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기에 지영씨는 행복한 편이다.
나는 84년생이고 주인공인 김지영씨와는 또래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영화를 본 지는 오래되었는데 요즘브런치에서 ‘이혼’, ‘며느리’, ‘고부갈등’ 같은 키워드들을 접하고 몇 분이 쓰신 폭풍 같은 글들을 읽고 나니 나도 뭔가 쓰고 싶어졌다.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나의 결혼생활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불행했다. 아이는 어렸고 양가 부모님께 도움받을 형편이 안 되었으며 남편과는 말을 섞기만 하면 금전적인 문제로 싸움을 해댔다. (아니! 둘이 버는데 왜 항상 돈이 모자란단 말이냐???) 싸우기 싫어서 서로 마주치거나 대화하는 것을 피했고 나는 직장생활을 하며 남편의 도움 없이 어린아이 둘을 아침저녁으로 어린이집,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혼자서 케어해야 했다.
그 전쟁 같던 아침시간,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늘 나 혼자.
정서적 이혼상태.
어린 두 아이들이 내 다리 한쪽씩을 차지하고 달라붙어 징징대고 있다. 남편과 나는 분명 같은 길을 걷고 있는데 저 멀리 앞서 걷고 있다. 남편의 두 손에는 짐도 없고 발걸음도 가볍다. 나는 한 발짝 떼기가 너무나 힘들다. 그와 나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진다. 한 번쯤은 뒤돌아 나를, 우리를 발견하고 달려와 도와줄 만도 한데.... 그는 그저 상관없는 사람처럼 유유히 멀어진다. 서럽고 지친다. 여보 같이 가. 나 좀 봐줘. 나 너무 힘들어. 나의 외침은 끝내 그에게 가닿지 않고 지쳐버린 나는 입을 다문다.
나는 결혼은 했는데 남편이 없었고 애들은 아빠가 없었다. 정말 그때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해냈던 거지 다시 젊어진다 해도 그 시절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 않다. 애들이 귀엽고 예쁜지도 모르고 허덕대며 육아했던 그 때로는 절대.
결혼생활 암흑기를 쓰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으니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와서,
주인공은 시댁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경력단절에 대한 불안 등의 이유로 많이 힘들어한다.
나는 이미 여기서부터 전혀 공감이 안 갔던 것이다. 일단 남편이 아내의 상태에 관심을 가져주고 걱정해 주고 신경을 써 주고 병원에도 가보라고 말해준단 말이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기혼여성의 이야기다 보니 당시 나의 상황과 비교해 생각하게 되고 과몰입하게 되었다. 나라면 어땠을까. 남편이 내 상태를 신경 써주고 아이도 같이 돌보고 집안일도 저 정도로 거들어주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할 것 같았다.
사람마다 행복과 불행을 느끼는 지점이 다르고 참고 견딜 수 있는 한계도 다르겠지만 내 보기에 지영씨는 행복한 사람이다.
어쩌면 나는 부러워했다. 지영씨가 불행해하며 우울하다고 느끼는 그 가정을 부러워했던 것이다.
사랑까지는 아니어도 관심. 그 정도만이라도.
아 지금 생각해도 너무 슬프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혼’을 ‘한부모가정 지원’ 같은 걸 검색하던 그때의 어린 내가 너무 안쓰럽고 불쌍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