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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로움 Feb 02. 2023

이별 학원

상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준비

누군가가 그랬다. 세상 그 어떤 것도 이별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숱한 이별의 순간을 반복한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 가족의 죽음, 열심히 일하던 회사에서의 퇴직, 아끼던 내 볼펜, 활기차고 아름다웠던 나의 20대 등. 유난히 나는 그 대상이 누구든 그리고 무엇이든 매번 이별이 참으로 두렵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대사처럼 그때만큼은 ‘내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는데 그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건지… 뭐든 공부하고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나인데, 이별을 겪을 때 도무지 내 마음은 내 노력대로 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이별의 형태 중에서 ‘죽음’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이별’의 이야기로 선뜻 와닿지 않았다. 아직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직접 곁에서 겪어본 적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데 최근에 할머니를 뵐 때마다, 그렇게 먼 이야기로만 들렸던 것이 곧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한다.


매번 내가 좋아하는 치토스를 사주신 것도, 아빠가 어릴 적 예뻐했던 강아지 쫑이 이야기를 해주신 것도, 나에게 구구단을 가르쳐 주신 것도 할머니였다. 나는 지금도 우리 할머니가 지난 30년간 해주신 떡국과 식혜보다 더 맛있는 것을 먹어본 적이 없다. 몇 년 전, 내가 결혼까지 진지하게 고민하던 남자친구랑 헤어졌다고 했을 때만 해도 우리 할머니는 “잘 헤어졌어. 내 새끼 더 좋은 사람 만날 거야!” 하며 위로를 해주셨다. 그로부터 두 해가 지나서는 “우리 손녀는 이제 진짜 시집가도 되겠는데… 이제 할머니한테 시간이 별로 없는데…”라고 이야기하셨던 나의 할머니는 이제 그렇게 말할 기운도 없으시고 멍하니 계실 때가 많다. 그렇게 예뻐하던 손녀가 나인지 가끔 깜박깜박하실 때도 있는 것 같다. 할머니 드시기에 편하게 레토르트 음식, 과일, 쌀도 보내드리곤 하는데, 이제는 그런 레토르트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돌릴 기운도 없으시다고 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수영 강습도 열심히 다니시면서 센터에서 받은 메달도 자랑스럽게 보여주시곤 하셨던 할머니. 노인 대학에서 배운 첨밀밀이라는 중국 가요도 간드러지시게 부른 할머니셨는데, 이제는 기력 없이 누워만 계신다.


설 연휴 며칠 전, 할머니를 뵈러 다녀온 아빠가 엄마랑 한참 말을 나누시더니 이번 설에 나는 할머니 댁에 가지 않는 게 좋지 않겠다고 하셨다. 상태가 매우 좋지 않으시고, 내가 감기에 걸려서 할머니한테 괜히 옮길까 봐 걱정돼서였다. 결국 설 연휴에 부모님만 할머니 댁에 다녀오셨는데, 할머니가 기억도 깜박깜박하시고, 소변을 못 가리신다고 했다. 내가 어렸을 적, 내가 자다가 오줌을 싸면 할머니는 나를 씻기고, 이불을 갈고, 나를 꾸중하는 엄마 앞에서 애가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내 편을 들어주시곤 했는데, 나는 할머니를 위해서 해드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게 참 마음이 시리다. 가끔 찾아뵈는 것, 그리고 전화하면 자꾸 했던 말을 또 하시는 할머니를 가만히 들어드리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나에게 할머니는 슈퍼 우먼이셨다. 딱히 직업이 없으셨던 할아버지를 대신해 슈퍼와 식당을 운영하시면서 아버지와 삼촌을 ‘개천에서 용 난’ 형제로 키우셨다. 어려운 환경에서 억척스럽게 두 형제를 키우신 할머니는 남이 집에서 살림하는 게 불편하다고 간병인은 싫다고 하셨다. 결국 서울집이나 요양병원으로 모시기 위해 가족들이 설득하는데 할머니는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지금 살고 계신 집에서 마무리하시겠다고 계속 고집을 부리신다. 결국 이 모든 것은 할아버지의 몫이 되어 버렸다.


내가 며칠 전 전화를 드렸을 때,

“할머니 요양병원 들어가세요. 가시면 친구들도 많이 사귀실 수 있고, 밥도 할아버지 밥보다 더 맛있대요. 자주 뵈러 갈게요. 할머니 손녀가 아기 낳을 때까지 건강하셔야지”

라고 말씀드리니, 내가 손녀딸인 건 아시는 건지,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시긴 하시는 건지 “응. 응”만 겨우 대답하셨다. 매일 여덟 시에 할머니께 안부 전화 드리려고 알람을 해놓기도 하고, 시간 날 때마다 찾아뵈려고 하지만 막상 그렇게 잘하지 못해서 너무 죄송하다.


나는 할머니와 참 많이 닮은 부분이 많다. 외모도 그렇고, 성격도 특정한 부분에서 굉장히 많이 닮았다. 예를 들면,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배우고, 일을 벌이기를 좋아하는 것. 가끔 우리 엄마는 나를 꾸짖을 때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아무튼 누가 제 할머니 손녀 아니랄까 봐!”


나는 내가 많이 닮은 사랑하는 할머니와 이별할 날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많이 두렵다. 요즘 별의별 학원들이 많던데, 사랑하는 대상과의 이별 대처법을 알려주는 학원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나도 할머니와 작별의 시간이 돌아오면, 천국 가실 할머니를 위해 많이 슬퍼하지 않고 덤덤하게 보내 드리는 연습을 미리 할 수 있게 말이다.


photo by unsplash/@sincerely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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