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건 스마트폰 속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책에도 있더라
10대 때까지는 제법 많은 책을 읽었던 나. 20대의 시작과 함께 난생 처음 스마트폰이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 독서를 멀리했던 기억이 난다. 세상 재미있는 건 작은 스마트폰 속에 모두 들어 있었고, 대학교를 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바쁜 학교 생활을 하느라 시간을 내서 독서를 하는 일은 점차 줄어들었다. 그동안 책 속에서 어렴풋이 만났던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가 이젠 내 바로 앞에 펼쳐져서 직접 경험할 수 있게 됐다고나 할까? 하여튼 독서 말고도 재미있는 것 투성이였던 20대였다.
그래도 대학생 때까지는 적게나마 책을 읽었었던 것 같다. 시나리오를 써야 하는 영화과 학부생이었고, 이야기를 구상하기 전이나 도중에 막혔을 때마다 여러 문학 책들을 뒤적여가며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발전시켰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시나리오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을 찾아서 읽다 보면, 비슷한 주제를 두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이야기를 써내려갔는지 참고할 수 있어 좋았다. 보통 이상문학상 수상집, 젊은작가상 수상집 등 당대의 젊은 작가들이 쓴 단편소설을 많이 읽었었다. 어쨌든 이렇게 상을 받아 출판된 책들은 대부분 웰메이드한 작품들이었기에, 문장력을 기르거나 참신한 표현들을 참고하고 공부하기에 좋았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딱 시나리오를 구상하는 시기에만 참고차 읽었고, 그마저도 한 권을 통으로 읽지 않고 재미있어 보이는 단편들만 골라서 선택적으로 읽었다. 책을 꼭 읽지 않더라도 서점과 도서관 공간 자체를 좋아했기 때문에 자주 가긴 했는데, 그 때까지도 스마트폰이 더 재미있어서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고 나서도 두어 장 읽다 엎어 놓고 카톡이나 페북질만 하기 바빴다.
독서를 다시 시작한 건 사실 서른 두 살이 된 올해 초부터다. 사실 몇개월 되지 않은 독린이(?)인 거다. 30대가 되고 나니 일단 20대 때와 비교해서 에너지와 전투력이 살짝 줄어드는 걸 느꼈다. 밤새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놀고 돌아다녀도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모든 게 재미있었던 시절이 지나고, 이제는 그게 다 그거 같은 약간의 인생 노잼 시기에 접어든 것이다. 정말 편하고 오래 알아온 친구들을 제외하면 뚜렷한 목적 없이 만나는 모임과 약속들이 부담스러워졌고, 바쁜 하루가 끝난 뒤에 혼자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졌다.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르고, 운동을 하면 근육과 체력이 생기는 것처럼, 허기진 마음을 달래고 채울 무언가가 필요했다. 근데 한동안 그 공허함과 빈약함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잘 모른 채 그냥 지냈었다.
어느 날,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오전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호캉스를 한 날이었는데, 조식을 먹고 체크아웃 시간까지 방에 갇혀 있기 싫어서 호텔 지하에 있는 상가들을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그러다 서점을 발견했는데, 오전이라 손님도 별로 없고 꽤나 예쁘게 조성된 서점이 썩 마음에 들어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별 생각 없이 집어든 책은 재테크 책이었다. 20대 때의 나였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류의 책이었다. 재테크 책에는 내가 그동안 읽어 온 문학 작품들처럼 화려하게 묘사된 아름다운 문장도, 금세 주인공에게 감정이입 될 것만 같은 매력적인 사건이나 등장인물도 없었다. 스마트스토어나 전자책 등 다양한 부업으로 어떻게 수익을 낼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만 적혀 있는 심플한 내용이 전부였다. 그런데 읽다 보니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곧바로 구매까지 했다! 의외로 그 책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다양한 카테고리의 책을 꾸준히 읽고 있다.
왜 책을 등한시하던 스마트폰 중독자가 약 십여 년 만에 독서에 재미를 느끼게 됐을지 생각해 봤다. 예전에는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무조건 문학 코너만 구경했었는데, 왠지 모르게 이제는 문학 쪽엔 영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렇다. 내가 지금 관심 있는 분야의 이야기를 읽어야 재미를 붙일 수 있는 거였다. 옛날에는 멋진 문장의 시나리오를 쓰고 싶어서 문학 코너에서 오랜 시간 서성거렸다면, 지금 나의 관심사는 사업과 재테크, 그리고 자기계발쪽인 거다. 자연스럽게 이와 관련된 책을 추천받아 도장깨기하듯 하나씩 읽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이 발달한 세상에 살다 보니 괜찮은 책을 추천받을 루트는 너무나 다양했고, 덕분에 정말 피곤한 날이 아니고서는 잠들기 1시간 전쯤에 침대에 엎드려서 책을 읽다 자는 습관이 생겼다. 게다가 책을 읽고서 나와 같은 독자들이 작가님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북토크까지 한번 다녀와 봤다. 그냥 책을 읽고 덮는 것보다 훨씬 유익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그냥 독서만 하면 밑빠진 독에 물 붓기 느낌이 들어서, 독서노트를 쓰기 시작했다. 말이 독서노트고, 사실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나 내용을 필사하는 과정이다. 다양한 책을 읽고 기록하는 재미를 들이기 위해 아이패드 굿노트에서 쓸 수 있는 예쁜 템플릿도 구해서 거기에 정리했다. 아직 아이패드 유저가 된 지 얼마 안 돼서인지, 매끈한 애플 펜슬을 손에 쥐고 토독토독 글씨를 쓰는 게 너무나 재미있다. 뭐든 꾸준히 해서 습관화하는 게 제일 어려운 법인데 이 알찬 루틴도 흐지부지되지 않고 오랫동안 쭉 이어졌으면 좋겠다.
고요한 밤에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 생각을 정리할 겸 책을 읽는 건 정말 나 자신을 가꾸는 중요하고도 행복한 일인 것 같다. 어떤 장르의 책을 읽을지, 어떤 책을 읽어야 나에게 도움이 될지는 본인이 독서를 통해 얻고 싶은 게 뭔지에 따라 알아서 고르면 되는 것 같다.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여러 코너들을 돌아다니듯 요새 재테크에 관심이 있다면 재테크 코너를, 여행에 관심이 생겼다면 여행 코너를 기웃거려보면 된다. 그래서 나는 나의 이 다음 관심사가 어떤 분야가 될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그저 독서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만으로도 생각의 시야가 넓어지고 마음이 건강해지는 걸 느끼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