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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기로운 민정 Feb 06. 2024

고드름아  100-86

#고드름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은 빗방울을 잔뜩 머금고 있다. 미세먼지인지 흐린 날인지 회색빛이 감도는 하루가 저물어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드름을 만다. 지붕이 있는 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겨울 풍경이다. 대부분 한옥이 있던 자리에 빌가 우두커니 서 있는 동네다. 지붕이 있는 옛집이 있었음을 새삼스럽게 각인시켜 준다. 며칠 전에 내렸던 눈이 지붕 위에 쌓였다가 녹으면서  골을 타고 내려오다가 얼음이 되어버린 고드름이다. 주렁주렁 거꾸로 매달려 있는 모습이 개구쟁이 어린 시절을 본 듯하여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어릴 적에 고드름은 너무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난감이다. 지붕 끝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면 따고 싶은 욕망이 불타오른다. 어른들을 졸라서 하나 얻으면 세상을 얻은 듯 기분이 좋다. 냉장고는 상상도 못 했던 시절이다. 얼음은 겨울에만 볼 수 있고, 만질 수도 있고, 먹을 수도 있다. 고드름을 따서 가지고만 있어도 뿌듯하다. 친구를 만나면 누가 더 큰지 키재기도 하고 칼싸움하면서 뛰어다니기도 한다. 그러다 덥고 지쳐서 쉬면서 먹기도 한다. 손에 쥐고 쫍쫍 빨아먹기도 하고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으면 입안이 얼얼하면서 느껴지는 시원한 맛은 달콤한 맛과는 또 다른 희열이다. 손에 쥐고 있는 고드름이 녹아내리면서 흐르는 물은 안타까운 내 마음 같다. 어쩌다 기분이 우울하면 긴 장대를 가지고 지붕 끝에 나란히 나란히 줄지어 있는 고드름을 와장창 깨버리기도 한다. 고드름이 깨지면서 들려오는 청아한 소리에 쾌감을 즐기기도 했다.


지금은 고드름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따먹을 수는 더더 없지만 그저 바라만 보아도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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