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에 대한 호감이 만든 K푸드 열풍
예전 같으면 2-30분 정도면 충분했다. 단골 식당 대기 시간 얘기다. 지난 금요일 오후, DC에서 기차를 타고 뉴욕에 도착하는 친구와 맨해튼 한식당에서 저녁을 하기로 했다. 전화 예약은 불가능한 곳이니 30분쯤 먼저 가 웨이팅리스트에 올려놓으면 되겠지....라는 생각은 안이했다.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을 기다려야 된다고요?"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에 생쥐 꼴을 한 손님에게 냅킨을 건넨 직원은 지례 단념하길 바라는 것 같았다. 입구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들을 보면 그럴 만도 했다. 잠시 고민하다 웨이팅에 이름을 올려놨다. 이 시각 맨해튼 한식당은 거의 비슷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확히 1시간 45분 후, 친구와 난 고대하던 만두전골을 영접할 수 있었다.
별 개수로 측정되는 세계
에미상 최우수 코미디 시리즈,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 배우조합 남자 연기상.... 2023, 24년 최고 흥행작 중 하나인 디즈니플러스 TV 시리즈, The Bear. 뉴욕 파인 다이닝 식당의 셰프가 죽은 형이 남긴 시카고 변두리 낡은 식당을 일으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쏟아지는 난관을 헤쳐나가며 매일매일 성장하는 식당 셰프들의 전쟁 같은 스토리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 미국 젊은이들이 열광하게 한다.
극 중 재능 있고 야심 찬 여 주인공 시드니가 딸의 미래를 걱정하는 아버지에게 각오를 보여준다.
"별 하나짜리 식당이 목표예요. 사업도 유지시켜 주면서 어느 정도 수준도 있다는 소리니까."
이 드라마 속 인물 서사에 설득력을 주는 '별' 얘기는 미슐랭 스타를 말한다. 셰프 카르맨은 자신이 근무하던 뉴욕 파인 다이닝을 별 세 개짜리로 만든 주역이고 자격지심에 쩐 동료 리치는 서빙의 재능을 발견한다. 치열한 스트리밍 시장 속에서 시즌 3까지 만들어진 셰프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미국 도심에서 식당을 한다는 게, 거기에 성공까지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 전쟁통 같은 경쟁 속에서 한국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속속 이름을 알리고 있다.
"공식적으로, Atomix는 여전히 북미 최고 레스토랑."
지난 6월 6일 트렌드잡지 <OBSERVER>는 하루 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The Wolrd's 50 Best Restaurants> 시상식 결과를 전한다. 국제 요식업계 전문가와 여행 미식가 1080명의 투표를 통해 선정한 세계 최고 레스토랑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Disfrutar가 됐다. 1위가 유력했던 코펜하겐 레스토랑 Alchemist가 작년 5위에서 올해 8위로 밀릴 정도로 치열했던 이번 투표에서 뉴욕 한식 파인 다이닝 식당 Atomix는 6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다. 북미권 최고 순위로 일본식 메뉴를 선보인 캘리포니아 식당이 46위에 있을 뿐이다.
나 같은 이에게 Atomix란 이름은 신기루 같다. 예약도 어렵고 독창적인 한식 코스와 세련된 세팅, 서비스로 유명한데 무엇보다 언감생심인 가격 때문이다. 한국에서 관련 대학을 졸업하고 경력을 쌓은 젊은 부부가 2016년 식당을 열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이 식당은 뉴욕타임스 The 100 Best Restaurants in NYC에서도 별 세 개를 받았다. 신랄한 평론으로 유명한 이 신문 레스토랑 평론가 Pete Wells는 한국 고급 식당들이 뉴욕에서 수십 년 동안 지속됐던 프랑스 요리의 패권을 종식시키고 있다고 얘기한다. 그는 최신 미슐랭 뉴욕판에 9개의 현대 한국 식당이 올랐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뉴욕 어느 중국 식당도 그 별을 받지 못한 사실을 전한다. 유입되는 중국 자본으로 고급 식사에 쓸 돈이 넘치고 중국에서 이주한 뉴요커들이 그렇게 증가하는데도 말이다.
한국 문화에 대한 호감
이런 고급 식당들 말고도 한식에 대한 호감이 높아진 걸 실감하는 곳은 일반 그로서리에서다. 환경을 생각하는 젊은 층이 주 고객인 트레이더조에서 냉동 김밥은 최대 히트 아이템. 운 좋게 재고가 있어도 리밋은 단 2개다. 그 밖에도 Tteok Bok Ki, Bulgogi, Pa jeon, Jumeokbap, Gochujang 등등에 인쇄된 Korean란 단어는 안전, 청결, 맛, 품질을 보증하는 인증서 같다.
