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행복하기보다 매일 무난한 하루가 되기를
역대급으로 평화로운 시절을 보내고 있다. 일의 난이도도, 인생의 난이도도, 인간관계의 난이도도 그다지 높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벽하게 행복한 상태인 건 아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바람 부는 날 바깥에 서 있는 촛불처럼 위태로운 상태라고 해야 할까.
가까스로 지켜내고 있는 이 평화로움이, 안간힘을 다해 유지하고 있는 이 고요함이 깨지지 않도록 꽤 많은 사실과 생각들을 회피하고, 외면하고, 덮어 두면서 지내고 있다. 매사에 신중하고, 남들 시선에 어떻게 보일지 끝없이 의식하고, 적당히 미래지향적인 모습을 가지고 눈에 띄지 않게 차분히 살아가는 중이다. 아침의 늦잠은 달콤하지만, 새벽의 고요함은 조금 외롭고 다음 날의 태양이 떠오르는 사실이 약간은 두렵다. 이 정도로 나의 감정을 정갈하게 써 내려가기까지, 이따금씩 햇볕이 따뜻한 날을 골라 달리기를 통해 심신을 가다듬고 나를 가꾸는 데에 힘쓰는 수많은 시간들이 필요했다.
고요하고 차분한 연말에 집에 가만히 앉아 나 자신을 돌아본다. 올해 하반기에 참여했던 독서 모임에서 다루었던 책 중, 이연 작가의 <모든 멋진 일에는 두려움이 따른다>의 구절이 계속 생각나는 요즘이다. 아마도 하반기에 읽은 책 구절 중에 가장 마음 깊숙이 박힌 것 같다.
로맨틱한 스스로에게 반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나는 내가 받고 싶은 사랑을 나에게 주는 방식으로 스스로와 대화한다. 그리고 그것은 일종의 사랑에 대한 연습이기도 하다.
(…)
요점은 자신에게 따뜻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종 스스로를 심하게 채근하는 사람을 본다. 나는 몰래 울고 있을 그 사람의 자아를 생각한다. 다그치는 자신에게 자신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 속에 병이 생긴다.
(…)
그림을 그리며 깨달은 게 있다. 대상을 알려면 그 순간만큼은 그 대상을 사랑해야 한다. 애정을 갖고, 편견을 내려놓은 순수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저 그리기 위해서 무언가를 바라본다는 것. 그것을 왜곡하지 않기 위해서 애쓴다는 것. 그것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그렇게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이 타인도 더욱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고 믿는다.
- 이연, <모든 멋진 일에는 두려움이 따른다> 중에서 -
나 자신과 단둘이 있는 시간이 많은 요즘, 나는 나 자신과 친해졌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서른세 살의 끝에 깨달은 건, 나는 생각보다 유쾌한 사람은 아니라는 거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과 수많은 자기 검열은 평화로울 수 있는 나의 삶을 이따금 살짝 어지럽혀 놓는 것 같다. 조금만 덜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혹은 이 끝없는 생각들이 그래도 훗날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데에 자양분이 된다는 확신이라도 가지고 싶다. 그리고 새해에는 나 자신을 조금 더 너그럽게 대하고, 조금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다.
뭔가 무거워 보이는 글이지만, 사실은 따뜻했던 어느 날 한낮의 날씨처럼 산뜻하고 군더더기 없는 하루를 보낸 뒤에 가벼운 마음으로 쓴 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