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과 몸매, 다이어트

우울증과 공황장애 환자의 과거3

by 박모씨

어렸을 때 남은 강렬한 기억들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나에게 강렬하게 남은 기억은 부친에게 맞았을 때, 모친이 날 버리고 가겠다고 했을 때 등등도 있지만, 몇몇 과일을 처음 먹었을 때 또한 남아있다. 처음 자두를 먹었던 날, 처음 백도 복숭아를 먹었던 날, 처음 귤을 먹었던 날들이 기억난다. 과일은 사치품이고, 따라서 우리 집에선 찾아보기 힘든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만히 해보면, 너무 못 먹어서 복수가 볼록 차오른 갈비뼈가 선히 드러난 아이들이 떠오르기 쉽다. 하지만 선진국일수록 비만은 저소득 계층에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신선하고 질 좋은 음식재료를 사서 직접 요리를 해서 먹을 시간과 여유가 없을뿐더러 그보다는 당장 싸게 먹을 수 있는 공산품들에 손이 가기 쉽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나는 조금 통통한 편이었다. 그렇지만 BMI 수치상 과체중이었던 적은 없다. 집에 먹을 것이 그렇게 풍족하지 않았기 때문에, 있을 때 마구 먹어버리는 습관이 생겼다. 균형 있는 식사를 사서 먹기보단, 500원 짜리 과자를 사 먹는 게 돈이 덜 들었다. 고소한 우유를 좋아했다. 가래떡 하나에 100원 하는 떡볶이를 좋아했다. 그마저도 잘 사 먹을 수 없는 사치였지만, 이러한 식습관은 나를 통통한 아이로 만들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키 148cm에 45kg 이 나갔다. (요즘은 비만 비율이 높아지는 바람에 과체중의 기준이 낮아져서 과체중으로 분류될 체중이다)


그렇지만 가장 큰 문제는 모친과 자매가 아주 말랐다는 점이었다. 모친의 키는 그 연령대 여성치고 아주 큰 편이다. 거기에다 팔다리가 길쭉한 데다 얼굴도 조막만 하다. 자매는 먹어도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다. 모친도 그랬다. 모친은 자주 그런 말을 했다. “나는 키가 165cm나 되는데 한 번도 50kg을 넘어본 적이 없어.” 라고. 그런 모친에게 148cm에 45kg인 나는 얼마나 뚱뚱해 보였을까. 초등학교 졸업앨범을 보면서도 모친은 이렇게 말했다. “어휴 애가 어쩜 이렇게 살이 쪄서.”

비쩍 마른 두 사람과 함께 다니는 나는 아주 이질적인 존재였다. 아파트단지의 모두가 나에게 손가락질했다. "쟤는 집에서 식구들 먹는 걸 다 뺏어 먹어서 그렇다." 이야기했다. 중학생이 되면서 키는 안 크고 2킬로가 더 쪘고, 모친보다 몸무게가 더 나가버리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매주 목욕탕에 같이 가곤 했는데 모친은 입에 거품을 물었다. 키가 이렇게 작은데 자기보다 몸무게가 더 나간다고. 아빠 닮아서 언니도 키 안 크는데 어휴 얘를 어쩌면 좋으냐고 이야기했다.


어쩌면 좋은 애는 고등학교를 155cm 50kg으로 졸업했다. 정상 수치이지만 유난히 마른 사람을 좋아하는 동북아시아의 관념상 나는 ‘통통’한 아이였다. 거기에다 자세가 비뚤고 항상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아이였다. 나는 내 입에 맛있는 걸 먹고 싶어 했고, 그걸 못 먹을 때 너무나 슬프고 화가 났다. 내가 며칠 전부터 먹고 싶어 했던 닭볶음탕을 먹었을 때의 그 기쁨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먹을 것으로부터 얻는 기쁨은 최고의 기쁨이었다. 그리고 못 먹었을 때의 슬픔은 매우 비참했다. 제철이 아니어서, 우리나라에는 없는 것이어서 못 먹는 게 아니라, 돈이 없어서 살 수 없었다.


