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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7할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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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씨 Jan 22. 2023

살인은 범죄여서, 꽃을 꽂습니다.

MZ 직장인의 스트레스 해소법

친구도 가족도 연인도 없는 읍단위 소도시에서 산지 어언 3년 차, 내 일상은 큰 도시에서 살 때와 별반 다른 것이 없다. 대도시에서 살 때도 사회생활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은 인간관계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인간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예전 회사에서 일을 할 때나 지금 회사에서 일을 할 때나 여전히 '제일 어린' '여자 직원'인 나는 만만해 보이는 대상이라 그런지,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들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말은 나에게 언제나 가혹하다.


나는 항상 사회적인 위치나, 나의 학벌이나, 직위가 나라는 사람을 대변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사실 지금이야 같이 일하는 관계니까 예의를 차리지, 밖에 나가서 만나면 나도 그냥 길에 지나다니는 이모 36번 정도 되는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다 같이 남의 돈 받아먹고사는 주제에 싸우고 다투어야 할 가치를 나는 못 느끼겠다. 회사라는 거대한 덩어리는 어떤 사람이 아니라 어떤 이득을 위해 굴러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포용적인 자세를 가지도록 노력하는 게 사회생활을 하는 내가 모두에게 갖출 수 있는 최고의 예의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조종할 수는 없어서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지도 모르겠다.


지난여름에는 여름 방학 동안 실습을 온 학생들과 야외 콘서트를 함께 보러 다녀왔다. 행사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한 학생이 나에게 물어봤다.


'선생님은 직장 생활하면서 스트레스 안 받으세요?'

'당연히 많이 받지!'

'항상 태연하셔서 안 받으시는 것 같았어요.‘


이어서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면 좋으나 싫으나 하루의 많은 시간을 회사 동료들과 함께 보내야 하는데, 그 와중에 사람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결할지 걱정이라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사실은, 스트레스의 원인을 제거하면 가장 손쉽게 해결할 수 있잖아?'

'네'

'근데 살인은 범죄니까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내가 곧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실습 학생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조언이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된다고, 업무가 싫으면 내가 떠나면 그만이겠지만, 나는 내 일이 좋다. 적당히 명분도 있고, 성취감도 있고, 일을 하고 난 뒤의 결과가 깔끔해서 좋다. 가끔가다 받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만 잘 이겨내고 싶기 때문에, 적당히 범죄가 아닌 다른 방법을 찾아냈다.

그 해답은 꽃이었다. 나는 꽃을 좋아한다. 꽃집에서 판매하는 절화도 좋지만, 길가에 심어져 있는 심어져 있지 않더라도 저절로 자라난 생명들을 모두 좋아한다. 오랫동안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불행해하던 나에게 어차피 져버릴 꽃을 애써서 피워나가는 식물들의 이 노고는 큰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돈을 벌면서 '내가 좋아하는' 행위에 대한 투자를 해보자는 마음으로 나는 가까운 문화센터의 꽃꽂이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꽃을 꽂을 땐 꽃만 생각하게 된다. 절화 자체가 하나의 생명을 꺾어 상품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꽃을 꽂을 때면 매일의 일과와 사건사고를 모두 잊고 이 소중한 생명을 어떻게 가장 빛나게 만들 수 있을까만 고민하게 된다. 매주 수업이 있는 날이면 손에 가득 베인 편백나무의 향기, 유칼립투스의 향기, 집안에 퍼지는 장미향기, 산동백의 생강향기를 맡으며 잠이 들었다.


그렇게 꽃꽂이를 시작한 지 3년, 꽃 덕분에 나는 출근이 하기 싫어도 꽃 꽂는 날을 기다리며 지낼 수 있었고, (절화의 특성상 노지에서 자라는 꽃들보다 2-3달 정도 일찍 피워 시장에 출하되기 때문에) 다가오는 계절을 미리 느끼며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감회를 크게 느낄 수 있다.


꽃을 어느 정도 만지다 보니,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아무래도 '꽃집을 하고 싶어?'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는 항상 '취미로 할 때가 제일 재밌는 것 같아요.' 하고 말씀드린다.


 회사 돈 받아가며 회사가 교육시켜 주는 일만 해내는 것도 힘들고, 같은 팀으로 비슷한 이해관계를 가지는 사람들끼리도 의견충돌이 일어나는데, 내 사업체를 꾸린다는 것 자체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무래도 나는 회사 안에서도 버티는데 총력을 동원하고 있으니 다른 환경에서는 더 힘들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갑자기 돈이 쏟아져 나오는 화수분이 생기지 않는 이상 회사는 계속 다닐 것 같고, 스트레스는 계속 받을 것 같다. 아마도 내 여력이 된다면 꽃은 계속 꽂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년부턴 매주 혼자 집에서 즐기던 꽃을 회사 로비에 놔두기 시작했다. 앞선 계절과 생명을 담은 꽃들을 보며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다 같이 좀 더 행복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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