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 치료일지02

by 박모씨

나는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나 자신을 숨기고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내 경험과 내 느낌을 말하고 싶지 않아 하기에, 다양한 주제에 대해 폭넓게 공부하는 습관을 지니게 되었다. 또 일정 부분을 걸러서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들만 한 점들을 걸러내고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선에서 나의 경험을 각색시켜 이야기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정말 좋은 점이고 괜찮은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많은것을 알기위한 노력들이 손해가 된 적은 없고 나는 박학다식한 편이라고 자부한다.


단지 친구가 많지는 않다. 아무래도 사적인 이야기를 주고받고 대화를 하지는 못하니까. 그냥 어쩌다 같이 밥을 먹다 이야기하면 재밌는 사람 정도로 생각되는 게 나도 편했다. 그래도 상대방의 화제에 대해 할 말이 많다는 것은 잠깐이라도 대화를 재밌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원천이 되어준다. 그렇지만 이성의 경우 아 이렇게까지 나의 말을 받아주는구나 싶어 오해 사는 일이 많았고, 동성의 경우 내가 아무리 말을 잘 받아주더라도 나랑은 상관없다는 데면데면한 태도가 안에 숨어있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는 데다 `아는 건 그렇게 많으면서 너는 왜 안 해?`의 의문을 품는 경우가 많았다. 남들이 다 하는 이거, 저거, 말을 잘 하는데 다 안(사실은 못) 하는게 바로바로 눈에 보이니,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언뜻 보기에도 사랑을 듬뿍 받고 바르게 잘 자란 아이들이 있다. 그런 아이들 옆에는 항상 사람이 모인다.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동글동글한 성품에 사람들은 이끌리기 마련이다. 나는 그것이 참 부러웠다. 나도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부모님은 인간관계에 대한 조언을 해주지 못하셨다. "엄마가 어렸을 때는 그런 것도 없었어." "너희 아빠가 친구가 있을 거 같니." "엄마도 친구 같은 거 없어." 등의 이야기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한평생 식구들이 각자의 `친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성정이 예민한 편인 자매는 항상 친우 관계에 힘들어했다. 나는 부모님이 친구를 아무도 모른다. 아빠는 직장이 없었고, 엄마의 직장 동료는 그냥 직장 동료일 뿐이었고, 그들의 자녀가 뭘 했다 뭐가 됐다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화가 났다. 모친은 그냥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었겠지만, 누구네 집엔 아들이 셋이어서 든든하겠다느니, 누구네 집 애는 하루에 얼마를 번다느니, 어느 집은 어디로 이사를 했다느니 등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자괴감으로 똘똘 뭉친 나는 화가 났다.


나는 그들과 다르게 살아보고 싶었다. 좋은 친우 관계와 즐거운 인간관계를 만들어 즐겁게 지내고 싶었다.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그 애 참 괜찮다.` `사람이 좋다.` 같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가족이 개차반이니 주변에 사람들을 잘 만나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열심히 노력했다. 항상 웃었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대하고자 노력했다. 일하면서 전화를 받으면 발신 측 회사에서 정말 친절하시다고 칭찬해주실 정도로 나는 노력했다. 그러면서 내 일도 잘하고 싶었다. 공부도 잘하고 싶었고, 열심히 돈도 벌고 장학금도 받고 싶었다. 대외활동도 해보고 싶었고 신나게 놀고도 싶었다. 물론 결과는 처참했지만.


