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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미 Nov 30. 2023

가족이라는 이름의 연옥

스트레이, 익명의 미국인 이야기 - 47

미국을 포함한 서양의 여러 나라에서는 ‘다 큰 성인, 특히 남자가 혼자 힘으로 집세를 내지 못해 어머니와 함께 산다’라는 상황은 흔히 조롱의 대상인 듯하다. 현실에서 적지 않게 일어나는 일임에도 그렇다. 그러나 가족이 아닌 타인과 집세를 나눠 내며 함께 사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로 생각한다. 한국인인 내게는 가족과 같이 사는 것보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룸메이트가 되는 것을 더 선호하는 문화가 신기해 보이기도 한다. 불신하고 미워하는 어머니에게 의존하는 처지가 된 것만 해도 이미 비참한데, 이런 문화도 아마 스트레이의 비참함을 더욱 크게 만들었을 것이다.


스트레이보다 먼저 어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한 남동생은 한 직장에 오래 다니지 않았다. 돈을 벌 때도 수입의 상당 부분을 사치하는 데에 썼을 뿐 아니라 집에 생활비를 보태지 않았다. 자신이 뭔가 먹고 싶을 때 가족의 몫까지 함께 사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어머니는 하루가 멀다 하고 동생과 싸우면서도 돈을 달라는 말은 꺼내지 못했다. 오히려 동생의 휘발유 값까지 어머니가 내 줬다. 스트레이에게 돈을 요구할 때는 마치 맡겨 둔 돈을 찾아가는 것처럼 당당했던 어머니였다. 이상한 상황이었지만 스트레이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스트레이는 어릴 때부터 부모가 동생을 편애하는 데에 익숙했다고 가끔 말했다. 동생도 결코 행복하게 자란 것은 아니지만 스트레이는 상대적으로 더 냉대를 받았던 모양이다.


스트레이는 동생이 자신만큼 어머니를 미워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자신은 가정이 가장 망가졌던 시절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지만 동생은 그때 너무 어렸기에 기억하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점은 아마 양방향으로 작용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머니도 자신의 밑바닥을 기억하는 스트레이라는 증인의 존재가 거슬리는 것이 아닐까. 


스트레이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젊은 시절은 처참했다. 마약을 하느라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여러 번 체포되었다. 집안의 유일한 성인이었을 때도 생활비를 벌어오기는커녕, 어린 스트레이에게 돈이 있는 것을 발견하면 빼앗아 가서 혼자 썼다.


이제 어머니는 그때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었다. 매일 새벽에 출근해서 장애 아동을 태우는 스쿨버스를 운전했다.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마당에 꽃을 가꾸었다. 스트레이가 10년 전쯤 길에서 구조해서 줬던 고양이도 계속 잘 키우고 있었다. 게다가 스트레이에게 같이 살자고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래서 스트레이는 어머니를 믿어 보기로 결정했다. 원래는 인터넷 방송을 아예 그만두거나, 방송을 계속하더라도 가족에게 그 사실을 숨기고 집에 아무도 없을 때만 할 계획이었다. 마음을 바꾼 스트레이는 가족이 집에 있을 때도 방송을 했다. 수입이 매달 며칠에 정산되는지, 정산될 경우 한 번에 최소한 얼마가 들어오는지 어머니에게 밝혔다. 그리고 방송 수입의 대부분을 어머니가 생활비로 쓰도록 줬다.


평범하고 심지어 그럭저럭 화목한 가족 같은 순간도 있었다. 스트레이가 멕시코 요리인 엔칠라다를 만들어서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기도 했다. 오래 전에 어머니와 동생에게 몇 번 만들어 준 적이 있는데, 어지간히도 맛있었던 모양인지 두 사람은 스트레이가 온 후로 계속 엔칠라다를 만들어 달라는 이야기를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스트레이와 어머니의 관계는 곧 스트레이가 비관적으로 예측했던 그대로 흘러갔다. 상황이 본격적으로 나빠진 것은 스트레이가 리모델링 사업을 운영하는 어머니의 지인 밑에서 잠시 일할 때였다. 어머니는 지인에게 전화를 해서 스트레이가 일당을 얼마나 받았는지 확인한 후, 그 돈을 말 그대로 한 푼도 남김없이 빼앗아 갔다. 점심값은 고사하고 차비조차 남겨주지 않았다. 출근할 때는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사무실까지 걸어간 후 다 같이 차를 타고 리모델링할 집으로 이동했지만 퇴근할 때는 각자 집에 와야 했는데, 차비가 없어서 두 시간 동안 걸어온 적도 있었다.


