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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7할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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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씨 Mar 03. 2023

남자친구 부모님이 나를 반대한다.

나에게 남은 7할의 삶을 너와 함께 할 수 있을까

엄마가 걱정이 된다고 하시네.


내 삶에서 결혼이나 육아는 내 인생에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 집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괜히 이미 어느 정도 불행한 내 인생에 멀쩡한 다른 사람을 끌어와서 불행하게 만들까 봐 겁이 났다. 세상에 왜 태어나서 살아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는 의구심을 가지게 한 내 유년시절을 생각해 보면 아이도 그다지 낳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더없이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같이 있고 싶고, 불완전한 서로를 계속 보듬어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사람이 내 곁에 있다면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코와 이마가 높아 잘생긴 얼굴을 보면, 아주 우습지만 이 유전자가 후대에 길이 남아야 할 텐데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함께 연애를 시작한 지 1000일이 지났다. 결혼 적령기에 아주 사랑하는 사이인 우리 둘은 자연스럽게 결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가끔가다 힘든 날에는 예쁜 드레스를 입고, 좋아하는 꽃을 한 아름 움켜쥐고, 옆에는 말끔한 남자친구를 두고 무대의 주인공이 되는 날을 상상하기도 했다.


그런 우리에게 큰 고난은 바로 나의 부모님이었다. 용기 내서 말했다. '나랑 결혼하고 싶으면, 네가 부모님께 우리 집 사정을 어느 정도 언질을 해줬으면 좋겠다.' 남자친구는 말해도 괜찮을까 했지만, 아셔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말씀을 안 드리면 그건 거짓말이고 사기를 치는 것 같았다.


우리 집 사정을 궁금해하시던 어머님 아버님께 남자친구는 저녁을 먹으며 조용히 말했다고 한다. '여자친구네 부모님께서 노후 준비가 안되어 있으시다. 부채가 있는 건 아니지만 재산이 따로 있진 않으시다고 했다.'


부모님과 대화하고 한참이 지난 후에 내가 물어보고 나서야 남자친구는 부모님의 대답을 나에게 말해줬다. 내가 예상했던 바와 같이 남자친구네 부모님께선 걱정을 표하셨다고 했다. '둘이 좋아서 하는 결혼생활도 힘들기 마련인데 더 힘들 거다.' '걱정이 된다.'라고 하셨다고 했다. 


'걔랑 꼭 만나야겠냐' '나는 반대한다.' 하시지는 않았지만, 당언컨데 환영 또한 하시지 않았다. 


나는 알고 있었다. 가난하게 지낸 나는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게 사치라는 걸. 버젓하게 잘 키워낸 아들을 가난한 집에 장가보내고 싶은 부모님은 없으리라는 걸. 가난하지만 행복한 집은 없다. 가난하지만 행복하다 하는 사람들은 불행할 정도로 가난하지 않은 것뿐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빈곤의 수렁에 발을 담그는 것을 누구든지 탐탁지 않게 여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화기를 내려놓고 한참을 울었다. 글쎄, 예상은 했었지만 나는 무슨 대답을 바라고 있었던 걸까 잠깐 생각했다.


그 아이는 그런 환경이었는데도 그렇게 바르게 잘 자랐구나, 참 대단하다. 정말 대견하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삶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했다.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공부를 열심히 했고, 돈을 잘 벌어야 했기 때문에 회사에 취직했다. 드디어 나도 한 사람으로 오롯이 살 수 있다고 생각했고, 내가 원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을 선택하고 싶었는데, 결국에 나에게 주어진 선택권은 없는 것이구나 싶어 슬펐다.


공들게 쌓아온 벽돌들을 보여주며 환영받고 싶었는데, 결국엔 모래밭 위에 세워둔 것이라 아무 소용이 없는 거구나,


다음날을 준비하기 위해 침대에 누울 때마다 하루하루 열심히 지내는 거, 이게 다 무슨 쓸모가 있을까 싶어 눈물이 났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데이트를 하는 날이 다가왔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남자친구에게 말했다.

'그냥 내일 만나지 말까?'

남자친구는 화들짝 놀랐다. 슬퍼서 그렇다고 했다. 나도 환영받고 싶다고, 환영받지 못할 거면 그냥 안 만나는 게 맞지 않을까? 했다. 남자친구는 걱정 말라며 괜찮다고, 울지 말라고, 만나서 같이 즐겁게 있자고 말했다.


다음날 만난 남자친구는 추운 날에 빨개진 손으로 내가 좋아하는 꽃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달콤한 향기가 나는 장미 한 송이와, 별사탕 같은 분홍색 꽃이 들어 있었다. 눈물이 많은 편이라 그런가 눈물이 또 돌았다. 그날 한참 동안 손을 잡고 있었더니 서로의 손에 다시 온기가 돌았다. 그렇구나, 서로가 있으면 다시 따뜻해지는구나, 나는 너를 좋아하는 보다.


다음날 화병에 꽃을 꽂으며 생각했다. 내가 슬퍼해서 엄마아빠가 부자가 되고, 우리 집이 행복해질 수 있었던 거라면 이미 세계 재벌 순위에 들어야 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타인의 문제에 대해서 신경을 덜어내는 법을 배워야 하는구나.' 

가난한 부모님은 내 손에서 완벽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니까, 더 이상은 슬픔을 만들어 내지 않기로 했다. 이미 이런 걸 내가 어떻게 하겠어, 어쩔 수 없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래밭에 벽돌을 쌓는 것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쌓아 올리는 벽보다 쉽게 무너지고, 모래에 잠기겠지만, 선택의 가짓수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구나. 무력함과 자신감이 함께 은은하게 맴도는 아이러니한 깨달음 속에 아주 조금 마음이 편안해졌다. 앞으로도 그럭저럭 지내야지. 그 곁에 네가 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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