부친이 자녀를 때리고 폭력을 행사해도 모친에게 가장은 가장이었기 때문에 맛있는 음식은 무조건 ‘아빠 먼저’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꼬막이 먹고 싶어서 꼬막 반찬이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서 식탁 위에 꼬막 반찬이 올라왔다. 나는 아껴 아껴 먹었다. 냉장고에선 3일 동안은 괜찮을 테니까 이틀 정도 반찬으로 먹고 싶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꼬막이 홀라당 없어져 있었다. 부친이 술안주로 먹은 것이었다. 어이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방에 들어가서 엉엉 울었다. 내가 먹고 싶어 해서 한 음식인 걸 알면서 술안주로 다 먹어버리고, 되돌아올 폭력이 무서워 말 한마디 못하고 눈치를 보는 내가 비참했다. 닭볶음탕도 그랬고, 낙지 볶음도 그랬고, 갈치구이도 그랬다. 내가 본 그의 행동은 안하무인 그 자체였다. 나는 그래서 성인이 된 이후로 ‘뭐 먹고 싶어’ 라는 말에 항상 ‘그냥 엄마가 하기 편한 거 해줘.’ 라고 대답했다. 간혹 수박이나 복숭아 같은 과일은 먹고 싶다고 말했지만.

대학에 들어와서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외식하는 일이 있을 때, 이런 거 처음 먹어본다는 티를 내기 싫었다. 그래서 각종 요리 유튜브를 섭렵하기 시작하고, 음식재료와 여러 요리의 이름을 외우기 시작했다. 내가 내 입으로 들어갈 것을 만들 수 있고, 살 수 있는 상황이 되니 먹을 것에 대한 집착이 더 커졌다. 어느 날은 5촌 조카가 자기는 망고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다, 세부에 갔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었다고 했다. 2014년의 나는 망고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집에 와서 엉엉 울었다. 나도 한번 먹어보고 싶다고. 생각해보면 울 일이 아니었을 것 같기도 한데, 그땐 그렇게 먹을 것에 집착했다. 그리고 그만큼, 살찌는 것에 대해서 더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몰랐는데, 사람마다 체형이 달랐다. 나는 아무리 살을 빼도 티아라 뱅크스나 미란다 커 같은 골격을 가질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비참했지만 그래도 나는 날씬한 몸을 가지고 싶었다. 굶기도 했고, 운동도 했지만 건강한 돼지로 거듭났다. 키 158cm에 50kg 전후가 내 몸이었다. 마음에 전혀 들지 않았다.

23살까지는 먹는 것과 몸매에 신경이 곤두서고 살찌는 것에 대한 공포감이 너무 컸다. “이거 먹으면 살찔 거야.” “살찌겠다.” 같은 말이 입에 붙어있었다. 23살 이후로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골격이 크되 흉통은 작은 모델 같은 체형이 될 수 없음에 마음을 놓고 그냥 먹고 싶은 건 먹고 몸에 나쁠 것 같은 음식은 가끔만 먹어주면서 지냈다. 그래도 50kg 전후였고, 내 노력과 곤두선 신경들이 일말의 쓸모가 없었음을 (스트레스받아서 더 쪘을 수도 있다.)체감했다.


약을 먹기 전부터 갑자기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뭔가 먹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들지 않았었는데, 그 때문에 살이 조금 빠졌다. 그러다가 식욕은 항우울제들을 먹으면서 바닥을 쳤다. 식욕에 큰 영향이 없는 약을 처방받았음에도 뭔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누가 봐도 너무 말랐다. 야위었다 말할 정도로 빠졌는데, 이제야 나는 내 몸이 마음에 든다. 얇은 팔다리와 잘록한 허리, 톡 튀어나와 있는 쇄골이 마음에 든다. 이 역시 우울증의 한 증상이며 식이장애까지 이어질 것 같은 증상이다.

모친이 계속 나를 보면 살이 너무 빠졌다면서 집에 갈 때마다 곡소리를 낸다. 아무것도 안 먹고 굶고 다니는 거 아니냐고 그러는데, 왜 엄마가 처녀 때 그렇게 자랑하던 몸이 이런 몸이 아니었느냐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엄마는 별명이 피노키오였어. 무슨 옷을 걸쳐도 예쁘고 잘 맞았어. 나보고 그렇게 애가 뚱뚱하다고 뭐라 하더니 이런 거, 피노키오 같은 거 바란 거 아니었나? 키가 작아서 뭘 걸쳐도 옷이 크니까 그러는 건가? 아니면 인제 와서 자식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조금 달라졌나? 상처는 다 줘놓고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면 도대체 무슨 소용인가? 상처를 잊지 못하는 나의 잘못인가? 남의 생각을 바꾸는 것보다 내 마음을 고쳐먹는 것이 더 쉬운 일이다. 내가 여태 잊지 못하고 마음속에 담아둔 내 잘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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