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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다녀왔습니다!

by 재준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제 매거진 「희극의 파편」이 아닌 그냥 제 여행 에세이글을 올려보았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르고 맥주 소녀의 손을 잡았다. 살면서 외국인 손을 처음으로 잡아본 것일까?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노란 복장을 입은 내 나이 또래들은 자기 몸보다 큰 맥주통을 어깨에 메고 다닌다. 손을 들면 앞으로 와서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보잘것없는 플라스틱 통에 맥주를 따른다. 혹은 다 녹은 얼음 비닐봉지를 꺼내 담고 하이볼 맥주캔을 따른다. 빈 통은 자기 가방에 아무렇지 않게 던져서 넣어둔다. 별거 아닌 거겠지만 그녀들은 별것처럼 행동한다. 화장기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 얼굴을 유심히 살펴본다. 그래도 자신감이 없진 않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한번도 스스로 의심을 해본 적이 없어서, 그것이 아시아 최고라는 자각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아니면 당연한 문화적 세습 현상을 그녀의 반듯한 허리처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인진 모르겠다. 중간에 앉은 손님이 시킨 맥주를 위해 맥주 소녀가 나에게 맥주를 건네주었다. 나는 얼떨결에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도 내 손을 잡았었다. 각자 나라에 태어나서 고생이 참 많습니다. 그런 대화를 주고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 나라는 그런 고생을 불쌍히 여길 필요가 없다. 그러나 여기 나라는 그런 분석조차 무의미한 것처럼 보인다.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구석빼기에 있는 돈까스덮밥 식당엔 할머니 혼자 일을 한다. 조또마떼 쿠다사이. 왜 그런가 싶더니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애 8명이 와서는 똑같은 메뉴 8개를 시킨 듯했다. 밥그릇을 들어 퍼먹는다. 그리고 한 명이 대표 주자로 나서서 현금을 주섬주섬 꺼낸다. 할머니는 주판 같은 것을 꺼내더니 동전 하나하나를 계산해서 그에게 건넨다. 그것이 구시대적인 것일까? 그러나 바뀔 필요가 없다. 돈은 돌고 돈다, 여기 이 나라는, 스스로. 교토에는 전통 가옥이 즐비하지만 매년 관광비로만 14조를 챙겨간다. 전국으로 매일 자판기 수입으로만 550억이다. 오사카 거리는 외국인들로 붐빈다. 한국인이 많지만 결국엔 적다. 서양인이 50배 많아서다. 그래서 바뀌지 않을 필요가 있나 보다. 자동차 앞범퍼 썬팅이 법적으로 금지된 이 나라는, 그래서 이 일본인들은 깨끗하게 아무 걱정 없이 정진해나간다. 유난히 하늘이 맑은 나라에서 서양인들은 선글라스를 낀 채 검은 햇빛 아래서 이 나라를 빛내주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어떤 여자애를 맥도날드에서 봤다. 멕시코 사람인지 미국 사람인지 솔직히 모르겠다. 가족들은 날씬했는데 그 여자애만 살짝 뚱뚱했다. 그런데 얼굴만은 작았다. 내 나이 또래처럼 보였다. 나름 누나라고 남동생에게 무언가를 말하며 혼내고 있었다. 그리고 가족들은 잠시 화장실로 사라졌다. 나는 그녀를 본다. 그녀도 나의 시선을 의식한다. 햄버거를 들고 먹는데 나처럼 팔꿈치에 약간의 습진이 있었다. 미니 냉방 손풍기를 틀어본다. 소리가 크다. 나는 콜라를 마시면서, 쉐이크를 시켰는데 빨대밖에 없어서 쏙쏙 빨기만 하면서, 그리고 유카타를 입은 중국인을 보면서, 아 중국인 새끼들은 비키질 않아, 하며 빨리 지나가려는 형을 보며, 그리고 나막신을 신으며 딱딱거리며 그리고 눈치도 딱딱 보면서 지나가는 서양인 형제들을 보며, 햄버거를 밥처럼 우걱우걱 먹는 일본 아저씨를 보며, 그리고 나는 숙소 침대에서 결국 사람은 불쌍한 인간이구나 라고 결론을 지었다. 그리고 그 결론은 나에게 중요한 무엇이라 믿었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번엔 손을 잡지 않았다. 그녀가 준 명함을 손을 대지 않고 받기만 했다. 분홍 메이드복을 입은 내 나이 또래 같이 보이는 여자들이 5m를 간격으로 서 있었다. 지하 아이돌이나 메이드 카페에 일하는 친구들처럼 보였다. 갸루상도 보였다. 덴덴 사거리였다. 그러나 나에겐 난이도가 좀 있어 보였다. 유희왕 피규어를 사고자 했지만 막상 유희왕 인기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애니메이션을 본 거라곤 유희왕, 원펀맨, 기생수 정도였다. 그러나 무서운 건 실제로 본 것은 느끼는 게 다르다는 것이다. 이상할 것만 같던 갸루상들도 괜찮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다. 바보가 아니다... 바보라서 사람들에게 무시를 받아가면서 35도의 날씨에 메이드 복장을 입고 대기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생각했다. 바보가 아닌 여자들이 저녁에도 있었다. 그런데 그 여자들은 조금은 바보라고 해도 괜찮았을까? 누가 봐도 처음 보는 사이로 보이는 남녀가 우리와 같은 숙소 엘리베이터를 탄다. 남자는 중국인이나 한국인처럼 보였다. 하필 같은 5층에 내렸다. 남자를 따라 들어가는 그 여자를 봤다. 그 여자도 나를 보았다. 키가 작았다. 화장기가 없었다. 수수해보였다. 돈이 궁한 거니? 나는 눈빛으로 물어보고 싶었다. 내 나이 또래처럼 보였다. 양말을 신지 않고 이상한 크록스 같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거렸었다.