사금파리를 얼기설기 붙여 만든 내 그릇은 작디작았다. 나는 그걸 인정하기 싫었다. 그래서 열심히 덧칠했다. 조각조각 난 나를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다채로운 색깔을 칠하려고 노력했다. 당연히 잘 안됐다. 나는 `참 괜찮은 사람` `좋은 사람` 밑에서, 곁에서 자라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가진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가질 수 있는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친구들과 학원을 같이 다닐 수 없었고 밖에 나가서 놀 수 없었다. 나는 쉬는시간에 나가서 빵을 사먹지 못했다. 돈이 없었으니까. 대학에 들어오고 무심하기 그지없는 개인주의를 겪으면서 나는 점점 더 사람이 무서워졌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지 않게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쟤는 저래` 라고 단정을 지어지는 것이 무서웠고, 나의 본질을 나조차도 알 수 없었기에 나 자신을 보여주기 싫었다. 내 가난을 들키기 싫었고, 말해주기도 싫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면 즐거운 척을 하며 대답을 해줄 순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과의 독대는 너무나 불편했고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갖은 핑계를 대며 피했다.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나는 매우 무기력한 상태로, 내 주변엔 정말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다. 연인이 있었는데 (지금은 헤어졌다) 내가 치료를 받겠다고 하니 치료를 받지 않았으면 했다. 내 경제적인 상황이 나아지면 나아지지, 나빠지진 않을 텐데, 나아질 일만 남았는데 왜 치료를 받느냐고, 치료를 받는 것에 대해서 반대했다. 후에 혹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그런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혼자 외로이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막상 치료를 받으며 좋아지는 모습을 보이니 나중엔 함께 응원해줬다.)


앞에서 말했듯이 병원에서 큰 상담은 함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나의 상담 종이와 나의 어린 시절을 간략히(매우 간략히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부분으로만) 설명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원장님은 말씀하셨다. "회피 성향이 강하시네요."라고. 안 괜찮은 일들을 별거 아닌 듯이 괜찮게 말하고, 억지로 웃으면서 그 상황을 회피하려는 성향이 강하다고 했다. 순간 표정이 굳었다. 그걸 알아차리고 앞에다 말한 사람은 원장님이 처음이었다. 나는 그렇지 않아도 사람이 많은 넓은 공간에 가면 순간 어지러움을 느낀다. 특히 갑자기 천장이 높아지는 교회, 성당, 강당 현관에서 어두웠다가 갑자기 거실로 들어서면 밝아지는 친구네 집, 기다란 복도 등등에 들어서면 어지러움과 동시에 무서움을 느낀다. 사람이 많은 마트의 무빙워크를 타고 다니며 내려다 보이는 와글와글한 사람들은 정말 최악의 광경이다. 이런 것들이 전부 대인 관계에 대한 공포와 함께 찾아올 수 있는 증상이라고 했다.


나는 지금 좋은 사람이 되길 완전히 포기한 상태이다. 잘 지내보려고 애써봤지만, 상처만 받은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십수 년을 허송으로 보낸 거 같아 억울하고 서럽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싶고 어울리고 싶다. 하지만 막상 실천하기엔 괴롭다.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친구들을 보고 오면 삼일을 내리 앓는다. 이젠 말을 하려고 해도 잘 나오지 않고 두서없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진정제의 영향도 있겠지만, 점점 더 멍청이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삼일동안 몸살을 앓는 이유는 내 약점을 들키기 싫어 갖은 애를 쓰기 때문일것이다. 내가 이렇게 어두운 면이 있고 모나게 자라왔으며 상처만 남은 가정환경을 가지고 있다는것을 들키는게 무섭다.


그래서 이젠 그냥 아예 나 자신을 다른 사람과 격리하며 지켜내고 있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했던 노력이 아깝다. 나는 어찌 되었든 사랑받고 자란 행복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데, 나의 과거는 바꿀 수 없는 걸 알면서도 마치 그랬던 것 처럼 연기 하는 게 괴로웠다. 하지만 아직도 꿈꾼다.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밝은 사람인 나를 가끔 상상한다. 그러고 나선 다시 절망한다. 지금은 아무것도 새로 알고 싶지도, 느끼고 싶지도 않다. 더 미련이 없는데 내가 하루하루를 지속해야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되묻는다.


이번 주에 심리상담을 받기로 했다. 사실 그분도 나에게 큰 해결책은 못 줄 것이다. 하루에 30분 이상 햇볕을 쬐어 보세요. 긍정적인 말로 하루를 시작해보세요.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땀을 흘릴 정도로 운동을 해보세요. 커피를 줄이세요. 같은 하등 쓸모라곤 없는 말이나 안 하면 다행일 것 같은데, 내 말을 들어주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이니 어디라도 말할 데가 생겼다는 데에 의의를 두려고 한다. 그 사람이 보기엔 난 그냥 한 명의 정신병자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했던 노력을 조금이라도 알아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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