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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옴표 필름 Jun 08. 2023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이유

글쓰기는 나의 보험

  문득 생각해보았다. 나는 어째서 이렇게 열심히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을까? 편당 얼마, 돈을 받는 것도 아니다. 나의 새 글 업로드만 손꼽아 기다리는 구독자가 줄을 서있지도 않을 것 같다. 매일 본업에 지친 몸을 끌고 집에 돌아와 내 머릿속만큼 엉망인 살림살이들을 정리하고 씻고 나오면 밤 11시가 가까워져 있다. 서둘러 퇴근을 하고, 서둘러 집안일을 마친 뒤 서둘러 씻고 나왔는데도 이렇게나 하루가 또 흘러가있는 것이다. 이런 날에는 베개에 머리를 대면 보통 20분 내로 잠든다. 밤마다 생각이 많아지고 올빼미가 익숙한 타입임에도 불구하고 고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드르렁드르렁 코 골며 잠자기 바쁘다. 그런데! 그 시간을 쪼개서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


  처음 브런치 작가 통과가 되었을 때는 나름 기적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대학교도 재수해서 들어가고 운전면허도 두 번 만에 딴 내가 무려 브런치 작가를 재수 없이(!) 한 번에 통과하다니. 몇 년 전 일기처럼 써두었던 글 두 편으로 통과했었고, 그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끼거나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았다. 이렇게 나를 단번에 알아보고 인정해주는 매체(?)가 생겨서 기쁘고 감사했고, 무슨 원리인지 모르겠는 알고리즘을 통해 내 글을 접하고 꾸준히 라이킷을 눌러주시는 몇몇 고마운 분들 덕분에 글 쓰는 원동력을 얻은 것 같다. 처음 브런치를 시작해서 글을 올렸을 때는 마치 그동안 하고 싶었던 얘기를 못하고 살았던 한 많은 사람처럼 나의 생각과 감정을 와다다다 쏟아내기 바빴던 것 같다. 그러면서 이성보다는 감성이 지배적인 글도 나왔던 것 같고, 그러다 보니 지인들에게 내 브런치를 공개하는 게 내 셀카를 공개하는 것보다 더 부끄러웠다. 그럼에도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쓴 글이니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길 바랐는데, 또 한편으로는 나를 실제로 알고 있다면 너무 자세히 읽지는 말아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동시에 존재했다. (어쩌라는 건지)


  그래서 궁극적으로 지금 내가 브런치에 글을 왜 쓰는가, 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브런치는 내 감정의 쓰레기통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감정의 쓰레기통이지만 너무 쓸모 없는 감정만 내세우면 다음 날 일어났을 때 창피할 거고 결과적으로 영양가 없는 글이 되어버릴 테니 적당히 포장을 하는 거다. 그렇게 포장하는 과정에서 나의 생각과 경험이 누군가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도움까지는 아니더라도 공감만이라도 했으면, 하는 마음에 제법 이성적이고 영양가 있어 보이는(?) 그런 글이 나오는 것 같다. 글을 한 편 쓰고 나면 복잡한 머릿속이 조금 정리가 된다. 혼란스럽고 우울해져있던 감정이 차분해진다. 글을 완성하고 나면 ’뭐라도 해냈다‘는 뿌듯함이 생긴다. 나는 어릴 적부터 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생각을 말로 일목요연하게 전달하는 것보다 글을 쓰는 게 더 쉬웠다. 키보드를 치기 전 연필을 쥐고 종이에 서걱서걱 글을 써내려갔던 어린 시절부터 생각의 속도와 글을 써내려가는 속도가 거의 비슷하다고 느꼈다. 지금보다 책을 더 많이 읽고 바른 말을 더 많이 썼던(?) 어린 시절이 지금보다 더 글을 잘 썼던 것 같긴 하다.


  글을 열심히 쓰는 또 다른 이유는, 글쓰기가 나의 보험이어서다. 갑자기 웬 보험이냐고? 나는 지난 10년 간 할 줄 아는 게 영상 연출과 편집밖에 없었다. 다행히 지금 그걸로 회사도 안 다니면서 꾸준히 밥벌이를 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어느 순간 영상만 할 줄 아는 내가 굉장히 불안해졌다. 마치 내 전재산을 주식 한 종목에만 몰빵해둔 기분이었다. 만약에라도 그 종목이 망하면 내 전재산도 잃는 거다. (다행히 경험담은 아님) 그래서 영상 작업 외에 내가 흥미를 가지고 꾸준히 잘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를 계속 고민하면서 지내왔는데,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던 재능을 브런치를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된 거다.


  내 재능은 글을 잘 쓰는 게 아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세상에 널렸고, 브런치를 조금만 돌아다녀도 쉽고 재미있게 글 쓰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다만 내가 지금 내세울 수 있는 건 꾸준하게 쓸 수 있다는 점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브런치를 시작한지 몇개월 되지는 않았지만, 주기적으로 밤마다 글을 쓰는 습관이 내 마인드를 많이 바꿔놓았다. 내 생각을 글로 정리해서 몇날 며칠간 다시 읽고 또 읽어 보면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를 새롭게 깨닫게 될 때도 있다. 열몇 개의 글이 나의 최근 인생 스토리와 마인드,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를 대변해준다. 누군가에게 나를 어필할 때 말보다 글이 편한 사람으로서 글쓰기는 내가 가진 무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대학교 동기들과 단톡방에서 이런 대화를 나눴다. 졸업 후 한참이 지나고 서른줄에 접어들며 각자 사회생활을 한지 꽤 지났을 때였다. 동기 한 명이 우리에게, 각자 주머니 속에 사탕 하나씩 가지고 살자는 얘기를 했었다. 그리고 언젠가 퇴사 후에 그 포장지를 까서 먹을 수 있도록 말이다. 나는 영상 회사에서 나와서 회사에서와 똑같은 사탕을 가지고 나왔었다. 회사에 다녔을 때보다 좀 더 쓰디쓴 맛의 영상 사탕이었다. 지금은 내가 사장님이어서 퇴사할 회사는 없지만, 이제는 영상 사탕 말고 다른 걸 주머니에 챙겨두려 한다. 그 사탕은 글쓰기가 되는 걸로 정했다. 이걸로 어떻게 돈을 벌고 직업을 하나 더 만들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꾸준히 정진하다 보면 나중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를 거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졸린 눈을 비비며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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