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만나는 M의 엄마
이제 영어실력이 쭉쭉 느는 걸까요
여름방학이 지나고 부쩍 더 친해진 첫째 아이와 M.
그전에도 가장 친한 친구였긴 했는데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었다. 우리가 한국에 있어 서로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여름동안 서로의 꿈도 꿨다고 하고, 서로를 무척 그리워했었나 보다. 새 학년 시작하고 나서 매일매일 통화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플레이데잇을 했다. 나는 첫째, 둘째를 픽업하러 매일 학교에 가는데 나를 볼 때마다 플레이데잇을 하고 싶다고 졸라댔다. 그러면 할 수 없이 M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허락을 받고 우리 집으로 데려가기도 하고 M의 집으로 데려다주기도 했다. 미리 약속을 잡으면 좋을 텐데 늘 급하게 약속을 잡게 된다. 문자로 하면 번역기를 사용해서 제대로 된 문장으로 물어볼 수 있는데 당장 연락해야 하는 상황일 때는 전화를 걸 수밖에 없어 너무나 긴장된다. 그동안 M의 엄마와는 수 없이 많은 통화를 해봤지만 통화 전 떨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내 늘지 않는 영어를 듣고 있어야 하는 M의 엄마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문장들에 어버버 하다가 단어 몇 개 얘기하고 끝이 나면 자괴감마저 든다. 새하얘진 머릿속은 한겨울 눈밭보다도 희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떠오르는 문장들에 후회의 발차기만 할 뿐이다.
새 학년 시작 몇 주 후부터는 방과 후 활동이 있어 아이들이 자주 못 놀게 됐다. 그래서 아예 활동까지 함께 등록해서 방과 후에도 꼬박꼬박 만나고 있다. 활동 후에는 함께 집으로 가서 더 놀기도 한다.
얘들아 너무한 거 아니니.
이제 슬립오버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오는 것)도 하고 싶어 한다. 우리 첫째 아이는 혼자 잘 수 있어 걱정이 없지만 M은 아직 부모님과 함께 잔다고 M의 엄마가 걱정을 하길래 M의 집에서 먼저 슬립오버 하기로 했다. 벌써 이렇게 컸구나 싶다.
지난 글에서도 썼었지만 M의 가족은 우리에게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첫째 아이는 M과 놀며 영어를 배웠고, M의 엄마는 내가 개떡 같은 영어로 말해도 찰떡같이 이해해 주며 나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끌어주었다.
이번에 아이들이 서로 더 친해지면서 노는 날이 많아지고 가야 하는 활동들도 많아졌는데 일하는 M의 엄마를 대신해 내가 아이들 픽업을 거의 맡아했다. 나는 어차피 애들 픽업을 위해 학교에 가야 해서 조금 더 오가는 것뿐이라 그리 힘들진 않다. 다만 자주 만나는 만큼 영어로 많은 대화를 해야 하는 것이 힘들 뿐이다. 아이들이 활동을 하러 가면 M의 엄마와 함께 아이들이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아는 모든 영어를 끄집어내느라 십 년씩 늙는 느낌이다. 할 말 자체도 많지 않은데 영어로 하려니 딱 죽겠는 심정이다. 게다가 지난주에는 잠시 일을 쉬던 M의 엄마의 초대로 3일 연속 아이들 플레이데잇과 동시에 엄마들의 티타임을 가졌다. 아이들은 서로 잘 놀고 있어 아무 문제없었다. 그 안에서의 문제는 나뿐이었다. 모든 정신과 육체를 집중해야 떠듬떠듬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M의 엄마가 나에게 고민과 비밀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자리 잡고 이야기를 나누니 다른 사람의 단점까지 이야기를 한다. 누구를 흉보거나 하던 사람이 아니었는데 나를 친한 친구로 생각해 주는 것 같아 기분은 좋았다. 함께 흉봐주고 싶었지만 영어가 달려 할 수 없었고 맞장구만 쳐주었다. 내가 내성적인 소심쟁이에 영어실력도 바닥이지만 다른 사람 이야기 들어주는 것과 리액션은 자신 있어서 장점을 살려 대화를 이어갔다. 본인이 이런 메시지를 받아 기분이 상했었다며 문자메시지도 보여주고 이메일 받은 것도 읽어보라고 보여주는데 다시 머리가 새하얘졌다.
'진정해요 M의 엄마...
나는 이미 한계예요... 미안해요... '
그날 대화의 90%는 이해를 못 한 것 같지만, 이야기의 흐름이 끊기지 않은 것을 보면 50% 정도는 이해를 했나 보다. 물론 나만의 짐작이다. 영혼이 다 빠져나갈 즈음 따뜻한 티와 쿠키를 먹으며 다시 스스로를 다독였다. 할 수 있어!!! 집에 오면 뒷목이 뻣뻣한 것이 3일 동안 하루에 백 년씩 늙은 기분이었다.
동네에서 19년을 살았다는 M의 엄마는 아는 사람이 정말 많다. 따뜻한 성격에 다른 사람 챙기는 것을 잘해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아는 사람이 많으니 동네 소식에도 빠삭하고 늘 이야깃거리가 많다. 그런 M의 엄마와 반강제적으로 영어로 대화를 하고 있는 요즈음 나의 영어실력은 좀 늘었을까.
"확실히 듣기 실력은 늘었어!" 하기에도 애매하다.
들린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냥 소리가 들리는 것이 듣기 실력은 아니다. 아는 단어, 문장이어야 들리고 이해를 할 텐데 아는 게 없으니 듣기 실력이라고 늘을까. 그래도 요새 하루에 20분 정도씩 영어강좌를 듣고 있는데 그때 배운 것들은 어렴풋이나마 익숙하게 들리고 있다. 늘 불안했던 사람 만나는 일. 이제는 인사도 먼저 하고 질문도 먼저 하는 수준까지는 왔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생기는 적막감에 대한 불안 때문에 질문을 먼저 하고 있다. 그러면 답이 훨씬 길게 돌아오기 때문에 시간 보내기 좋은 방법이다. "Hello"도 부끄러워 우왕좌왕하던 내가 이 정도로 영어에 거부감이 없어진 것만 해도 대단한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를 좀 더 하면 훨씬 더 좋아질 것이다. 공부를 하자.
M과 첫째 아이는 어제도 방과 후에 플레이데잇을 했다. 매일 봐도 좋은가보다. 함께 만난 M의 엄마는 또 다른 비밀이야기를 한 보따리 풀어주었다. 주말에도 시간 되면 만나자고 약속했다. 첫째 아이도 나도 이렇게 마음 맞는 좋은 친구가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고, 감사하다.
이렇게 친하게 지내다 멀리 떨어지게 되면 너무 슬플 것 같다. 있을 때 잘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