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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ara Mar 20. 2024

#19. 내가 너를 응원해?_자매의 간극

성장일기 _ 일상

오랜만에 막내 동생에게서 카톡으로 연락이 왔다.


"언니 잘 지내지? 별일 없어?"

"응. 그냥 똑같아."

"언니가 멀리에서 너무 고생이 많아."

"내가 뭘...."


우리 집은 딸이 네 명이다. 결혼 전 내 친구들은 우리 집 식구들을 많이 부러워했다. 자매들끼리 모여서 재밌게 얘기하고 친구들이 놀러 올 때면 우리 자매들은 하나와같이 반가워해주며 재밌게 수다를 떨었다.   


그러나 하나둘 결혼을 하고 우리 자매들에게 또 다른 가족들이 생기면서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자주 얘기를 나누지 못하니 오해도 생기고 서로에서 서운함 들도 많이 쌓여만 갔다. 


나는  아이 낳기 전까지의 극이성주의자에 속했다.  쓸데없이 오랜 시간 통화하는 것도 싫어했고, 용건 없이 누군가에게 연락하는 법이 없었으며 세상에서 일이 가장 우선이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와 달랐던 막냇동생 내 기준으로 쓸데없이 연락하여 감성팔이만 하는 한심하게 아이라고 생각을 했었고, 매번 동생에게 전화가 오면 용건이 뭐 하며 동생의 하소연을 들어주다 한마디 조언을 한다며 뼈 때리는 말들로 상처를 주었었다. 


그 후 동생은 상처를 받았다며 다시는 연락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곤 한동안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내가 사는 게 너무 바빠서 동생을 감정을 안아줄 여유가 없었다. 


사실 내 감정조차도 모르고 살 시절이었기에 감정이 중요하지 않은 나였다. 동생과 전화를 끊고 마음 한편에 찜찜함과 안쓰러움도 남이 있지만 내 이런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잘 몰랐던 것 같다. 


 마음깊이 동생을 무지 아꼈지고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했어도 그것을 표현하는데 서툴러서 했던 말들이 동생은 나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나는 아이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나간 것 같다.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배웠다. 아이들은 잘 알려주었다.  속상한 일이 있어서 방에서 시무룩하게 기죽어 있는 나에게 방으로 조심히 들어온 딸은 


"엄마! 안아줘!"

속으로 생각했다. 내 맘도 모르고 이 아이는 엄마를 가만히 두지도 않는구나.


"엄마 지금 좀 쉬고 싶어. 나중에 안아주면 안 될까?"

"그럼 엄마! 내가 안아줘도 돼?"

"......"

딸은 나를 안아주었다.


"엄마.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람이야!"


고작 6살 아이입에서 나온 말이라니 가족들이 많은 환경에서 자라 워낙 언어구사력이 좋았던 딸이지만 이런 말을 해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 예쁜 말 어디서 배웠어?"

"막내이모가 알려줬어."

"그래? 막내이모가 알려줬어?"

"응"

"막내이모 너무 멋지다. 그렇지. 그리고 엄마한테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그 말을 한 후 아이는 나를 한번 더 꼭  안아주었다. 내가 은혜받는 기분이었다.




워킹맘이었던 나는 늘 시간에 쫓기며 바쁘게 살았고 결혼하지 않은 동생은 친정엄마가 내 아이들을 육아하니 자동적으로 부모님과 함께 나의 아이들을 공동육아하고 있던 것이었다.  


막냇동생은 나의 성공지향적 태도와 이성적인 말투를 싫어했던 것 같다. 나는 동생의 감성적인 것에만 집중하고 몰두하는 망상가라고 생각하고 늘 머물러있는 모습을 싫어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책을 좋아하는 공통점이 많아서 동생에게 종종 책을 선물해 주었고 동생은 두말없이 선물한 책을 읽곤 하였다. 책을 읽고 나서 느낀 점을 공유하며 감정을 나누곤 하였다.  그때는 참 잘 맞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서로 다른 성격 탓에 한동안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지 않고 대면대면 지냈던 적도 있었다.  그때도 동생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동생에게 공감보다는 그 아이에 선택에 대한 질타를 많이 했었고, 내가 언니라는 이유로 인생의 선배라는 이유로 그 아이가 원치 않는 정보와 가르침을 주고 싶어서 나는 안달이 났던 것 같았다. 도움이라는 핑계로 내 뜻대로 내 욕심대로 이끌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멀어졌었다. 





동생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조카는 천사같이 이쁜 아이였다. 100일이 되었는데 고개를 잘 가누지도 못하고 뒤집기도 어려워했다.   좀 늦은 아이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렇게 아이의 상태가 점점 호전되지 않아 

동생은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여기저기 찾아다녔고 아이는 근육이 잘 성장하지 않은 불치병을 진단받았다. 


