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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몬 Nov 09. 2020

개발사를 거쳐서 디자인을 깨우쳤다

프로젝트 오너,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SI(외주 개발사)에서 일하기

디자인엔 에이전시, 개발은 SI

디자인에는 인하우스, 에이전시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쉽게 말해 인하우스는 그냥 회사에서 한 서비스를 굴리고 있어서 그 서비스를 계속 발전시켜나가는 형태. 에이전시는 외주도급을 받아 여러 프로젝트를 다양하게 진행하는 형태. 똑같은 개념으로 개발에는 SM, SI가 있는데 SM = 인하우스 / SI = 에이전시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진짜 UX/UI"를 찾아서

기업을 전전긍긍하다, SI업체에서 UX/UI 디자이너를 구직한다는 공고를 보고 올해 1월, 가득했던 열정이랑 "그.. 뭐든 시켜만 주면 잘하겠습니다"란 마인드로 지방에서 서울까지 상경해서 외주 개발사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개발사치고 사용자 경험, 인터페이스에 대해 많은 투자와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땐 좋았지..


진짜 이렇게 말하진 않았다



내 생에 첫 프로젝트

그렇게 Probation Curriculum(이라고 고급스럽게 말하고 수습기간이라고 읽어야 하는)이 끝나고 나에게 첫 '진짜' 프로젝트가 생겼다. 많은 프로젝트를 했지만 이게 가장 기억이 남는다.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홈플러스나 SSG에서 서비스하는 배송시간 예약, 신선 배송 형태의 앱을 개발하자는 프로젝트였는데, '프로젝트 오너로써,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써 한 걸음 나아가는구나 !' 기쁜 마음에 킥오프 미팅에 참석한 순간 ?


기술 스택이 어쩌고, 서버가 머 머라고요?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참고로 우리 회사는 리액트(React), 리액트 네이티브(React Native)를 활용해 개발하는 개발사였다. 리액트로는 뭐 아이폰이랑 안드로이드 개발이 동시에 된다나 머라나.. "첫 프로젝트 오너로 미팅에 들어갔는데 뭘 알겠는가" 그냥 나는 속기사로 빙의해, 열심히 말이나 받아 적었다. 지금이야 대충 들어본 게 있으니까 우리는 리액트를 써서요 ~ 할 수 있지만, 그때는 진짜 뭐가 뭔지 하나도 몰랐다


그래도 여하튼 어떻게 이케이케 으쌰 으쌰 응차 응차 해서 프로젝트는 성황리에 끝났지만



회사에서 뭘 배울 수 있나요

첫 프로젝트를 끝내보니, 나는 진짜 완전히로다가 우물 안의 개구리였구나. 포토샵으로 그림이나 끄적거린다고 디자인을 하는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요 회사에서 뭘 빼먹을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개발사는 어쩔 수 없이 태생적으로 개발 친화적인 문화와 스탠스를 가질 수밖에 없다. (동시에 외주시장부터가 기본적으로 기획/디자인 단가가 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ㅐㅁ우ㅐ무ㅐ 낮다) 결국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더 나은 사용성보다는 같은 사용성에 비해 더 쉽게 개발하고, 더 효율적으로 개발하는 기획/디자인을 할 수밖에 없더라.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 프로젝트를 몇 개 해보니 이게 개발이 편하겠구나 저게 개발이 편하겠구나



'개발을 위한 디자인'은 그만

사실 이 글의 본론은 여기부터다. 내 입으로 말하긴 조금 뭐하지만, 난 회사에서 굉장히 칭송(?) 받는 디자이너였다. 왜 why? 개발하기 어려운 클라이언트 의견 잘 자르고, 개발 편한 디자인 잘 뽑아내고.. 프로젝트 일정 내에 끝내고.. (사실 약간 초과했던 경우도 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됐는데도 생각도 못한 연봉 인상도 해주시고, 다 좋았다. 컨셉에 잡아먹힌 괴물이 되기 전까지는.


우리 회사는 개발자, 디자이너 할 거 없이 대부분 신입이었다. 길어야 1-2년 차 경력이라고 하기 뭐한 중고 신입. 다들 열심히는 하는데 드라마틱하게 잘 되진 않는. 독보적인 장점이라고 하면 회식 때 가고 싶은 회사.


안에서 잘한다 잘한다 해주니까 이게 사람이 칭찬을 듣고 싶어서라도 팔이 안으로 굽게 되더라. 조금 디테일하게 딱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디자이너라고 앉아있는데도 개발 어려워요 어려워요 하는 걸 듣고 사용성은 둘째로 미뤄진 기획자도 아니고 기획을 하긴 하는데 디자인도 하는 디자이너 같은데 아닌 디자이너"


제가 누군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배울 건 확실히 배웠다.

