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hara Apr 12. 2024

엄마와 나, 그리고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성장일기_일상

나이를 먹을수록 많던 생각이 점점 단순해진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예전에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 화가 나고 열받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너무 큰일임에도 냉소하게 되는 이 마음에 내 정신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왜 이리 평온할까? 막가파가 되는 건가? 인생을 놓은 건가? 열정 따위는 사라진 건가? 몇 가지 생각을 하다 결국 에라 모르겠다. 그냥 해'가 되어 버린다.


간혹 사춘기 아이들과 언쟁을 하다가도 '내가 이 애들하고 싸워서 얻는 게 뭐가 있어? 아무것도 없지' 싶어 많은 감정 소모를 피해버린다. 회피라기보다는 아이들과 언쟁하고 있는 내 모습이 부끄러울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면 그냥 자존심만 부리고 있는 나 자신이 보일 때가 많다. 남도 아니고 내 자식에게까지 자존심 부릴 게 뭐란 말인가?


이런 생각들이 자식에서 남편에게, 그리고 주변 지인에게 적용되면서 많은 화를 내려놓는다. 혹은 회의적으로 변한다. 


'내가 아무리 난리 쳐도 변하지 않는데 무슨 소용이겠어.'라고 생각하며.


그런데 신기한 것은 친정엄마에게만큼은 여전히 정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감정의 날을 세우고 내 생각을 절대 물러서지 않으려 팽팽하게 말싸움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그 말싸움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엄마가 나에게 자존심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는 것이다.  본인이 인정하지 않는 그 마음, 그리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 엄마의 그 마음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지만 이제는 아니 이제부터는 이해해드리고 싶지 않았다. 


평생 착한 딸 콤플렉스라는 굴레 속에 살았던 나에게 엄마한테 싫다고 말해도 괜찮다고 아무 일 없다고 말해주고 응원해주고 싶었다. 


'네가 나쁜 게 아니야. 네가 잘못한 건 없어! 넌 그저 딸일 뿐이었다고! 너 많이 아팠잖아. 그러니까 싫다고 말해도 괜찮아!"


엄마가 봤을 때 나이 먹고 반항하고 미쳐 있는(?) 딸 모습이 생경하고 괘씸하겠지만, 나 자신에게는 내 인생을 엄마의 결정과 선택이 아닌 스스로의 내린 결정과  선택들로 꽉 채워 나아가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다.


그간 내가 느꼈던 불안하고 우울한 마음의 원인이 엄마 뜻을 거스르는 죄책감에서 오는 것임을 알아차리고는 스스로에게 자꾸 그래도 괜찮다는 말을 해주며 우울, 불안에서 많이 벗어나는 중이다. 


한 인간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과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한 단계 성장하는 데 4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엄마와 나의 관계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은 우린 서로에게서 제대로 독립하지 못한 존재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한 관계란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쌍방소통의 관계란 것이다. 우리 관계는 늘 일방소통이었다. 그래서 늘 yes라고 말하는 한쪽이 불행했다. 


가끔 지인들 중에 '우리 집은 아무 문제없어'라고 말하거나 '우리 애들은 너무 말을 잘 들어서'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일방적 소통을 하는 사람이라고 판단해 버린다. 


이 세상에 아무 문제없는 관계란 없다. 늘 나 자신의 감정도 들쑥날쑥한데, 문제가 없다고 말하라는 것은 상대를 제대로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여하튼, 엄마란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나지만, 엄마란 이름을 들으면 화가 나는 양가감정 때문에 무거운 죄책감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무지하게 힘들고 고통스럽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감정적 편안함을 맞이하였다.


내가 이 문제를 극복한 방법은 엄마라는 이름이 주는 절대적 헌신과 절대적 사랑 앞에 대항하는 패륜적 태도가 아니라, 그냥 엄마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 대 사람으로 내 엄마를 바라보며 같이 딸을 키우는 여자의 입장으로 그녀를 생각하기 시작하니 내 마음에서도 많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엄마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 여자로서 나와 동등한 감정 카테고리 안에 있는 나보다 경험이 많고 나이가 더 많은 어른. 그러나 그녀는 경험적으로는 나보다 우세하지만, 감정적으로는 나보다 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한 내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았기에 나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내 인생의 많은 문제들 앞에서 엄마의 말에 'yes'가 아닌 'no'라고 말하여도 괜찮고, 설령 그 말이 엄마를 힘들게 하였어도 그것도 괜찮다. 이것은 내 인생의 문제이니까! 누구의 문제도 아니다. 


모녀의 관계는 가장 가깝지만, 그래서 서로 존중해야 평화로운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그런 사이임이 틀림없다. 


우리는 너무 오랜 세월 엄마와 딸은 하나라는 프레임에 갇혀 생각을 강요받으며 살았던 것은 아닐까 싶다. 


나와 너무 다른 성향의 딸을 키우며 느끼는 많은 감정적 힘듦을 겪고, 서로의 다름을 확실히 알고 존중해야 우리 관계가 행복할 수 있음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나는 늘 내 딸의 멋진 삶을 응원해주고 싶다. 나와 다른 존재의 모습 그대로..


딸아이가 결혼하여 엄마라는 타이틀을 얻었을 대 나는 그녀와 엄마와 여자라는 타이틀 함께 가진 수평적으로 존재로써 잘 성장하길 바라고 다짐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캐나다 수영장에서 만난 유토피아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