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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로움 Jan 26. 2023

인생의 다른 계절을 지나며,

각자의 타이밍이 있다.

나에게는 ‘무서운 언니들’이라는 카톡방이 있다. 신입생 시절부터 친한 여자 대학 동기들과의 카톡방이다. 카카오톡이 생긴 이래 계속 몇 년째 활발히 유지되고 있는 이 채팅방에 있는 6명의 동기는 모두 나보다 한 살이 많다. 우리는 같이 살기도 하고, 여행도 같이 다니고, 슬펐을 때나 기뻤을 때나 18년이라는 세월을 함께하면서 인생의 흑역사와 황금기를 함께한 친구 사이다. 이런 그들에게 내가 한 살 어리다고 거리감이나 소외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동안 연애, 커리어 등의 공통분모가 있었던 우리의 카톡 주제가 나를 제외한 다수의 관심사인 육아로 옮겨갔기 때문이었다. 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하고 아이까지 비슷한 시기에 낳으면서 단톡방은 온통 육아 이야기로 가득 찬다. 덕분에 라라스, 역방쿠, 브레짜 등등 최신 육아 아이템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모든 채팅방의 알람을 무음으로 해놓기 때문에 시간 날 때 틈틈이 확인하는데, 이 카톡방의 메시지가 300개가 넘게 와있을 때가 많다. 대부분 현재 육아 휴직 중인 그들의 메시지다. 거의 99퍼센트의 이야기는 ‘아이가 잠을 잘 안 잔다.’, ‘애가 많이 먹는다’, ‘이유식은 어디 것으로 주문해야 하나’ 등의 육아 이야기들이다. 점점 그 단톡방에서 나의 대화 비중은 작아진다. 엄마들의 대화에 나는 낄 수가 없다. 가장 최근에 보낸 나의 메시지도 꽤 오래되어서, 한참을 위로 스크롤 한 후에 채팅방 오른쪽의 말풍선을 보고 찾을 수 있었다.


연말에 그 채팅방에 있는 한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 내외는 유난히 나를 잘 챙겨주는데, 하루는 형부가 그 단톡방에서 너무 육아 이야기를 하면 아직 미혼인 나만 소외되지 않겠냐고 걱정하더라고 했다. 뭐 사실 그렇다. 소외를 시킨 건 아니지만 이미 초등학생 학부모인 한 친구와 나만 그 대화창에서 말이 거의 없다. 나는 그 내외의 배려에 고마움을 느꼈다. 고맙지만 그렇지 않다고, 언젠가 필요할지도 모를 육아 공부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직도 혼자만 결혼 안 하고 아이가 없는 내 탓이라고.


뭐 사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봐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각자 인생의 타이밍이 다를 뿐. 나의 대학 친구들은 비슷한 타이밍에 결혼과 출산이라는 중요한 순간들을 겪었다. 누군가에는 이를 수도 혹은 늦을 수도 어쩌면 없을 수도 있는 순간들이다. 지금, 이 타이밍에 그들은 출산의 경험을 하여 육아라는 공통 관심사가 생긴 것이다. 그들과 인생의 타이밍이 조금씩 어긋나면서 관심사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누구보다도 아이를 좋아하고 결혼을 빨리하고 싶어 조바심을 냈던 나는 2년 전부터 어쩌면 결혼과 출산이라는 순간이 나에게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커리어, 독서, 재테크, 야구, 글쓰기라는 새로운 관심사가 생겼다.


어제 그들과 저녁 약속이 있었다. 오랜만에 자유 부인이 된 친구들은 몇 주 전부터 약속을 잡았고, 집에 아주 늦게 가겠다고 남편들에게 선전포고하며 들떠있었다. 나갈 준비를 하려고 문득 양치하다가 ‘오늘은 오프라인에서 더 활발한 육아 이야기가 오가겠군. 그냥 가지 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심사가 달라진 그들과의 자리에서 육아 이야기만 오고 간다면 나는 정말 그 식사 자리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올겨울 최강 한파라는데 누군가가 약속을 파투 내주길, 내 몸이 아팠으면 좋겠다고 살짝 바라기도 해봤다.


하지만 막상 저녁 식사 자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좋았다. 코로나다 출산 후 몸조리다 이런저런 이후로 오랫동안 보지 못하고 온라인으로만 이야기했는데,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며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모두에게 의미가 있었고 즐거웠던 것 같다. 그들에게도 육아가 아닌 커리어 등 다른 고민거리들이 많았다. 하지만 뭐랄까?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막연한 두려움과 글로는 설명하지 못할 나의 속 깊은 이야기는 당분간은 그 자리에서 꺼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왜냐면 그들은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일 것이기 때문이다. 내 친구들 역시도 어쩌면 육아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었지만, 나를 배려하느라 내가 공감 못할 마음속 깊은 이야기들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인생의 다른 계절을 지나고 있기 때문에 나는 내게는 아직 오지 않은 봄의 싱그러움을 모를 것이고, 그들은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지난 겨울의 시림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혼자 집에 걸어오는 길, 문득 엄마의 대학 동창 선자 아줌마가 생각났다. 결혼하지 말고 평생 다 같이 살자고 할 정도로 대학 동기인 선자 아줌마와 엄마 그리고 수정 아줌마는 친했다. 종종 나도 어렸을 때 아줌마들 집에 놀러 가기도 했었는데,  선자 아줌마가 여러 가지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으시며, 만나자고 해도 슬슬 피하고 어느 순간 연락을 끊어버렸다고 했다. 어차피 다른 인생을 사는 너희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본인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동정 같은 것은 하지 말라는 마지막 말과 함께 말이다. 어차피 자기 먹고사는 게 힘들고 바쁘면 끊어지는 게 친구라고 애써 선자 아줌마에 대한 섭섭함을 억누르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예전에는 이해를 못 했던 선자 아줌마를 이제야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친구들이 늦가을 그리고 내가 초가을을 지날 쯤에서야 우리는 인생의 같은 계절을 지난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며 올 겨울 최강 한파가 온 그 밤, 나는 거리를 걸었다.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melissaask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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