근육이 붙지 않아 뼈를 지탱할 수 없는 불치명 그래서 조카는 걷지 못하고 있다.  


예전에 내가 가지고 있었던 동생에 대한 한심한 마음이 이제는 동생을 향한 존경스러움으로 변했던 시기도 이쯤이었다.  내가 그동안 했던 많은 행동들과 대화들은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 조직원에게 대하는 태도와 말투였고 그것을 가족에게 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러나 동생은 언제나 공감하고 배려하는 말투와 행동을 했기에 언니의 모진 말을 겪으면서도 언니 곁에서 나를 응원해 주면서 살고 있었다. 본인의 아이가 아프고 힘든데도... 


그녀는 종종 나에게 문자를 보내서 

"언니가 힘들 때 허물없이 누군가에게라도 의지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했으면 좋겠어!"

"언니는 괜찮아. 안 힘들어."


이게 내 대답이었다. 워킹맘으로 살던 나는 동생의 문자가 참 시큰둥하고 할 일 없는 사람들이 보내는 문자로 치부되었다.


진짜 그때는 그 힘든 감정이 무엇인지 몰랐고 나는 공감력 0인 사람이었기에 지금에 내가 돌아본다면 참으로 상종하기 어려울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람이 이 잘 안 변한다고는 하지만 사람은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증명할 수 있다. 


가끔 동생을 바라보고 있으면 천사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아이가 한참 어릴 때 유모차에 태워 밖으로 나가면 4,5살이나 되는 아이가 유모차에서 앉아 있으니 사람들이 계속 아이의 상태를 질문하거나 혹은 아이들 데리고 식당에 가면 의자가 있는 자리가 아니라 방으로 안내해 달라고 하여 아이를 눕히고 외식을 하니 사람들이 다가와 아이가 왜 그러냐고 질문하면 동생은 얼굴 찌푸림 없이 모두에 거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 동생이 덧붙였던 말은 "우리 아기 걸을 거예요."였다.


만약 나였다면 분명 많이 괴로워하며 세상으로 나갈 생각도 하지 않고 세상을 원망하며 숨으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동생은 언제나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 아이 걸을 거야"


그 이름 모를 확신 그 앞에 나는 언제나 물었다. 


"아는데 재활치료받아봐. 그래도 다 해봐야지"

"언니 다 받아봤지."

"그래도 더 노력해 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안 해봤겠어? 언니?"

"그랬겠지. 그래도.."


오랜 시간 나는 동생에게 재활치료를 권하기도 하고 최선을 다해서 여기저기 더 좋은 선생님 찾아가라며 걱정정을 핑계한 참견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날도 나는 동생에게 뉴스기사를 보내면서 이곳에 찾아가 보라면 문자를 보냈다. 


"언니. 언니가 나한테 재활치료받으라고 말하는 거와 비슷한 얘기 나는 사람들한테 혹은 엄마한테 100번도 넘게 들어. 그리고 내가 엄마인데 최선을 다해서 안 알아봤겠어? 시도 안 해봤겠어? 여러시도해도 그래도 안되니까. 이러고 있는 거잖아. 의사들도 판단해서 그러니까 다시는 나한테 그런 얘기 묻지 말라줘. 나도 너무 대꾸하기도 힘들어."


"그래. 네가 제일 힘들 텐데 언니가 미쳐 생각을 못했다. 미안하다. 다시는 그런 얘기하지 않을게!"


미처 몰랐다. 동생이 상처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아이는 마냥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살고만 있다고 생각했다.  4년 전 동생과 그 대화 이후로 한 번도 동생에게 어떠한 의견도 꺼내본 적은 없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사람은 그녀이기에 무슨 말들이 필요하랴. 


나는 이제 그저 그녀의 말에 아무 말도 없이 응원만 해주고 싶다. 그냥 들어주고만 싶었다. 


그렇게 밖으로 나가는 것을 좋아하던 동생은 조카가 인지능력이 생기고 성장하면서 나가는 것을 거부하여 집에서 칩거를 하고 있다. 온전히 혼자서 아이를 24시간 돌보고 있다. 우리 사회가 늘 그렇듯 남편들은 직장생활을 해야 했기에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잠깐 아이와 놀아주거나 봐주는 것에 그냥 감사함을 느끼면 살아가야 하고 많은 시간은 괴로움과 고통은 오롯이 동생이 떠안고 가야 하는 시간이었다. 