그때 멍하니 전광판을 보았다. 4만 명이나 되는 그 공간에 어쩌면 여기 있는 것이 평생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일본 야구장 전광판에 내 얼굴이 있었다. 형아, 형아 우리 찍고 있는데? 나는 당황해서 말도 잘 안 나왔다. 한국인인 걸 알아본 건가? 스타벅스에서 아무런 말도 안 했는데 감사합니다, 라고 직원이 말했다. 타코야끼를 시키며 ‘텐 피스, 오네가이시마스’ 라고 외워두고 있는데 말하기도 전에 몇 개? 라고 아저씨가 우리에게 먼저 물었다. 우리가 그렇게 한국인으로 보이나? 우리가 그렇게 그렇게 보여? 나는 커다란 화면으로 내 얼굴을 직접 보았다.


이것도 밑에 열광하는 아이들 때문에 카메라가 밑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ㅎㅎ



나는 다음날 오모카루이 돌을 들어보았다. 속으로 소원을 빌고 그 돌을 들었을 때 가볍게 느껴지면 쉽게 이루어지고 무겁게 느껴지면 잘 안 풀린다는 뜻이라고 했다. 나는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돌을 들었다. 헐크가 ‘I’m Always Angry.‘ 하며 바로 헐크로 변하는 것처럼, 항상 무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빌고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라고 한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랐다.


마지막 날, 우리는 온천에 갔다. 일본인들의 장수 비결 중 하나가 온천이라고 했다. 화산과 지진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는 환경에서 하늘이 내린 선물, 온천. 너무 더워서 그랬는지 내 베스트 탕은 냉탕이었다. 냉탕이 굉장히 작은데 그래서 5명만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다. 찬물 앞에 바가지가 있는데 찬물에 들어가기 전 바가지로 몸을 적신다. 그러면 알아서 나오라는 뜻이 되어 가장 탕에 오래 있었던 사람이 나온다. 그리고 수건 하나를 목욕탕 안에 가져가야 하는데 그것은 탕과 탕 사이를 오갈 때 몸을 가리는 용도였다. 그 수건은 탕에 들어가 있을 때는 용도가 붕 뜨게 된다. 그것을 탕 안으로 넣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수건을 머리 위에 올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잠시 대리석 턱 위에 놔두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찬 물에 잠시 경직되었는데 이내 몸이 풀리기 시작했다. 차가운 물도 온천수 맞지? 라고 생각하며 머리를 대리석 턱에 눕혔다. 수건도 그쪽으로 던졌다. 사실 별것 아니지만 나는 별것인 것처럼 행동했다. 어릴 때는 온천에 자주 가서 그랬던 것일까? 대학 병원 교수가 내 피부를 보더니 어릴 때는 엄마가 관리를 잘 시켰나 보네, 라고 했었다. 온천을 꾸준히 하면 류마티스 관절염, 건선, 습진, 아토피, 피부염 같은 증상을 예방할 수 있다고 했다. 그게 맞았나보다. 어느새 내가 나올 차례가 되었다. 바가지로 물을 뜨는 사람이 나타났다. 얼른 내 수건을 들었다. 그런데 그때 다른 사람이 먼저 찬물에서 나왔다. 나는 다시 머리를 눕혔다. 얼굴이 그새 말라서 피부 조직이 서로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손에 있던 수건을 머리 위로 아무렇지 않게 살포시 던졌다.

작은 체구에 작은 손가락들이 떠올랐다. 상냥한 비루걸이 갑자기 돌변해 자기 가방에 화풀이하듯 맥주캔을 던지는 장면을 떠올렸다. 일본에는 특유의 간장과 나무가 뒤섞인 냄새가 난다. 한자를 쓰는 나라가 이렇게 발전할 수도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고민 끝에 산 보잘것없는 붉은눈의흑룡 피규어를 잘 샀다고 생각했다. 내가 조금만 옆 나라에 태어났더라면 나도 이런 걸 좋아하겠지, 어쩔수가 없었다. 나는 옷을 입고 우유를 자판기로 뽑아 마시며 멍을 때렸다. 밖에 나와서도 남자와 여자 대기실이 나뉘어 있었다. 그러나 자판기는 남자 쪽 대기실에 있어서 한 여자가 약간의 눈치를 보며 남자만 있는 대기실을 가로질러 자판기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본 적이 있는 눈빛이었다. 나는 지갑에 넣은 메이드복을 입은 여성의 명함을 문득 살펴보았다. 글씨는 삐뚤빼뚤했다. 불쌍했다. 메이드 복을 벗고 다시 원래 입고 왔던 옷을 입고 집으로 돌아가 화장을 지우고 냉장고에서 남은 것이 무엇이 있나, 찾아볼 것이다. 내가 들었던 돌은 한없이 무거웠다. 마지막 공항에서 찍은 내 얼굴은 피곤함에 절어서 망가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빨간 탕에 조금 더 있을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야외 복분자탕은 너무 냄새가 좋았다.




오늘의 노래입니다.



La Paloma -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Donde va que mi voz

어디로 가는 걸까, 내 목소리를


Ya no quiere escuchar

더는 들으려 하지 않네


Donde va que mi vida se apaga

어디로 가는 걸까, 내 삶은 꺼져가는데


Si junto a mi no está

내 곁에 네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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