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해 빠진 곰탱이도 야동을 좋아한다
결혼 8년 차
남자라면 야동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니,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한 번쯤은 야한 상상을 하고 야한 영화를 보고는 한다. 하지만 결혼 후 남편이 아내 몰래 야동을 본다면 어떨까.
나는 쿨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야동 보는 남편, 이해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결혼 8년 차.
남편의 서재를 지나는데 촉이 왔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남편의 책상과 컴퓨터.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조심스레 전원을 켜고 인터넷 검색 이력을 살펴봤다.
깨끗했다. 이상하도록 깨끗하다.
인터넷 검색기록, 방문 기록이 삭제되어있다. 싸한 느낌이 왔다.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결혼 1년 차 때, 나 몰래 야동 같은 건 보지 않기로 남편과 약속을 한 적이 있었다. 언제나 착실하고 순한 곰탱이 같은 남편의 약속을 굳게 믿었다.
1주일 후, 남편의 컴퓨터를 다시 들여다봤다.
있다.
이상한 사이트에 접속한 기록이 있다.
곰탱이 남편이 이럴 리가 없는데 왜? 왜?
'아니야. 곰탱이도 남자니까... 그럴 수 있어. 그래, 그냥 모른 척하자.' 남편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런데 모른 척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남편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날 저녁, 자정이 넘은 시간, 딸아이와 자는 남편을 깨웠다. 남편은 무슨 일이냐며 머리를 긁적이며 거실로 나왔다.
"당신, 야동 봐?"
비몽사몽 하던 남편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니고, 이 정도는 이해해 주려고 했다. 하지만 멍하니 앉아 있는 남편을 바라보자 서운함이 밀려왔다. 내가 여자로 보이지 않는 걸까... 자존심이 상했다. 남편의 약속을 굳게 믿었는데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날 배신했어. 날 속였어. 거짓말쟁이. 나쁜 놈'
쿨한 여자로 살고 싶었는데 속에서 올라오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혹시 내가 야근한 날, 그 시간에 야동을 본 걸까... 내 안에 분노가 터지고 말았다.
등짝을 후려쳤다. 야속했다. 있는 힘껏 남편을 밀었지만, 남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 남편이 더 미웠다. 한참을 때리고 나자 진이 빠졌다. 남편은 펑펑 우는 나를 꼭 안아준다. 배신감에 남편과 대화도 하고 싶지 않았다.
10분쯤 지났을까...
내 손이 시퍼렇게 변해있다. 온 힘을 다해 남편을 때린 탓인지... 손가락 마디마디가 시퍼렇다. 10분 만에 이렇게 멍이 들 수 있는 건가? 손가락에 감각이 없어졌다. 이러다 피가 안 통해 손가락을 잘라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겁도 났다. 내 손이 부을 정도면 남편은 혹시 뼈라도 부러진 게 아닐까 걱정이 됐다. 다행히, 신기하게도 남편은 멀쩡했다. 누군가를 아프게 하려면, 그 아픔의 몇 배로 내가 먼저 아파야 하는 건가.
무서웠다. 나는 남편을 붙들고 구급차를 불러 달라 애원했다. 남편도 이렇게 멍이 든 손은 처음 본 모양이다. 당황한 남편은 응급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시퍼렇게 멍이 들고 팅팅 부어서, 응급실에 가려고 합니다."
응급센터 담당자는 누가 언제 어떻게 다친 거냐 자세히 물었다.
곰탱이 남편은 머뭇거리다 이야기한다.
"아... 그게... 우리 와이프가... 그러니까... 어... 사람을 때리다... 손에 멍이 들어가지고..."
이런 미친... 바보 곰탱이 같으니... 폭력 와이프라고 신고하는 거야. 뭐야... 어이가 없어 쓴웃음이 났다.
"당장 전화 끊어!!"
그날 밤, 얼음찜질하며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혼 8년 차,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