"언니 있잖아. 어제는 오랜만에 날씨가 좋아서 창문 열고 공기로 세수했다!"

"그랬어?"


나는 동생의 아이를 돌보느라 2,3일씩 잘 씻지도 못하는 사정을 잘 알기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근데 사람들은 찬 공기로 세수했다는 말을 알아들을까?"

"나는 알아듣겠는데 내가 니 사정을 알아서 그런가?"


"언니야 그렇지. 내가 애 돌보느라 어떨 때는 일주일씩 씻지도 못하고 아침저녁 뒤바꿔서 사는데 오랜만에 

창문을 열었는데 그 찬 공기가 너무 좋은 거야. 그래서 그 공기로 나도 모르게 어푸어푸 세수를 했다. 그런데 너무 행복한 거야!"


"그래. 그랬겠다. 너무 아름다운 말인데 좀 너무 슬프다."


"에이 뭐가 슬퍼! 언니. 나는 행복했는데.."


"너는 내 동생이지만 대단하다고 생각해! 언니가 어릴 때 잘 몰라서 너한테 끈기 없다고 뭐라고 하고 너의 불성실함을 언니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질타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내가 참 어리석었어. 언니가 생각하는 세상이 전부 옳다고 생각했던 시기였거든."


"알아. 나 그때 언니한테 정말 많이 상처받았지만 나는 언니가 진짜 좋았어. 내가 나한테는 부모다음으로  존경하는 사람이었어.  늘 당당하고 멋있어서 책임감 있게 뭐든 열심히 해줘서.."


"그렇게 생각했어?" 


"응. 그땐 그랬어. 근데 지금도 대단하다고 생각해. 혼자서 아이들 데리고 그 멀리서 힘들겠지만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언니가 마음이 너무 괴롭고 힘들겠지만 누군가 한 명쯤은 언니를 늘 사랑하고 위하고 있다는 거 잊지 말라고 갑자기 말해주고 싶어서 연락한 거야!"


"그래. 너무 고마워. 나는 왜 이렇게 좋은 가족이 있는데도 늘 세월이 지나서야 그 고마움을 아는 걸까?"

"이제라도 알았으면 됐지!"




내가 아이들에 대한 욕심을 버리기 시작한 것은 조카가 아픔 때문이었다. 내가 아이들을 향해 부렸던 개인적인 욕심들이 아이들을 힘들게 하고 아이들과 마음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문득 그냥 이렇게 잘 걷고 있는데 뭐가 문제야 아무 문제없는데 나는 왜 이리 욕심을 부리면 아이들을 닦달하는 걸까? 그 욕심들이 무의미했다.


동생이 바라는 것은 오직 아이가 걷는 것이었다.  요즘은 조카가 성장하면서 1년 이상 저혈당 쇼크로 극도로 위험한 고비를 넘겨가면서 그냥 아이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동생을 바라보며 나는 내가 부리는 욕심을 점점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냥 내 옆에서 건강히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아있는 내 아이들의 모습에 감사했고, 간혹 욕심이 올라와 아이들과 다투더라도 정신을 차리고 항상 아이에게 사과를 했다.  내 욕심이었다고 말해주었다. 


내 아이들이 내 조카가 그리고 내 가족이 이 세상에서 건강히 잘 살아주고 있으면 감사한 일이었는데 우리는 너무 많은 욕심과 경쟁 속에서 나 혹은 주변을 너무 힘들게 하면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동생을 통해서 알게 된 평범함이 주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감사함은 나에게 축복 같은 가르침이었다. 


어릴 적 내가 동생에게 성실하지 못하다고 비난을 하고 감성적이라 지적했으며 지나치게 남의 감정을 읽고 피곤하게 산다고 말했던 것을 나는 이제 후회한다.  동생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매일매일 아픈 아이를 위해서 같은 시간 같은 일을 수만 번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고 ,  와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농담도 해가며 긍정적 마인드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긍정성을 부정적 마인드가 강했던 내가 바라봤을 때 어찌 감히 이해가 되었을까?


나는 늘 동생에게 내가 살고 있는 이곳으로 오라며 아이가 아파 이곳에서 함께 지낼 수도 없는 것을 알면서도 또 내 아쉬움을 전한다. 그럴 때마다 동생은 단 한 번의 짜증도 없이 언젠가 아이가 나아지면 함께 재밌는 시간을 보내자며 웃으며 대화를 마무리한다. 


나는 오늘도 응원받는다.  


세상에 몇 안 되는 천사의 마음을 가진 고맙고, 사랑하고, 존경스러운 내 동생! 

너의 곁에서 힘이 되어주지 못해 많이 미안하고 언니도 언제나 널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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