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공황장애 환자의 과거2
사람은 자기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다가 멸종할지도 모른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나도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 내 인생을 상상해보며 아이를 그려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연인과 헤어진 이유 중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육아에 대한 가치관 차이였다. 연인은 결혼을 원했고 아이를 가지길 원했다. 나는 그것이 싫었다. 그러니 그렇다면 되도록 빨리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처음에는 ‘내가 아닌 자기 애를 낳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걸까?’하고 퍽 섭섭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뭐 아이를 원하는 게 잘못은 아니기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헤어졌다. 물론 잦은 다툼과 나를 배려하지 않는 모습에 지쳐서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아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아이들을 좋아한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리고 아이들도 나랑 노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편이다. 나는 그 나이 때 어떤 기분인지, 무엇이 궁금한지, 무엇이 재밌었는지 즐거웠는지를 기억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나랑 노는 것을 좋아한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렇기에 사람은 자신의 유한한 존재가 무한한 세상에 있다는 사실에 항상 괴로워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태어나서 느낀 것들을 다른 사람들이 겪지 않길 원한다. 애인은 자기가 돈을 많이 벌어오겠다고, 아이가 태어난 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게 해줄 수 있으며 육아에 많은 신경을 쓰겠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싫었다. 왜 아이를 가지고 싶어? 라는 이유에 대해서 그 사람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냥 자기는 항상 아이가 있는 가정을 꾸리고 싶어 했다고만 했다. 나는 아이를 가지고 싶지 않은 이유를 수십 가지를 댈 수 있는데 자기는 아이를 가지고 싶은 이유가 그냥 예전부터 그렇게 생각해서라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똑 닮은 아이를 가지고 싶어서, 다른 사람들이 전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데 그 모습을 보고, 아니면 단순히 생겨서, 노후를 위해서 육아를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않을까? 사람들은 아이를 낳고 둘의 사회적인 직위와 가정의 양립에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육아 가치관에 대한 서로 간의 의견이 어떤지 대화를 나눠보고 아이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생각을 해볼까? 그런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 사람의 대답은 “사춘기 이후에는 자기 알아서 잘해야지.”이었다. 나는 역시나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아이를 낳은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누군가의 부모로 살아가야 하는데, 약간의 두려움이나 걱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내가 너무 심각하고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호주제가 없어진 지 10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아직도 ‘아들’을 원하는 조부모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루 말할 수 없다. 우리 집도 그랬다. 딸만 둘이어서 나중에 어찌하느냐는 말을 계속 들었다. 그 말에 가장 많은 동의를 표하는 건 다름 아닌 여성인 엄마였다.
엄마는 결혼 때문에 팔자가 꼬였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5살 즈음 엄마가 ‘너희는 어차피 아빠 밑에 딸려 있으므로 내 딸이 아니다.’ ‘생긴 거부터 못생긴 게 아빠를 닮았다.’ ‘여자는 어차피 결혼하면 출가외인이기 때문에 너희는 내 딸이 아니다.’ 와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매우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아직 기억한다. 여름이었고, 오후였으며, 장소가 어디였는지 까지 기억한다.
최근에는 ‘누구네 집에는 아들이 셋이어서 정말 든든한 할 거야.’ 와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너희는 여자라서 제사를 못 지내니, 나중에 내가 죽으면 이렇게 해라.’ 는 덤이었다. 개인적으로 엄마는 핸들이 고장 난 8톤 트럭으로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유년시절의 저런 말들은 날 상처입히기에 충분했다. 커가면서 듣는 ‘여자가 엄청나게 잘날 필요 없다.’ ‘팔자를 피려면 부자 남자와 결혼하면 된다.’ 등의 말들은 나의 산산이 부수어진 자존감에 한몫씩 했다.
나는 결혼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평생 함께할 반려자를 찾는 것은 외로이 지구라는 행성에 떨어진 생명체에게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집안 간의 결합이라는 인식이 아직 강한 건 어쩔 수 없는 사회의 흐름이고, 나는 그것이 별로 달갑지 않다. 부모님이 두 분 다 돌아가시고 나면 모를까, 노후 준비조차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데다 핸들이 빠진 8톤 트럭 같은 말을 해대는 사돈을 달가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는 정말로 우주의 한 톨 먼지 같은 존재이며 나 하나 정도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갈 거다. 하지만 너의 성염색체가 XX이기 때문에 너는 그냥 결혼이나 잘해서 애 키우는 거만 잘해도 그게 좋은 인생이라는 이야기는 별로 듣고 싶지 않다. 나는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어디서나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는 것은 몹시 어려우며 소수의 성공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패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회라는 톱니바퀴에 잘 맞물리는 톱니 하나 정도가 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나는 애초에 덜 다듬어진 부품으로 태어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젠 저런 말을 하는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화가 참 많았다. 화가 많이 났었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우는 건 지금도 많이 운다) 지금은 그냥, 저들도 이렇게 살고 싶었겠는가 싶어서 그냥 놔둔다. 부족했던 환경을 본인들도 만들고 싶어서 만들었겠는가. 부친은 자의적으로 실업자였으니 만들고 싶어서 만들었던 것 같기도 한데, 뭐 누군들 못살고 싶어서 못사는 건 아니니까. 나의 유년시절을 먹으로 칠해버린 저들을 용서할 수는 없다. 아이에게 말하기 전에 행동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지 않은 그들을 용서할 수 없다. 그냥 이젠 불쌍할 뿐이다.
나이를 먹고 자신이 얼마 있지 않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극락왕생을 바라며 종교에 의존하지만, 결국엔 절에서 제사를 올리도록 1,600만 원을 모아둬야 하는 건 자기 딸도 아니고 남편 딸이면서 심지어 출가외인이 되어버릴 나다. 천륜이 원망스럽지만, 성인이 되고 내가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능력이 뒷받침되어서 되돌아봤더니 저런 생각을 가지면서 산다는 것이 썩 즐거울 것 같진 않아서 가엾다. 가여운 족쇄들이 내 발목에 묶여있고 이것들은 두 생명이 지상을 떠날 때까지 날 붙잡아 둘 것이다. 예측하건대, 나는 이 족쇄가 없어지기 전까진 배우자를 맞이할 마음을 먹을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