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귀인을 만나실 거예요
이미 만났을까, 아직 못 만났을까, 혹은 놓쳤을까?
작년부터 연초에 사주를 한 번씩 보고 있다.
어렸을 땐 사주를 보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는데, 내가 나이가 들면서 현실에 치이고 기댈 곳이 필요해지니 자발적으로 찾게 되었다. 좋은 소리를 듣고 싶기도 하고,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가 듣고 싶은 소리만 더 잘 들려서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게 되어 좋다.
한 해의 운을 월별로 나누어서 듣는데, 2019년 말에 사주 보는 언니로부터 들은 2020년 운세가 꽤 들어맞은 부분이 있어서, 동일한 언니에게 2021년의 운세도 보았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올해 내가 귀인을 만날 것이라는 말. 그래서 나는 올해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 나도 모르게 한껏 긴장을 하고, 잘하려고 노력한다.
'혹시 이 분이신가? 내가 올해 만날 귀인?'
동서남북 어느 쪽에서라도 오는지 알면 좋으련만, 회사에서 만나는지, 길에서 만나는지, 친구로 만나는지, 평생의 반려자는 아닐지, 나이는 몇 살인지, 여자인지, 남자인지, 하나라도 알면 좋을 텐데 올해 귀인을 만날 것이라는 말밖에 듣지 못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는 귀인 후보 1이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밉보이지 않으려고,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친절하고 다정하려고 하니 진이 빠지고, 어쩌다 내가 그 사람을 거절하는 상황에서는 혹시나 내가 귀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굴러온 복을 걷어차버리는 것은 아닐까, 불안하고 두렵기도 하다. 다시는 귀인을 못 만나는 게 아닐까 하며.
그렇게 모든 사람들을 귀인 후보 1, 2, 3으로 보다가 얼마 전 다시 사주 보는 언니에게 상담받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부분이 있어 연락을 취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듣고 싶은 말을 들은 후, 약간 투덜거렸다. 올해 귀인을 만난다는 이야기를 해줘서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잘하게 되는데, 이게 너무 어렵다고.
사주 보는 언니는 그러라고 그 말을 한 거라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잘하라고 말했다. 거기서 구체적으로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디서 만나는지 물어봤어야 했는데 넘어가버렸다... 결국 나는 올해가 가기 전까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귀인 후보 1, 2, 3으로 여기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럼 적어도 귀인을 놓쳤다는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다. 연말이 되면 ' 아, 이 사람이었구나!' 하면서 새로 알게 된 사람을 나의 최측근으로 만들어두었길 기도할 뿐.
사주 보는 언니가 센스가 있다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나에게 똑같이 말해줬으면 좋겠다. '올해 귀인을 만나실 거예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