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통해 이루어낸 요리의 콘텐츠화
프리랜서가 되고서 2년차가 되었던 작년쯤 취미를 만들어야 겠다는 결심을 했었다. 예전에는 취미를 만드는 게 사치라고 생각했다. 그냥 적당히 남들 하는 것처럼 운동 좀 하고, 넷플릭스로 가끔 영화를 보면서 힐링도 해 주고, 나머지 시간에는 일에만 집중하는 게 정답이라고 믿었다. 그러다 보니 대학생 때는 방학 때 공허함을 느꼈고, 프리랜서가 된 후에는 비수기에 우울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지 못하게 됐다. 지속적으로 일을 하지 않으면 뭘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여러 취미를 거의 의무적으로 만들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다채로운 경험을 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가만히 있는 것보다 뭔가를 계속 하는 게 하루하루를 더 재미있게 살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취미는 말 그대로 취미. 취미로 시작한 무언가가 대박을 쳐서 본업을 바꾼다거나 하는 허황된 꿈은 꾸지 않는다. 취미는 그냥 나의 퍽퍽한 삶에 기름칠 정도만 해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주는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에서 한두 개씩 도전하여 지금은 취미 부자까지는 아니지만, 몇 개의 소소한 취미를 갖게 되었다.
첫 번째 취미. 요리
나는 결혼 전에 자취를 해본 적이 없었다. 결혼식을 하기 직전까지 밥도, 빨래도, 청소도 엄마가 다 해 주는 마마걸의 삶을 살았다. 정말 솔직하게 말해서 세탁기도 직접 돌려본 적이 없었고, 해본 요리는 라면 끓이기나 계란후라이 굽기 혹은 밥 짓기가 전부였다. 가끔씩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보고 파스타나 떡볶이 정도는 만들어본 적이 있는데, 그마저도 거진 망했었다.
결혼 후, 다행히 남편이 오랫동안 자취를 하면서 간단한 요리를 즐겨왔기 때문에 내가 반드시 요리를 해야만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남편이 요리를 할 줄 안다고 해서 영원히 남편만 요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활용해서 간단한 음식부터 해 나가기 시작했다. 난이도가 낮은 요리들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재미를 느끼며 나중에는 솥밥이나 찜 요리까지도 할 수 있게 됐다. 대체로 레시피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면 크게 망할 일은 없었다. 이제 된장찌개 정도는 라면 끓이는 수준으로 쉽게 끓일 수 있게 됐고, 한 번에 간단한 요리 세 가지 정도는 동시에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요리가 귀찮은 집안일이 아닌 취미로 느껴질 수 있도록 요리 블로그를 시작해서 꾸준히 글을 올렸다. 지금까지 독자가 많지도, 수익화를 이루지도 못했지만 그냥 요리 과정을 틈틈이 촬영하고 글을 쓰는 것 자체만으로도 재미있었다. 나중에는 블로그에 레시피를 올린 뒤, 또 만들어 먹고 싶어서 내 블로그를 다시 참고하면서 요리하기도 했다. 그냥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요리였다면 귀찮은 가사노동으로 느껴졌을 텐데, 블로그에 올리고 나만의 레시피북을 만든다고 생각하니 모든 과정이 뿌듯하고 즐거웠다.
요리 초보여서 그렇겠지만, 재료를 준비하고 썰고 끓이고 볶고 플레이팅하는 모든 과정에서 생각보다 많은 두뇌 회전이 필요했다. 특히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작업을 할 때는 사전에 철저히 계획을 세워서 순서대로 해야만 했다. 똥손에다가 멀티태스킹도 잘 안 되는 타입이라 요리계획서까지 옆에 써두고서 진행했는데, 이렇게 정신 없이 요리에 몰두하다 보니 업무 스트레스가 사라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요리 말고 다른 생각을 할 엄두조차 못 냈다. 책상에 앉아있을 때 지루하게 흘러가는 시간과 부엌에서의 시간은 천지 차이였다. 부엌에서는 잠깐 한 눈 판 사이에 요리가 통째로 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언제나 긴장해야 했다. 이런 과정이 오히려 일에 찌들어있던 내게 엄청난 활력소가 되었고, 완성 후 맛있게 먹기까지 할 수 있으니 최고의 취미 생활이었다.
지금은 작업실로 출퇴근하느라 집에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아서 요리를 자주 하지는 못한다. 모든 일이 그렇듯 요리 역시 자주 안 해서 손에 익지 않으면 실력이 금방 퇴화된다. 애초에 퇴화될 것도 없는 요린이긴 했지만, 그래도 꾸준함이 이렇게나 중요하구나를 깨달았다. 자연스럽게 블로그에도 레시피를 올리지 못하게 되었지만 어쨌든 결혼 후 난생 처음 집안일을 스스로 해나가고 요리를 시작하면서 첫 단추를 정말 재미있게 꿴 거였다는 생각이 든다.
레시피 블로그를 해본 경험은 단순히 요리 과정을 기록하는 일을 넘어서, 나의 이야기 혹은 경험을 콘텐츠화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까지 발전시켰다. 어떤 내용으로든 글로 된 콘텐츠를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어서 브런치를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그저 수동적으로 진행했던 영상 일도 요리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다는 꿈을 꿀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살면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을 취미로 여기고, 더 나아가 기록하면서 콘텐츠로 만들며 하루하루가 재미있어졌다. 꼭 수익과 직결되는 일이 아니어도 내가 즐길 수 있고 꾸준히 행복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즐거운 인생은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