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가 되고, 회사와 거주지역이 달라지고, 생활하는 환경이 달라지면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기가 참 어려웠다. 즐거운 대화를 하기 위해선 불편하지 않고, 유쾌한 주제이지만, 공통분모 또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이후 고향에서 떠나온지 10년이 넘었고, 대학을 나오고 나서도 다른 친구들이 선택하지 않은 독특한 직장을 선택했고, 회사 사람들과도 나이차이가 많이 났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가족들에게 무거운 정치 이야기나, 주식 투자, 부동산 이야기를 그다지 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고 옛날 추억 이야기만 계속 하고 싶지도 않았다.
업무상 만나는 직장 동료들이나 거래처 사람들과도 업무 관련 이야기를 빼고는 진중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고민과 시름을 말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런 주제에 대한 여러 의견을 딱히 듣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뭔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거나, 내 개인적인 이야기만 잔뜩 해대서 사회생활에 적응 못하고 다른 사람들과 우정과 친밀함을 쌓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주제는 똥이었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공통분모이지만, 사람마다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왜인지 모르게 조금 은밀하고, 가벼우면서 유쾌한, 똥.
똥은 정말 좋은 주제였다. 친밀함의 정도에 따라 지저분한 정도를 정해서 이야기할 수 있었다. 친한 사이에선 조금 더 세밀하게, 덜 친한 사이에서는 똥을 잘 쌀 수 있는 방법 등을 진중히 토의하는 정도로 단계를 설정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
나의 똥토크의 예시를 단계별로 보여드리겠다.
친밀한 사이에는 오늘의 똥 이야기를 가끔 한다. 오늘은 정말 멋진 똥을 쌌다. 변기에서 빛이 났다.라는 이야기를 하며 운수가 좋은 날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 집 변기 상황을 공개하기가 좀 민망하다면, 여러 가지 상황을 가장한 똥토크가 있겠다.
가장 최근에 친구들과 한 똥 이야기는 바로 회사에서 똥을 쌀 수 있는가에 대한 토론이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심적인 안정감이 괄약근의 운동과 관계가 있는 편이라, 될 수 있으면 집에서 용변을 보는 편이었다. 그 반면, 과민성 대장 증후군을 앓고 있는 친구 A양은 ATM기가 있는 곳이나 서점, 백화점에만 가도 화장실을 꼭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친구 B군은 회사에서 똥 싸면서 돈 버는 기분이 좋아서 꼭 회사에서 싸야 한다고 했다.
배변 이야기는 직장에서도 계속된다. 아이가 변비가 너무 심해서 걱정이라는 직장 상사와 함께 유산균, 결장을 마사지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한다. 아침 정수기 앞에서 미지근한 물을 받는 나에게 '선생님은 물을 미지근하게 드시네요?'라고 물어보는 다른 팀 사람에게 귓속말로 '미지근한 물을 마시면, 모닝똥을 쌀 수 있어요.'라고 은밀히 말하고 깔깔 웃어대기도 했다.
모두가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지만, 왜인지 모르게 은밀한 그것, 똥. 그래서 나는 똥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들과의 은밀한 유대감을 만들어내는 것이 즐거웠다.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프로이트는 18개월부터 이후 3년을 유아기의 한 과정인 항문기라고 했다. 똥은 사람이 태어나서 처음 몸에서 만들어내는 결과물이기 때문에, 이를 보고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즉, 배설의 기쁨을 즐기는 시기라고 한다. 그래서 예닐곱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책 중에 유독 똥, 방귀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나, 나는 나이 서른이 넘고도 똥 이야기가 참 재밌다.
오랜만에 모두의 똥에게 안녕을 물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걸 감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