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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May 27. 2021

미움받는 며느리가 행복하다(1)

1. 그들은 무엇을 걱정하는 걸까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자신이 사람들에게 호감을 준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사이가 좋고 직장에서는 좋은 동료, 좋은 상사일 것이라 믿는다. 나 또한 어디를 가도 사랑받는 사람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특히 결혼하면 당연히 시부모님에게 사랑을 받을 것이며 고부간 의 갈등은 나하고는 상관없는 드라마 속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국제결혼 후 일본에 사는 나는 출산을 위해 친정집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이 태아의 성장이 느리니 빨리 출산휴가를 내고 쉬는 것이 좋을 거라 하셨지만, 출산 후에도 계속 일을 하고 싶은 마음에 임신하기 전보다도 더 열심히 일에 집중했다. 그 때문인지 출산일이 다가오자 배 속의 아이가 건강할지, 30대면 노산일 텐데 무사히 출산은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밀려왔다.



 시어머니께 전화가 걸려왔다. 2 주 후면 한국으로 떠나는 내가 걱정되셨나 보다. 친정으로 가지 말고 일본에서 아이를 낳았으면 하는 바람에 시댁 근처의 병원까지 알아보신 모양이다. “임신한 채로 비행기를 타면 위험하지 않겠니? 공항에 사람도 많을 텐데. 괜히 안 좋은 병이라도 옮으면 큰일 나니 일본에서 아이를 낳으면 어떻겠니?” 나를 걱정해주시는 시부모님의 마음은 감사했지만 임신한 후로 유난히도 친정이 그리웠고 그렇게 좋아하던 우동의 간장 냄새도 역겨워져 빨리 한국으로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저도 처음에는 일본에서 출산하려고 했는데요, 아무래도 한국에는 산후조리원이 있어서 아이 돌보기도 수월하고 조리원에서 관리받으면 몸 회복도 빠를 것 같아서요.” 어머님께는 일본 유명 연예인도 한국의 조리원이 마음에 들어 한국에서 출산할 정도이니 걱정 안 하셔도 되며, 도쿄에서 후쿠오카까지 비행기로 2시간가량 걸리니 한국에 가는 것이 후쿠오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도 말씀드렸다. 하지만 어머님의 설득은 계속되었다. 어머님이 이렇게나 원하시니 한국에서 출산하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걸까. 친정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을 먹고 온종일 누워 드라마를 보며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지금껏 직장생활도 버틸 수 있었는데, 친정에 못 간다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 자꾸만 한숨만 쉬게 된다. 시어머님은 아버님도 내가 일본에서 출산하기를 원하시니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 하시며 전화를 끊으셨다. 



 결국, 이대로 한국에 못 가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울음이 터졌다. 누군가 내 목 안에 손수건이라도 꾸역꾸역 눌러 논 것처럼 답답하다. 지금이 아니면 한국에서 친정 식구들과 함께 지 낼 수 있는 기회는 없을 것만 같았다. 꼭 한국에서 출산해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단지 친정에 가고 싶었을 뿐. 아니 한국에 가고 싶었다. 일본의 의료시스템이 좋은 것도 알고 있고 시부모님 또한 나를 많이 생각해주신다. 그런 마음을 알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서럽게 눈물만 났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은 팅팅 부은 내 눈을 보고 놀란다. 남편도 시아버지의 전화를 여러 번 받은 모양이다. “괜찮아. 아버지가 일본에서 아이를 낳기를 원하시긴 하지만 우리가 한국 간다고 하면 그렇게 하라 하실 거야. 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향을 묻는 것뿐이야. 그만 울어.” “정말? 그래도 되는 거야? 어머님께서 계속 전화도 안 끊으시고 설득을 하셔서. 난 진짜 못 가는 거 아닌가 싶었지.” 나는 남편의 말에 안심된 모양인지 그렇게 서럽던 눈물도 딱 멈추고 갑자기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오늘은 늦었으니 시부모님께는 내일 다시 전화를 드려야겠다.



 아침 일찍부터 남편 휴대폰이 울린다. 시아버지 전화다.

 어제와는 다르게 남편 목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거실에서 전화를 받던 남편이 조용히 방으로 들어간다. 남편의 뒷모습을 보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100m 계주의 총소리를 기다릴 때처럼 가슴이 뛰기 시작하더니 내 심장 소리가 밖으로까지 들려온다. 크게 숨을 내뱉고 방문 앞에 귀를 가져다 대본다. 대화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지만, 남편이 나올 때까지 방문에 귀를 대고 기다렸다. “아버지가 국적 이야기를 하시네. 네가 일본인으로 귀화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갑자기 왜 국적 이야기를 하시지? 귀화하고 싶다고 쉽게 되는 것도 아니고 국적만 바꾼다고 내가 일본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 난 한국 사람이야. 당신도 내가 귀화했으면 좋겠어?” 결혼할 때조차도 양가에서 국제결혼을 반대하지 않았는데 이제 와 일본인으로 귀화하라니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남편은 10년 넘게 외국 생활한 경험이 있어 지금껏 일본에서 외국 생활을 하는 나를 잘 이해해주었고, 그런 우리가 서로 생각이 잘 맞았기 때문에 결혼까지 가능했던 거라 믿었는데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남편은 내가 일본 인으로 귀화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아버지가 물어보시니 내 생각이 어떤지 확인해 본 것뿐이다. 그런데도 남편 입에서 귀화라는 단어가 나오자 화가 치밀었다. 이번에는 내 휴대폰이 울린다. 아침에 먹은 사과가 명치에 걸려 있는 것만 같다. 계속 울리는 휴대폰을 식탁 위로 던져버리고 싶었다. 내가 일본인으로 귀화한다고? 상상조차도 하고 싶지 않다. 내 머릿속은 배 속의 아이가 작다는데 괜찮을까? 친정엄마가 알아봤다는 조리원은 괜찮은 곳일까? 내가 일본인이 된다고? 여러 걱정으로 뒤죽박죽이다. 며칠째 계속되는 시부모님의 성화에 남편은 내가 예정대로 한국에서 출산할 거며 지금은 출산에 집중하고 싶으니 귀화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정리를 해주었다. 그렇게 난 한국으로 떠날 수 있었다.



