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공황장애 환자의 과거4
최근에 모친이 피싱을 당했습니다. 제 이름을 한 프로필을 한 사람이 자기가 지금 사고 싶은 게 있다고 상품권을 사서 보내라고 한 것입니다. 쇼핑몰 아이디 없다고 하니, 친절하게 만들어 준다고 하고, 어머니는 순순히 주민등록번호를 알려주셨습니다. 거기에다 카드 비밀번호까지 다 알려주시고 결제도 끝내셨습니다. ㅋㅋ 그리고는 다음날에 저에게 ‘상품권은 어떻게 됐느냐.”라고 문자가 와서 그게 무슨 말이야? 했더니 아차, 하셨던 것입니다. 모친은 당장에 경찰서로 뛰어가셨답니다. 제가 신고부터 하라고 했더니, 1Km를 달려 파출소로 가신 겁니다. 그러고 나서 카카오톡을 삭제하시고 은행에 직접 가셔서 은행 거래도 다 해지하시고 전화국에도 직접 방문해서 휴대전화 번호도 바꾸셨습니다. 그리고 은행과 전화국에 직접 가라고 한 건 저의 형제입니다. 파출소에서 사건 접수를 하여 봤자 경찰서로 넘어갈 텐데, 금융감독원, 은행, 피싱 전담 번호 등에 전화해서 유선상으로 먼저 말하는 게 더 빠를 텐데, 전화번호는 애플리케이션으로도 바꾸는 세상인데 지금 주말이라서 휴대전화 번호도 못 바꾼다고 모친과 자매가 발을 동동 굴리는 걸 보고 저는 말 그대로 ‘미치고 환장 ‘하는 줄 알았습니다. 이 사건 덕분에 저는 며칠 동안 공황 발작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전화가 올 때마다 과호흡이 같이 왔기 때문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이 사건은 100만 원이 안 되는 소액에 어머니가 어머니 아이디로 직접 구매해서 전달해준 거라 경찰에 신고했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끝나버렸습니다.
모친이 제가 어렸을 때부터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엄마는 그런 거 몰라. 알지도 못해.”입니다. 어린아이가 물어보는 것에 대하여 대답하기 어려운 것은 압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있고, 타인이 나와는 다른 상황에 부닥쳐 있으며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적으로 관용되는 것들과 관용되지 않는 것들의 기준은 나이를 먹은 지금에도 너무나 모호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것을 궁금해하는 어린이들에게 설명해주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걸 알지 못한다고 선언해버리고 모르기 때문에 너에게 할 말이 없다고 하시는 모습이 제 유년시절에 한 편의 좋은 기억으로 남지는 않았습니다.
어머니께서 모른다 하신 질문들은 아버지에게로 갔고, 아버지는 제 행동이 바르지 않다며 화내시곤 하셨습니다. 화만 내면 다행이었고, 다른 것들이 뒤따라 오는 날에는 저는 울고 울고 또 울었습니다. 모친은 착한 형제는 그러지 않았는데, 저는 ‘이상하게’ 애가 말이 많고 말을 들을 줄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그 한마디에 저는 못된 어린이가 되었고 못된 어린이는 혼이 나야 했습니다. 물론 제가 고분고분한 성격은 아니었습니다. ㅋㅋㅋ 지금이야 제가 참을 수 있는 범위들이 늘어났지만, 어린 시절의 저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많았고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습니다. 예를 들면, 두 자릿수 끼리의 곱셈이 있었습니다. 저는 곱셈을 하는 방식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고, 어머니께 이것을 왜 이렇게 하느냐고 여쭤보니 “엄마는 이런 거 몰라. 너희 아빠한테 물어봐.” 하고 마셨습니다. 형제에게 물어봐도 형제는 대답해주지 못했습니다. 자매는 그냥 뭐든지 말을 잘 따르는 착한 아이였기 때문에 ‘그냥’ 이렇게 하는 거라고 했습니다. 부친은 ‘이런 것도 하나 제대로 못 하는 한심한 애’라고 하시며 소리를 질렀고, 저는 숟가락으로 머리를 맞으며 엉엉 울었습니다.