스트레이가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항상 그랬다. 한동안 달라진 것처럼 보였다가 다시 본색이 나온 것이었다. 스트레이는 잠시나마 어머니를 믿었던 것을 자책했다. 그 후로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스트레이는 일을 하려는 거의 모든 시도를 그만두었다. 리모델링 일도, 인터넷 방송도 더 이상 하지 않았고 프로그래머 일자리도 알아보지 않았다. 이미 우울증으로 허덕이던 상황에 어머니가 기름을 끼얹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아직 빼앗길 것이 남아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었을 때 할머니가 스트레이와 동생에게 용돈을 보냈다. 스트레이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지나갈 뻔했다. 어머니가 중간에서 스트레이의 몫을 가로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는 어머니가 동생을 입단속하는 것을 우연히 엿듣고서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았다. 딱 자신의 어머니가 할 만한 일이라고, 스트레이는 놀랍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동생이 어머니의 말을 순순히 따랐다는 사실도 전혀 놀랍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전해의 크리스마스에 어머니는 직접 칠면조를 구워서 스트레이를 집에 초대했다. 아직 스트레이의 고용계약이 해지되지 않아서 월급이 나오던 때였다. 스트레이가 돈을 벌지 못한 이번 크리스마스에 어머니는 동생만 데리고 어디론가 놀러가 버렸다. 둘 중 누구도 빈말로라도 스트레이에게 같이 나가자고 하거나 식사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묻지 않았다.


어차피 스트레이는 크리스마스를 항상 싫어했다. 자신의 가족이 얼마나 엉망인지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혼자 살던 때 스트레이가 크리스마스를 보내던 방법은, 집에 틀어박힌 채 마치 크리스마스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웅크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울증의 근원인 가족과 함께 사는 지금은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 너무 우울해서 그게 몸으로 느껴져. 가슴이나 배 어딘가에 구멍이 뚫린 것 같아.


스트레이는 자신이 가족(친척까지 포함해서) 중 가장 겉도는 사람이고 동생은 자신보다 사랑받는다고 항상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동생은 다르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스트레이는 동생이 어머니와 말싸움을 하던 도중에 ‘엄마는 형을 편애한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다른 방에 있었기 때문에 반응할 기회가 없었다. 두 번째로 들었을 때는 같은 공간에 있었다. 너무나도 황당하게 들리는 말이었기 때문에 스트레이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고, 어머니와 거의 10년간 서로 만나지 않은 적도 있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반박했다. 그 후로 동생은 최소한 스트레이가 있는 자리에서는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


어머니를 용서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동생과는 사이가 더 가까워지면 좋을 텐데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같이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면서 무난하게 시간을 보낼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스트레이는 동생이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자기중심적이고 이유 없이 자신에게 못되게 군다고 느꼈다. 그리고 어머니와 자주 싸우기는 해도 어머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고 어머니에게 숨기는 것도 없는 동생을 ‘어머니와 같은 편’이라고 인식하는 것처럼 보였다.


- 내 동생은 엄마랑 똑같은 인간이야. 여기 살면서 그게 점점 더 확실해지고 있어.


동생과 자주 만나지 않던 시절에는 오히려 동생만을 자신의 유일한 가족으로 인정하던 스트레이였다. 함께 살면서 정보다는 환멸이 더 강해진 것 같았다.


스트레이는 가족과 가능한 한 마주치지 않기 위해 한겨울에 무작정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친구들이 용돈을 보내 줬을 때는 음식점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돈이 없을 때는 추위 속에서 정처 없이 걸어 다녔다. 나는 스트레이가 돈을 쓰지 않고 추위를 피하며 시간을 보낼 곳이 없을지 생각하다가, 스트레이가 어릴 때와 노숙할 때 공립도서관에 자주 갔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 혹시 가까운 곳에 공립도서관이 있어? 거기 가는 건 어때?

-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네.


스트레이는 그 생각을 다음날 당장 실행에 옮겼다. 도서관에서 처음 집어든 책은 오랫동안 좋아하던 칼 세이건의 저서 중 하나였다. 그날부터 도서관은 자주 스트레이의 피난처가 되었다.


오래 전 스트레이가 가족에게 만들어 준 엔칠라다


(*예전에 '스트레이, 미국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 보완해서 다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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