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리아 Mulia Dec 30. 2021

안온한 우리이기를


크리스마스이브가 생일인 우리 아들... 덕분에 우리 가족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아들의 생일파티를 겸한 크리스마스 홈파티를 한다. 홈파티라고 대단한 건 아니고 술 좋아하는 우리 부부용 술안주상...^^ 올해는 기말고사가 늦어서 24일에야 아들의 시험이 끝났다.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과도 놀아야 하고 더군다나 그날이 자기 생일이니, 코로나 시국에 자유롭진 못하지만 속으로는 매일 보는 식구들과의 저녁보다는 친구들과의 시간이 더 고팠을 거다. 그래도 시험이 끝난 후 친구들과는 잠깐 보고 저녁 시간에 맞추어 들어오길래 기특하다 싶었더니, 저녁 먹고 잠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를 보러 다시 나가야 한단다. 바쁘시군...

부랴부랴 준비한 음식들로 가족끼리 건배를 하고 생일 축하 인사를 건넸다. 선물은 미리 코트를 사줬으니 그날 따로 오고 가는 건 없었고 신랑도 나도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만 건넸다. 신랑은 카드를 사러 몇 군데를 다녔다는데, 난 중고등 학생 때 사서 여태 보관했던 크리스마스 카드를 꺼냈다. 세월이 지났지만 그래도 무난한 것들로...


지난 일 년 동안 알게 모르게 많은 일이 있었던 아들과 나. 어느 날은 다정함 1도 없는 냉랭한 사이였다가 어느 날은 옆에 와서 무릎을 베고 눕기도 하는 사이로, 그렇게 아들과 나 사이의 온도가 냉탕과 온탕을 반복하는 동안 일 년이 지났다. 알아서 하겠다는 아들의 그 말을 전적으로 믿고 싶으면서도 불쑥불쑥 끼어드는 불안함과 걱정에, 아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잔소리를 늘어놓았던 시간... 귀에도 들어오지 않을 그런 말들이란 걸 알면서도 난 왜 그 소리들을 조용히 삼키지 못했을까.


크리스마스 카드 겸 생일 카드를 쓰면서 많은 말들이 떠올랐다. 카드 말고 편지지에 썼어야 했나 싶을 정도로 많은 말 가운데 "엄마가 늘 보채고 잔소리해서 힘들었지? 그래도 속으로는 널 많이 응원하고 있으니 엄마 마음을 조금은 알아주면 좋겠어. 그리고 엄마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사랑한다."라는 말을 넣었다. 잘못하고 후회할 일이 많은 사람이 더 눈물이 많은 법인지, 그 말을 쓰는데 휴지를 몇 장을 뽑았는지... 그렇게 눈물 콧물을 찍어내며 쓴 카드를 건넸지만 받는 둥 마는 둥 쳐다도 안 보고, 심지어 그날 밤엔 식탁 옆 스툴에 그대로 둔 채 방으로 가지고 들어가지도 않았다. 우리와의 저녁 시간은 아주 짧게... 그리고 소파에서 친구와 전화를 하더니 나갔다 온다면서 휑하니 나간 녀석. 다 컸다 이거지!!




그렇게 크리스마스이브와 크리스마스가 있던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저녁쯤 네 식구가 같이 식탁에 앉았을 때 아들이 생일날 친구들을 만났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 A랑 B가 내 생일 케이크로 쓸 초코파이를 샀는데 초가 없잖아. 그래서 근처 빵집에 들어가서 '저, 제 친구가 오늘 생일인데 초가 없어서요. 죄송하지만 초 하나만 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했대. 그랬더니 거기 직원분이 '생일이니까 드릴게요'라고 하나를 주셔서 초를 겨우 얻었는데, 내가 오고 나서 겨우 불을 붙였다? 근데 그날 엄청 추웠던 거 알지? 갑자기 바람이 불어서 불이 확 꺼진 거야. 큭큭."


친구들 행동이 웃겼는지 겨우 촛불을 붙였는데 바람이 불어서 꺼진 게 재밌었던 건지, 아들은 연신 낄낄거리고 친구들 흉내까지 내가며 열심히 그날의 상황을 말해줬다. 좋을 때다... 같이 웃으며 아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아들에게 물었다. "근데 너, 엄마가 준 카드는 읽었니?" 


줬으면 그만이지 난 또 무슨 확인이 하고 싶었던 건지... 엄마 아빠에게 카드 한 장 주지 않았던 아들이지만 그래도 너무 아무 말이 없길래 약간 괘씸한 생각도 들어서 물어본 건데 이어서 돌아온 아들의 대답. "당연히 읽었지. 내가 그거 읽고 얼마나 울었는지 알아?"  옆자리에 앉아서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지는 그 녀석의 한마디. 저녁 겸 마신 와인이 감정을 데워 놓아서 더 그랬는지, 갑자기 훅 들어온 아들의 그 말을 듣고 울보 엄마의 눈은 또 빨개졌더랬다. 그래... 이런 마음이면 된 거지. 적어도 카드를 읽었던 그 순간에 너와 나의 마음은 같은 마음이었구나.


'어른스러워 어른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처럼 되라고 어른 대접하는 때가 사춘기'라는 서천석 선생님의 글을 읽고도 난 내내 끝날 듯 끝이 보이지 않았던 너의 사춘기를 원망하고 아빠만큼 커진 키처럼 조금씩 마음도 커졌을 너를 그저 어린애 취급만 했구나... 내 감정만 앞세우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너를 탓하며 '알아서 해'라는 무책임한 말들로 너를 외롭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미안해 정말... 내년에도 불쑥불쑥 조급함과 답답함이 가득한 마음들로 부족한 엄마의 모습을 보이겠지만 그래도 올해보단 더 지혜로운 엄마가 되어 볼게. 지금의 다짐이 다짐으로만 끝나지 않게, 너와 나의 마음이 따뜻하게 닿을 수 있게...

매거진의 이전글 딸의 힐링 푸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