려있는 아날로그시계를 보는 날이면 시각을 읽고 내가 맞게 읽었는지 휴대전화 시계를 따로 확인하곤 한다.



나에게 시계와 시간과 시각이란, 산산조각이 난 채로 흩어져있는 시침과 분침으로 느껴진다. 그 당시에 지점토로 화려한 장미 덩굴을 만들어 수채화로 색칠한 시계가 유행했음에 고마움을 느낀다. 유리로 쌓인 시계였다면 나는 크게 다쳤을 것이 분명하기에. 사진이 빛에 바랄지도 모르지만, 덮개가 없는 싸구려 합판 액자를 집에 들이신 엄마에게도 감사하다. 유리 액자였다면 나는 크게 다쳤을 것이 분명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