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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여정 Feb 10. 2022

초품아보다 마을이 중요하다


직전 글에서 마을과 학교 자랑을 했다. 살수록 좋은 곳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이렇게 우리 동네가 좋은지 남편이 휴직을 하고 서야 알았다는 거다.

집 밖을 나가는 목적은 외출을 위해 버스를 타거나 아이들이 학교 버스에서 내려서 집에 오는 길을 마중 나가기 위해서였다.

딸과 나는 전에 살던 곳에서 사람에 대한 무서움을 안고 왔다.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를 마중 나가던 길에 동네 할머니를 만났다. 어디에 사냐고 물으시길래 대답을 했다. 마침 학교버스에서 내려 걸어오던 아이는 허겁지겁 뛰어와서 나를 잡아끌며 말했다.

"엄마!! 도와주려고 했던 거 아니지? 또 무슨 일 당하면 어떡해!!" 겁에 질린 아이를 보며 이렇게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 생각과 마음이 거기까지였다. 뭔가를 애써보고 싶지 않았다.


이사온지 7년 만에 우연히 동네에 공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남편이 휴직 중 저녁 식사를 책임지면서 일이 끝나고 식사 전에 여유가 생긴 거다. 아이들과 산책을 했다. 공터는 집과 2분 거리였다. 공터 옆, 우리 집 쪽에서 보면 뒷집에 사시는 아저씨에게 공터가 뭐하는 곳이냐고 물었다. 국유지로 공원이란다. 그러면서 처음 인사를 했다.


나 : 안녕하세요

뒷집 아저씨 :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나 : 앞집 살아요.

뒷집 아저씨 : 세상에... 서로 처음 보는 거 같네요.

나 : 그러게요. 제가 7년 전에 이사올 때 이 집에 할머니가 계셨는데... 요즘 안보이시네요..

뒷집 아저씨 : 저희 어머니요? 돌아가신 지... 4년 되었는데요... 쩝.


허걱! 마음에 빗장을 걸어 잠그고 이사 왔다지만 이렇게 단절될 줄이야.... 이야기를 나눌수록 서로가 미안해지는 상황이 되었다.


2020년 코로나 19 발생 직전, 자자체에서 하는 동아리 지원 사업을 알게 되었다. 공공의 목적으로 기획을 하고 신청을 하면 일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지원금은 강사비나 재료비 등으로 사용할 수 있다. 목적은 지속 가능한 모임을 통해 소통을 하고 더 나은 지역사회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자세한 자격 조건 및 실행 조건은 지자체와 사업마다 다르다) 제도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타 지역에서 주관을 할 때 참여하는 정도였다.


뒷집 아저씨와의 대화를 통해 공원이라는 자원과 주민들과의 소통을 연결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 후 스치듯 인사만 했던 몇몇 분들과 모여 나무를 심고 정자를 만들고 원예를 배웠다.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을 품어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보면 어떨까! 내가 다가가자 나를 품어주고 안정을 주었듯 동네 아이들에게도 푸근한 어른이 되고 싶었다. 이는 예절강사로 일을 하며 느꼈던 것과 연관이 있다.

내가 수업했던 아이들의 대부분은 '비행청소년'이라 불린다. 아이들이 저지른 잘못의 원인은 여러 가지 겠지만 보호자를 포함한 어른들의 태도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교사 또는 친구를 탓하며 평생 상처로 남을 만한 말을 하거나 시간이 약이라는 듯 학원에 보내며 잘못을 저지를 시간을 주지 않는 것으로 대안으로 삼는다. 또 다른 모습은 사건을 계기로 아이와 대화를 하고 상처를 어루만져주며 아이 스스로 달라지게 만든다.

몇 년 전 소년원에 멘토링을 하러 갔다. 나의 멘티 옆에 한 아이가 밖에 문을 바라보며 할머니를 기다렸다. 내가 옆에서 간식을 주고 말을 걸어도 먹지 않고 안절부절못했다. 혹시라도 할머니가 오시다 무슨 일이라도 있을까 걱정이 된다고 했다. 면회시간이 끝나기 10분 전, 아이가 살던 동네 이웃집 아주머니가 할머니를 모시고 왔다. 폐지를 주우며 손자들을 기르고 어렵게 사는 걸 보아온 아주머니는 할머니의 손자가 소년원에 있다고 하자, 새벽에 도시락을 싸서 할머니를 모시고 면회를 오신 거다. 오는 동안 휴게소에 들러 손자가 좋아하는 꼬치를 사 오시다 늦은 거였다. "이 놈아!" 하면서 눈물바람으로 들어오시며 혹여라도 늦어 못 먹여 들여보낼까 봐 꼬치부터 건네는 할머니와 아이의 만남을 보고 그 주변이 울음바다가 되었다. 내 평생에 큰 배움과 감동으로 남는다. (지금은 이러한 제도가 없어졌다) 할머니는 그 아이가 이곳에 오기 전, 오갈 데 없는 아이의 친구에게 폐지를 주워 모은 돈으로 라면을 끓여주었다. 이웃집 아주머니는 차비가 없어 발을 동동거리는 할머니를 모시고 4시간 넘게 버스 타고 오셨다. 아이에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 도 있으면 결국 옳은 방향으로 자라게 된다는 '회복 탄성력'이 이 아이에게 작용하길 간절히 바란다.


예절 강사 외에도 다른 직업으로 직장에 다니며 바쁘게 살고 있지만 희생이 아닌 우리 아이들과 같이 성장하는 방향이라면 시도해보고 싶었다. 다행히도 우리 동네 아이들은 편안한 가정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라고 있다. 마음의 여유가 있는 만큼 의견을 존중하여 스스로가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그래서 모임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주체가 되어 회의를 진행하고 배우고 싶거나 함께하고 싶은 것들을 찾는다. 물론, 현재 진행 중이다.


남편의 휴직이 없었더라면?이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해본다.

남편의 휴직이 없었다면 공원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10년 넘게 살았을 것이다. 뒷집 아저씨와 길에서 만나면 겁이 나서 집으로 뛰어들어갔을 거다. 아이들을 마중 나가는 이유는 모르는 사람을 만나 위험해질까 걱정되어서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오자마자 다시 직장인 모드로 일을 해야 하고 일이 끝나면 재택근무하는 방 문턱을 지나 주방으로 출근해야 한다. 공원이 앞마당이 아닌 이상 갈 일이 없었을 거다.


지원금은 불씨가 되었다. 겁이 질릴 정도로 아이와 나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렇다고 단절이 방법이 될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4년이 넘게 사람이 안 보여도 알지 못하고 누군가 죽어도 모르고 살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 아이도 나와 같이 살게 될까 걱정이 되었다. 이러한 마음은 파이어 스틱이 되었고 지원금은 마찰에 의한 불씨가 되었다.


도시에서 초품아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학교 다닐 수 있는 아파트를 말한다. 우리 동네엔 아파트도 없고 집에서 학교 운동장이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다가간 만큼 아이들과 성장하고 거리두기 상황에서도 품어주는 마을이다. 코로나19를 3년째 겪으며 멀리사는 형제지간보다 내가 포함된 마을, 공동체가 더욱 의지가 되었고 소통을 하며 위로가 되었다. 이러한 동네가 없다면? 내가 만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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