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리뷰 pt.2 - 뭐니뭐니해도 패티스미스지
3월 24일 목요일
TOMEKA REID & NIKKY FINNEY
PATTI SMITH: WORDS & MUSIC
SPARKS
FENNESZ
LOW
첫 날이 밝았다. 평화로운 아침 산책을 나가 녹스빌의 대표적인 새인 빨간 카디널을 목격했다. 견과류도 챙겨나갔지만 뉴욕의 다람쥐들과는 다르게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이 날은 나도 애인도, 오전에는 일을 해야 했다. 일을 마치고 아침에 부랴부랴 스케쥴표를 보면서 마킹을 했다. 출발 시간을 정하기 위해 첫번째 공연부터 정했는데 SŌ PERCUSSION의 공연이 매우 흥미로워 보였다. 평화롭고 여유로운 이 아침에 네 사람이 조용히 딩동댕동 귀여운 하모니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페스티벌을 시작하면 딱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네시쯤 떠날 때 보니 이 공연장만 다른 공연장들이 모여있는 다운타운에서 멀었다. 다른 페스티벌은 보통 허허벌판인 야외에 스테이지가 여럿이지만 빅이어스는 녹스빌의 다운타운에 위치한 로컬 극장, 영화관, 바, 도서관 등에서 공연이 열린다. SŌ PERCUSSION의 공연은 테네시대학 내부에 있는 작은 야외공연장인듯 했다. 다운타운에서 입장용 밴드를 받기도 해야했어서 포기하고 천천히 출발해서 잭슨터미널에서 손목밴드를 받고 바로 맞은편에 있는 Old City Performing Art Center에서 TOMEKA REID & NIKKY FINNEY를 보러 갔다.
전혀 알아보지 않았던 터라 아무 정보 없이 들어갔는데, 한 시인과 첼리스트의 협업이었다. 튕기고 긁히고 문질러지는 첼로 소리에 맞춰 니키피니의 시가 랩처럼 얹어졌다. 시여서 더욱이 모든 내용을 알아 듣긴 힘들었지만 할머니가 자신을 기다리는 순간에 대한 시, 한 흑인 여성이 히치하이킹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멈추지 못하고 지나쳤던 순간에 대한 시, 자신이 갓난 아이였던 때 엄마가 생선 뼈를 발라 자신의 입에 살 한 점을 넣어주던 순간에 대한 시가 이어졌다. 내가 영어를 잘 몰라서, 시적인 표현이어서 아주 조금만 제대로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조그만 부분들에서 정말 멋진 언어들을 쏟아내고 있구나,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생선 뼈를 발라서 촉촉하고 말랑말랑한 그 살 한 점을 표현할 때와, 그 살점을 손에 쥔 엄마가 모든 파워를 지닌 것처럼 살 한 점을 미끼로 복종을 요하는 듯한 표현들도 너무 재밌었다. Nikky의 독특한 언어만큼 Tomeka의 첼로 소리도 온전히 그녀만의 것이었고 정말 세상에 딱 저 한 사람만 이 세상에 낼 수 있는 소리들을 내뿜고 있는 것 같아서 예술가라는 존재들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쉼보르스카의 노벨상 수상 소감이 떠오르면서 '시인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패티 스미스를 보러 Mill & Mine으로 갔다.
패티 스미스의 공연은 단연 베스트였다. 다음 날 더 큰 극장인 테네시극장에서 있었던 공연보다 자신의 책 구절, 편지들을 중간중간에 읽어주기도 했던 이 공연이 더 좋았다. 가사를 틀리기도 하고 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 공연이기도 했다. 이것도 빅이어스 페스티벌의 특징 같은데, 종종 한 뮤지션이 여러 날에 걸쳐 다른 프로그램을 공연하거나 참여하는 뮤지션들끼리 협업 공연을 펼친다. 패티 스미스의 매력이라면 노래보다도 패티 스미스라는 인간 자체일 것인데, 이 날 공연 전반적으로 패티 스미스가 하는 행동, 말 모든 것이 멋있어서 넋을 놓고 보았다.
1) 기타를 치는데 재킷의 버튼이 기타에 부딪혀 달그락 소리를 내자 패티 스미스는 바로 단추를 뜯어내곤 주머니에 넣고, "집에 단추가 하나 없는 코트가 있는데 거기에 달아야겠네."라고 했다.
2) 밥딜런의 어떤 노래를 부르다가 도입부의 가사를 잊어버렸다. 윗층 발코니에서 어떤 스텝 같은 사람이 알려주기도 했는데 잘 안들려서 몇 번 시도하다가 ... 썸띵.. 뿨킹.. 도얼스텝 하고 넘어갔다. 그런 순간에도 패티 스미스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고 노래가 끝나자 "Perfection is overrated."라고 해서 모두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내가 밥딜런 노래들을 망친건(fuck up) 한두개가 아니긴 해." 하면서 껄껄 웃었다.
3) 중간에 로버트 매플쏘프와의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실험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장본인이면서 자신에게 "자기 노래에는 히트가 없어." 하곤 했다고. 정작 자신은 신경쓰지 않았는데. 그렇게 이야기하다가 매플쏘프에게 쓴 편지, 정작 그는 읽지 못한 그 편지를 소리내어 읽었다.