다른 부모님들은 공부를 도와주시거나, 적어도 입시에 관심을 가지시는 분들이 많으셨는데, 저희 부모님은 (부친은 아예 기대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지 못하셨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모의고사를 치고 학교 시험을 치면서도 “엄마는 그런 거 하나도 몰라.”로 일관하며 저에게 문제집 살 돈 한 푼 주시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싶으셔서 그러셨을까 싶긴 하지만, 저는 추석과 설날에 용돈 받은 거로 보충교재를 구매했습니다. 정말 다행이었던 것이, 저희 때부터 EBS 연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었기 때문에, EBS 교재만 사면 되었습니다. 한 권에 5~7,000원 정도의 저렴한 가격 덕분에 전 과목 문제집을 사고도 약간의 여유가 생겨 버스를 타고 다닌다거나, 일제 펜을 산다거나, 친구들과 함께 요깃거리를 사 먹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한창 인터넷 교육이 붐을 일으켰습니다. 사교육을 저렴하게 원거리에서도 받을 수 있는 인터넷 강의들이 싹트던 시기였다고 할까요. PMP와 동영상을 재생할 수 있는 기기들도 나오는 시기였기도 했습니다. 컴퓨터가 없어도 동영상을 볼 수 있다는 아주 획기적인 제품들이었죠. 학원에 다니지 못했던 저는, 수학 강의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때 당시 10 강의를 수강할 수 있는 패키지 상품을 팔았는데 가격이 30만 원 정도였습니다. 10강의 면 이론 편, 실전편을 다 듣고도 두 강의를 더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영어강의도 하나 들으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모님께 졸라서 듣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우리 집 식구 중 그 누구도 인터넷 결제를 해 본 적이 없던 것이었습니다. 뭔가 설치를 해라, 공인 인증서로 증명해라, 카드에 이거 입력해라 저거 입력해라 하니 이게 정보를 다 빼돌려 간다고 화를 내시더니 하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어머니는 “나는 그런 거 몰라.” 하셨고요. 부친은 제가 엉엉 우니까 시끄럽다고, 애들이 학생이 벼슬인 줄 안다고 소리를 빽 질렀습니다. 저도 EBS 말고 다른 문제집을 풀어보고 싶었는데, 인터넷 강의가 벼슬이나 되는 집이었습니다.
이 일들은 수시 원서 접수비, 오가는 교통비 모두 제 돈을 쓰게 했고, 부모님은 제 입시에 “모르겠다.” 하셨기 때문에 모든 걸 저 혼자 해야 했습니다. 기숙사에 들어올 때도 택배 보내는 것 한 번 도와주신 적 없고 “모르겠다.” 하셨습니다. 저도 더는 묻지 않고 알아서 지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어머니의 “엄마는 그런 거 할 줄도 몰라.” 와 같은 말이 진짜 모른다는 말임과 함께 “나는 그런 거 알고 싶지도 않아. 내 문제로 만들고 싶지 않아.”라는 뜻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단순히 대답을 해주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런 것까지 알면서 살고 싶지 않다는 뜻 또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마냥 어렸을 땐 어머니가 대답해주기 귀찮고 싫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다가 버림을 받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저는 집 한편에 피난용 종이가방을 놔뒀습니다. 크레파스 같은 것들이 들어있었는데, 엄마가 집을 뛰쳐나간다면 따라가기 위함이었습니다. 부모에게 버림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많이 컸습니다. 내가 반대로 가족을 버리고 싶다는 생각 또한 했고요. 그에 반해 본인은 더 알고 싶지 않다는 뜻은 성인이 되고 나서 더 크게 와 닿았습니다.