미국에서만 584개 매장에 멤버수 1억 3천200만의 코스트코도 마찬가지. 냉동식품 코너에 비치된 다양한 Mandu 종류는 늘 인기 품목이고 치킨이나 즉석밥, 라면도 꾸준하다. 내 최애는 오뚝이 전복죽인데 늘 한 박스씩 챙겨 놓는다. 최근엔 Rapokki를 비롯해 Crispy corn dog 등 새로운 제품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한다. 몇 년 전만 해도 무조건 한국 제품이면 구입하곤 했는데 이젠 그럴 수도, 그럴 필요도 없이 다양한 제품들을 만날 수 있게 됐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8.99에 팔리고 있는 1.2kg짜리 유일한 김치제품이 매번 너무 시고 물러서 처음 제품을 맛보는 미국 소비자들에게 잘못된 선입관을 심어줄까 싶다. 김치는 이젠 누구나 인정하는 대표적인 한국 음식이다. 2022년 미국으로 수출한 김치가 2,900만 달러에 달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작년 3/4분기까지 더 41.2%가 증가한 상태고 2030년까지 김치 시장의 가치는 전 세계적으로 53억 달러에 이를 거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올 1월 25일, NPR 뉴스는 전 세계 입맛을 사로잡고 있는 한국 음식에 대해 리포팅하면서 BTS와 블랙핑크,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 같은 노래, 영화, 드라마에 이르는 한국 문화의 인기가 한국 음식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 소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분석한다.
지난달 Newark서 열린 아이유 콘서트에 가서 느낀 경험도 다르지 않았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티켓을 쟁취해 공연장을 가득 메운 이들은 과연 미국 답게 다채로웠다. 한국어로 된 모든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추고 환호하는 관객들은 떼창도 한국어로 불렀다.
neoye geu han madi maldo geu useumdo
naegen keodaran uimi
neoye geu jageun nunbitto
sseulsseulhan dwinmoseubdo naegen himgyeoun yaksok....
연음과 높낮이를 정확히 맞춰 함께 한국어로 노래 부르는 이들에게 한국은 어떤 의미일까 싶었다. 그들에게 한국 음식은 신비롭고 세련된 그 문화의 맛이 아닐까? 할리우드 영화를 보고 팝송을 흥얼거리면서 햄버거와 피자맛에 열광하던 나처럼 말이다.
노동법 위반으로 문 닫은 식당
30년 역사의 뉴욕 플러싱에서 유명한 한식당이 2022년 2월 강제 퇴거됐다. 1992년 처음 문을 열어 넓은 공간과 넉넉한 주차장에 한인들의 단체 모임 장소로 자주 선택되던 곳으로 MBC 무한도전팀이 뉴욕에 왔을 때 들려 식사를 했을 정도다.
늘 문전성시였던 유명 한식당이 문을 닫은 원인은 노동법 위반. 보도에 따르면, 2015년 뉴욕 법원은 직원의 초과근무수당 미지급 등의 이유로 이 식당에 267만 달러(36억 6000여 만 원) 지불 판결을 내린다. 이에 불복한 업주는 강제 퇴거를 피하기 위해 파산보호 신청을 했고 이후 5번에 걸쳐 파산보호 신청 자진철회와 재영업, 파산을 반복했다. 결국 2021년 법원의 파산보호 신청금지 명령에 따라 다음 해 강제 퇴거당한 것이다.
뉴욕에 사는 많은 한인들에게 추억의 장소였던 크고 오래된 한식당의 폐업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식당 운영 과정에서 생기는 법률적인 문제, 특히 노동법에 대한 문제는 미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이들에겐 간과해선 안될 사항이다. 어쩌면 지금 미국에서 각광받고 있는 분야의 오너들에겐 이 오래된 식당의 번영과 퇴거가 반면교사다. 한국의 뛰어난 맛과 높은 문화적 자부심으로 승부하되 준법정신과 선진 마인드, 지역 사회에 대한 기여 등은 또 다른 필수 조건이 된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건 한국의 수준 높은 문화와 세련됨이다. 한국뿐 아니라 그 어디도 노동자들에 대한 무존중은 설 곳이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