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하재영 작가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라이프 앤 페이지, 2020)는 2006년 계간 “아시아”에 단편소설 발표로 등단하고, 이후 두 권의 소설의 집필한 하재영 작가 본인이 현재까지 살면서 거쳐온 ‘집’에 대한 기록이자 이 공간들을 통해 성숙하고 다듬어지는 모습을 그려낸 본인의 성장 기록이다. 이 책은 저자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모두가 자의로든 타의로든 집에 머물렀어야 했던 2020년 봄부터 가을까지 집필한 책이다. 요즘같이‘집’이 부를 축적하기 위한, 혹은 이를 나타내기 위한 도구의 의미로만 부각되는 이 시대에,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집이라는 공간의 의미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의 10편의 에세이는 유년 시절 살았던 대구 북성로의 주택을 비롯해, 서울 난곡, 금호동, 그리고 현재 저자가 거주하고 있는 구기동 집 등 저자가 스쳐온 집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통해 성장한 그녀의 내면을 표현하고 있다. 빌라에서의 유년은 그녀에게 아직도 사회에 만연한 보이지 않는 계급을 알게 하였고, 이후 가족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성인이 되어 서울에서 올라온 그녀는 “독립과 해방의 공간이기 이전에 나의 눈물을 타인에게 들키지 않을”(p.54-55) 자기만의 공간을 갈망했다. 그리고 동생과 떨어져 처음으로 독립한 행신동 집에서는 동생에게 의존하던 자신을 내려놓고 스스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한다. 해본 적 없는 일을 혼자 해보면서 독립심을 키워나가고, 그러면서 지금의 남편에게 먼저 고백할 용기도 내었다. 결혼하고 나서는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정신적 공간이 되는 ‘글’을 쓴다.
독자는 저자가 서술한 일곱 채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집이라는 공간은 무엇인가’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집’이라는 공간을 “사적영역인 동시에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장소”(p.217)라고 표현한다. 저자가 어렸을 적, 북성로의 집에서 주방이 유일한 자기만의 공간이었던 어머니를 보면서 “집은 누군가에게 쉼터가 되기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 일터가 되는 곳”(p.26)이라 생각한다. 또한 일찌감치 “집이 가진 계급과 자본의 속성을 알아차렸”(p.44)으며, 커서는 “환경에 따라 사람의 품의와 교양과 인격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만의 집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힘을 쓰고, 그곳에서 보내는 안온한 날들에 감사함을 느낀다. 집은 공간 그 이상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얽혀 있기 때문에 저자는 장소를 “선택하는 것은 삶의 배경을 선택하는 것”(p.180)이므로 한 사람의 삶 가운데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집처럼 편하다’는 관용구대로 일과가 끝난 뒤 돌아가는 휴식의 공간을 집이라 한다면 엄마에게 집은 집이 아니었다”(p.26).
“며느리-아내-엄마인 여자는 집 안의 어느 곳에나 있어야 하므로 집 안이 어느 곳도 소유해서는 안 되었다. 엄마는 장소 그 자체였다”(p.141).
또한 저자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자라며 보아온 어머니의 모습에서부터 본인이 성장하기까지 여성에게 공간이 어떠한 의미인지 이야기하며 독자에게 문제의식을 던진다. 특별히 할머니와 공간적 차별을 받았던 어머니, 혼자 울 곳이 필요했던 어머니의 모습에서 독자는 자신 혹은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공간을 소유하는 것은 자리를 점유하는 것이지만 여성에게 나의 공간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지 않으며(p.138), 특히 여성들은 사적인 집에서조차 장소 상실을 겪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p.139). 비단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책의 내용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범죄에 노출된 다양한 여성들의 겪는 불안함(p.63)과 TV 속 저 멀리 이라크에서 죽어가는 또래 여성 등을 언급하는 등 여성의 위치를 집이라는 공간에서 사회라는 공간으로 확장하고, 여성 독자에게 이 집에서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더 나아가 이 세상에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질문한다.
단순히 이 책을 “집”이라는 공간에 기초한 개인의 서사로만 치부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저자는 지나온 공간에서의 자기 내면의 고뇌 및 감정을 세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저자의 이러한 고민과 감정들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청년으로서 다양한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일반성’과 ‘보편성’을 담고 있다. 또한 모두가 한 번쯤 고민해 볼 수 있는 ‘집’이라는 일반적이고 편안한 주제를 저자 본인만의 간결하고 담백한 문장으로 풀어써, 에세이라는 장르를 처음 접하는 이들도 쉽게 읽고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 고민해 보고 자신만의 생각을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