모친의 회사에서 원천징수 명세서를 이메일로 제공하겠다 했는데 어머니가 “나는 그런 거 없어. 나는 그런 거 몰라.” 라고 원천징수 명세서를 받지 못한다 하셨습니다. 다니는 절에서 네이버 밴드도 하시는데 그건 하시면서 이메일이 없다고 하시니, 제가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된다고 알려 드렸더니 그렇나. 하시곤 다음에는 또 그런 거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언젠가는 버스 도착 정보가 없는 작은 버스정류장에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곤 하시길래, 네이버 지도를 깔아서 여길 보면 버스가 언제 오는지 뜬다고 알려 드렸더니 “엄마는 그런 거 몰라.” 라고 하셨습니다. “이걸 보면 하염없이 안 기다려도 된다.” 고 말씀 드렸지만 오늘은 이만큼 기다렸어, 오늘도 한참 기다렸어. 라는 소리는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피싱 사기범들과 한 대화를 보니까 “엄마는 그런 거 모르는데.” 하시니 “그러면 주민등록번호랑 가르쳐줘.” 해서 결제까지 했더군요. PC 카톡 같은 건 해본 적이 없으시니 휴대전화 카톡이나 PC 카톡이나 사용자는 똑같은 걸 모르셨던 겁니다. 전화를 해보셨으면 됐을 텐데, 제가 어머니 개인 신상 명세는 다 아는 거 아시면서도, 휴대전화가 고장 났다고 엄마 주민등록번호는 메모장에 저장해둬서 모른다고 하니까 별 의심 없이 보내주셨습니다. 내가 보내달라고 해서 보냈다는 게 마음이 아팠지만 억울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성인이 된 이후로 아무것도 사달라 해달라 한 적이 없거든요. 어머니에게 “내가 언제 뭐 먹고 싶다 뭐 입고 싶다 뭐 필요하다고 사달라고 한 적이 있느냐.”고 이야기하니 “없어서 이번 게 정말 급한 건 줄 알았다.”라고 하셨습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딸이 뭐 하고 싶어한다고 급한가 싶어서 사주셨을 테니까요. 이런 일이 더는 발생하지 않게 이제는 가끔가다 뭐 좀 사내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길로 카카오톡 앱을 삭제 (탈퇴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피싱범 이름이 여러 차례 바뀌면서 뜨는 게 보기가 싫으셨답니다) 하셨고, 그런 거 안 쓴다는 선언을 하셨습니다. 제가 엄마 살 날 동안 이 기계 없이 사는 거 보다 이 기계 가지고 살아야 하는 날이 더 많을 텐데 어떻게 쓸지는 지금이라도 조금씩 배우는 게 맞지 않겠느냐고, 사기 친 사람이 잘못한 거지 이걸 잘 써야 나중에 다른 것들이 나와도 불편하지 않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내가 말할 때 좀 잘 듣고 내가 한두 번 이야기 하는 것도 아니고 제발 써버릇하시면서 쓰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되돌아오는 대답은 “이런 거 쓸 줄 몰라.” 였습니다.
최근에는 길을 잃어버려서 길을 물어보는데 사람들이 전부 말을 섞지 않으려고 했다고 하셨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찾아서 보시라고 했다고 세상에 어떻게 인간들이 그러냐며 씩씩거리면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제가 차분하게 요즘 초등학교에서도 애들한테 어려운 사람을 도와줘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제가 도움될 다른 어른을 불러드릴게요 라고 가르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건물이나 장소 같은 경우에는 검색하면 바로 나오는데, 요즘 워낙 말 붙여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아서 그런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도 앱 저번에 깔아서 어떻게 쓰는지 보여줬잖아. 하니 “엄마는 그런 거 몰라.” 하셨습니다.
매년 집에 와서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아 부모님 연말정산을 제가 대신 제출하는 상황이 오면, 나는 학교 때문에 나가 살아있었는데, 집에 있던 자매는 뭘 했길래 매년 내가 집에 와서 이걸 해야 하는지 짜증이 났습니다. 한 번 하고 끝이 아니라 부모님을 불러 컴퓨터 앞에 앉히고, 이걸 입력하고 이걸 눌러서 파일을 만들고, 여기로 메일을 보내라고 했으니까 보내면 된다. 하고 공인인증서 로그인도 한 번씩 해보시게 하는데도, 매년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디까지 모르고 싶어하시는 건지 궁금합니다. 어디까지 모르고 지내야 본인의 마음이 편안한건지 궁금합니다. 두분 다 늦둥이셨기 때문인지, 어딘가 모르게 두분에게서 구한말의 모습이 느껴지곤 합니다. 독 짓는 늙은이도 결국엔 모든걸 포기하고 가마안에 들어가 죽어버리는데, 세상 돌아가는 것이 어떤지는 알고 지내셔야 하시지 않을까, 여기저기 눈과 귀를 열어두셔야 할텐데 어쩌다 제3공화국에 아직 머물러 계시는지, 씁쓸합니다.
저도 다른 사람들의 질문이나 칭찬에 자조적인 내용을 섞어 이야기하곤 합니다. “제가 뭐라고요.” 같은 말을 자주 씁니다. 제가 정말 쓸모없고 하찮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말들인데, 어머니도 비슷한 마음일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조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짜로 저를 버리고 도망가셨다면 제 인생은 더 불행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