“... Often as I lie awake I wonder if you are also lying awake. Are you in pain, or feeling alone? You drew me from the darkest period of my young life, sharing with me the sacred mystery of what it is to be an artist. I learned to see through you and never compose a line or draw a curve that does not come from the knowledge I derived in our precious time together. ..."
"가끔 일어나 누워있으면 너도 깨어 가만히 누워 있는지 궁금해. 고통을 느끼고 있니, 혹은 외로움을 느끼고 있니? 넌 내 젊은 시절 가장 어두운 시기로부터 날 끌고 나와줬어. 예술가가 된다는 것의 신성한 미스터리를 함께 나누면서. 나는 너를 통해 보는 법을 배웠고, 내가 쓴 모든 문장, 내가 그려낸 곡선에 우리가 함께 보낸 소중한 시간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건 없어."
4) 나중에 앵콜을 하러 나왔고 그녀는 객석에 기타를 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그래서 한 남성과 여성이 올라왔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감격스러워하며 신난 여자분이 열정적으로 기타를 연주하고 마이크를 잡아채 반복하던 가사인 "파워는 사람들에게 있어!!" 하고 소리지르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조금 쉬며 돌아다니다 SPARKS를 보러갔다. 같은 시간대에 Bill Callahan의 공연도 너무 보고 싶었지만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이들을 보고 싶었다. 패티스미스도 70대 후반이지만, 이들도 70대초반, 후반의 어르신들이었다. 그런데도 계속 내내 점핑을 하며 노래를 완곡하시는게 너무 대단했다.
나는 사실 레오까락스의 팬이어서 SPARKS를 그의 영화 ANNETTE를 통해 알게 됐었다. 영화가 시작할 때 (아직 영화에 실망하기 전), So may we start! 노래를 들으며 우와.. 역시 미쳤어 레오까락스..! 했었다. 그런데 영화 속에 있던 그 분들이, 이 노래를 만든 분들이 스팍스였다. 이 노래로 공연을 시작하였는데, 이렇게 70대를 넘겨가시는 분들이 '이제 시작할 시간이야."라고 부르는게 감동적이었다. 옆에 앉아계신 키보디스트 론 (이름을 찾다가 그들이 형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와우.)은 정말 가만히 앉아서 손목만 딴딴딴 연주를 했는데 어떤 곡은 손목이 완벽히 가려지는 각도여서 마치 그냥 가만히 앉아있는 것처럼 보여 너무 웃겼다. 반면 러셀 아저씨는 계속 뛰어가며, 춤 춰가며, 독특한 가사에 맞춰 퍼포먼스를 하면서 노래하셨는데, 정말 존경스러웠다. 나는 이제 서른인데도 저럴 에너지가 없는데 말이다. When I'm With You 말곤 다른 노래를 들어본 적이 별로 없었는데, 공연을 보고 나니 가사가 진짜 특이하고 재밌어서 제대로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네 곡 정도를 들었는데, FENNESZ를 보고 싶어서 중간에 나왔다.
테네시극장에서 나와 코너를 돌아 조용한 골목에 있는 ST.JOHN'S CATHEDRAL로 향했다.
이렇게 베를린 너낌을 풍기는 아저씨일 줄 몰랐다. 음악만 들었을 땐 왠지 머리가 길고 비실비실하게 마른 아저씨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어쩌다 너무 앞자리에 앉아 귀가 아팠지만 눈을 감고 명상하듯 들으니 마치 내가 우주에 내던져져 있고 앞에 소행성이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스피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서 언젠가 저 스피커들이 주렁주렁 흔들리는 곡을 하나보다, 했는데 스피커는 요지부동이어서 살짝 실망스러웠다. 장비가 고장난 것일까.
조금 일찍 나와 다시 10분 정도를 걸어 다리를 건너 올드타운 쪽으로 와서 Mill & Mine에서 공연된 LOW를 보다 왔다. 멀찍이서 봐서인지 별로 감흥이 없었고 첫날이어서 일찍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첫날이고 목요일이어서인지 사람이 많이 없었다. 이때는 몰랐지만 주말에야 이 날이 한산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나 외엔 볼 수 없던 동양여자들도 주말이 되니 가끔 한 명씩 보였다.
그리고 이 날 보니 도착했을 때 리프트 기사가 했던 말을 되짚게 되었다. "거긴 늙은이들이 가는 곳이야." 저번에 왔을 때는 눈치 채지 못했던 부분인데 정말 앞에 앉아있는 관객들의 뒷통수를 쳐다보니 머리가 희끗희끗하거나 빠진 분들이 많이 보였다. 평균 연령이 60대가 아닐까 생각했다. 패티 스미스, 스팍스 등 왕년에 레전드였던 분들을 동시대에 열광적으로 사랑했던 팬들이 함께 시간이 흘러 마주한 것 같았다. 그들을 보면서 내 주변의 친구들보다 나와 취향도, 생각도 더 잘 맞을 것 같아 내 마음의 친구들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