 공항에 도착하자 엄마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지방에서 김포공항까지 올라오려고 새벽부터 움직이셨을 것이다. 버스 안에서 계속 주무셨던 걸까 뒷머리가 납작하게 눌려있다. “태아가 작다더니 배는 생각보다 많이 나왔네. 이 배로 계속 아침저녁 전철 타고 직장생활을 했던거야?” 엄마는 한숨을 크게 내쉬며 툭 튀어나온 배를 만져보신다. 지방으로 내려갈 리무진 버스 시간까지 아직 시간이 있다. 오랜만에 만날 친척 어른들과 친구들에게 줄 선물, 태어날 아이가 사용할 아기용품까지 이것저것 챙기느라 커다란 여행용 가방이 2개나 된다. 엄마는 힘들게 들고 가지 말고 택배로 보내자 하신다. 택배로 짐을 보내고 편의점에서 김밥 몇 줄을 사서 리무진 버스에 올라탔다. 전라도 사투리가 들려온다. 분명 싸우는 게 아닐 텐데 거친 사투리가 말다툼으로 느껴진다. 이제야 내가 집에 온 실감이 난다.



 몇 시쯤 된 걸까. 머리맡까지 들어온 햇빛에 눈은 부시고 보일러를 세게 틀어놓은 탓에 등이 뜨거워 몇 번이나 뒤척였다.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오자 공기가 후끈하다. 배 속의 아이가 작다는 말이 신경 쓰이셨는지 엄마는 뼈국을 끓이셨나 보다. 이틀간 꼼짝도 안 하고 먹고 자고 천국이 따로 없다. 거실 소파에 누워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손에 쥐고 나니 남편이 궁금해졌다. 아침은 제대로 먹고 출근을 했나 메시지를 보내자 전화가 걸려온다. 근무시간에는 문자도 잘 안 보는 사람이 바로 전화를 하는 걸 보면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것이다. 



“부모님께서 귀화 문제 어떻게 할 건지 빨리 결정하라 하시네. 귀화 안 할 거라고 말씀드렸는데도 계속 전화를 하셔서….” 귀화라는 단어에 뒷골이 당겨온다. 내가 왜 귀화를 생각해 봐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한국인인 걸 알고 결혼한 건데 제발 좀 그만들 하시라고 소리라도 치고 싶었다. 시부모가 그리도 내가 일본인이 되기를 원하는 이유는 태어날 아이가 이중국적자가 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아이가 한국 국적을 갖게 되는 것이 싫으니 며느리가 하루라도 빨리 일본인이 되기를 원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복잡한 내 심경과는 달리 아이는 다행히도 2.5 킬로로 건강히 태어났다. 친정엄마는 요즘 애들은 3킬로 넘게 태어나는데 아이가 너무 작다며 한숨을 쉬신다. 그렇게 애써 고아 먹인 소고깃국이 태아에게는 안 가고 산모만 살이 쪄서 섭섭하신 모양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친정에 온후 한 달 만에 체중이 10킬로나 불어 엄마가 뿌듯해하셨기 때문이다. 출산예정일에 맞춰 한국으로 온 남편도 자신을 쏙 빼닮은 아이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 아이를 품에 안고 행복을 느끼는 것도 잠깐. 다시 시부모의 재촉이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쉬고 있는 내가 거슬리는 모양이다. 아직 목도 제대로 가루지 못하는 아이를 데리고 혼자 일본으로 가는 게 조금은 겁이 났다. 하지만 내가 불안해하면 아이도 느낄게 분명하다. 이제 나는 한 아이의 엄마이니 내가 굳건히 버텨야 한다.



 일본 집에 도착해 거실로 들어서자 커다란 꽃바구니가 눈에 들어온 다. 바구니 앞에 놓여있는 작은 카드에는 앞으로 건강히 행복하게 살자는 남편의 메시지가 있다. 이렇게 큰 꽃바구니면 비쌀 텐데 뭐하러 이런 걸 준비했느냐며 남편에게 김 빠진 소리를 하고 말았다. 남편의 메시지가 왠지 모르게 낯 뜨겁지만, 자꾸만 웃음이 났다. 우리는 그렇게 하루하 루를 평범하고 소소하게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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