기술 스택이 뭔지, TDD와 OOP, 개발자와 협업하는 방법, 어떻게 해야 개발에서 편하게 받아들이는지 기타 등등 디자이너로서의 소양 같은 것들 ? 


이제 소양을 갖췄으니 역량을 키워보자.




디자인은 설계이자, 설득이다

UX/UI 디자이너로써,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써 역량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집에서 블랑 한 캔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봤다. 일단 디자인은 무엇인가. 아, 여담으로 보통 IT업계에 종사하지 않거나, IT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저 디자인합니다." 하면 대뜸 "그림 그릴 줄 알아?"부터 물어보더라. 나부터 디자인을 시작하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고.. 


디자인은 설계다

다만 디자인은 아트가 아니다. 일례로 국문으로 "설계"를 직역하면 "Design"이다.

구글 갓..


결국 디자인은 설계하는 것이고, UX Design은 사용자 경험을 설계, UI Design은 유저 인터페이스를 설계, Product Design은 제품을 설계하는 의미에 좀 더 가까울 것 같다.


그렇다면 같은 맥락으로 생각해보자. 좋은 디자인 = 좋은 설계

우리가 보통 설계가 잘 되었다 라고 하는 건 ?


이런 설계 말고 ..


우리가 보통 설계가 잘 되었다 라고 하는 건 쓰기 편하고, 예쁘고, 튼튼하고, 안정적인 걸 설계가 잘 되었다고 표현한다. 소프트웨어 제품(Product)을 비유하자면 쓰기 편하고(좋은 사용자 경험), 예쁘고(심미적), 튼튼하고 안정적(탄탄한 기획과 안정적인 개발로 버그가 없음)이다라고 비유할 수 있겠다. 여기서 디자이너는 쓰기 편하고 예쁜 제품을 만드는 게 일일 테고...



디자인은 설득이다

설계는 알겠다. 그럼 왜 설득인지 생각해보자.

좋은 설계의 판단은 ? 사용자가 할 것이다. 우리가 물리적인 제품이나 자동차를 타고 설계가 잘됐네.. 하고 감탄하는 것처럼, 그럼 우리는 이제 제작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제품은 혼자 만들지 않는다. 기획자(또는 프로덕트 디자이너), 디자이너, 개발자가 협업해서 만든다.

그렇다면 두명만 모여도 의견이 다른 이 다양한 세상에서(실제로 우리 회사에서는 디자인적으로 UX적으로 나를 납득시켜야 내가 개발을 하겠다고 말한 개발자도 있었다), 기획자(또는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디자이너와 개발자를, 또 외주도급이라면 클라이언트를 설득해야 한다. 벌써 설득해야 하는 사람이 최소 2명이다.


디자인이 뭔지는 알았다. 디자인은 의미적으로 설계이자, 내부적으로는 설득의 도구이고, 결론적으로는 쓰기 편하고, 예쁘면서 튼튼하고 안정적인 디자인을 해야 한다. (장장 1년을 통해 깨달았다)




저 그만두겠습니다

개념 정리가 명확하게 되니까 앞으로 갈 길이 보이고, 서로에게 긍정적이고(회사 입장에선 아니겠지만) 발전적인 퇴사를 말씀드릴 수 있더라.


우리 대표님께서 굉장히 좋아하셨던 단어인, '정량적으로' 사용자의 반응을 데이터화해서 볼 수 있으면, 설득도 편하고 사용자 입장에서도 좋은 설계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즈음 대표님께서 X스트X퍼스의 Data Driven Design을 추천해주셔서 진짜 진짜 놀랐다.) 하지만 외주 개발사 특성상, 프로젝트 계약을 클라이언트와 파트너사에서 진행하고, 한 결과물에 대해서 계속되는 업데이트, 발전이 이루어지진 않으며, 개발이 끝나면 산출물을 전달하고 잔금처리를 한 후에 프로젝트 계약이 종료되기 때문에


1. 좋은 사용성의 판단을 불특정 다수의 유저가 하는 것이 아닌 특정인(클라이언트)이 하고

2. 하나의 결과물에 쌓이는 데이터를 모아서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없다.


이 두 가지 상황의 반대 케이스를 경험해보고 싶어서 퇴사를 결심했다.


윗 짤과 같이 진짜 이러진 않았다.




결국은 길었다면 길었던, 짧았다면 짧았던 1년 남짓의 경험이 끝났다.

길고 긴 경험을 이 한 글에 모두 정리할 순 없겠지만, 지금의 경험이 내 디자이너로써의 인생 안에 의미 있는 1년이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 글을 마친다.


짧게 구직 메모를 남기자면

프로덕트 디자인, UX/UI 디자인 구직합니다(...)

희망하는 업무형태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와 복작복작해서 사용자 데이터를 긁어모아 정량적으로 판단한 더 나은 UX/UI를 가진 프로덕트를 만드는 경험을 해보는 게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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