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위한 준비단계?" 산책을 위해 준비까지 해야하는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이는 아주 간단한(?)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부분은 어디까지나 필자의 견해이며, 더 다양한 마음가짐과 준비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러 갈 때 누군가는 장르에 따른 마음가짐이 다를 수 있으며, 함께 할 먹거리들 마다 갖는 마음가짐이 다를 것이다. 앞으로 적어나갈 것은 내가 현대예술에 접근하기 어려워 했을 때, 나름대로 정립한 마음가짐 즉, 준비단계이다. (그럼에도 현대예술은 아직도 어렵고.. 그렇다.)
1. 정보의 습득이라는 목적의식 없애기 / 무언가를 알아가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 답을 내리고, 이해하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미술관의 진입장벽이 높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미술관이 전문적인 지식이나 교육 컨텐츠를 제공하는 장소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며, 이를 통해 미술관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점이 '무제' 아니면 난해한 제목과 '다양한 매체들의 혼합'으로 즐비한 현대예술을 감상하는데 하나의 방해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예술 작품은 '여유로운 감상을 허용하지 않는 것' 처럼, '자꾸 읽어야하고 이해하고 머리 속에 그것들을 넣어야 할 것'처럼, '머무르는 곳이 아닌 몰입해야 하는 곳'처럼 여겨진다. 감상에서 오는 다양한 가능성은 감상에서 오는 불쾌함으로 수렴될 확률이 높아진다. 물론 '불쾌함'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감상이 될 수 있지만, 이것의 지속적인 축적은 예술 작품이 갖는 방향성을 한정 지을 수 있다.
이해와 습득을 포함한 다양한 강박에서 벗어나 여유롭고 머무를 수 있는 마음가짐의 필요성을 느낀다. 그렇다고 완전히 미술관의 의도와 작품에서 멀찍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발에서 두 발 정도 떨어진채, 관람방향을 따라가지 않고 가끔은 의자에 앉으면서 작품들이 주는 분위기와 문득문득 드는 생각에 집중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다. 처음보는 사람과 어느 정도 친해질 시간이 필요하듯이, 어느 작품도 한 사람의 세계가 바탕이 되기에 이들과 친해질 시간이 필요하다.
2. 미술관 안에 있는 '예술 작품'만이 감상 대상이 아니다.
미술관마다 주는 분위기는 다르다. 규모부터 동선 그리고 그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나 추구하는 방향성, 방문하는 관람객의 특징 등 이런 부분을 먼저 파악하는 것도 작품을 보는 데 도움이 된다. 도착하자마자 전시 설명, 작품 즉, '본론'부터 들어가는 것보다 처음 들어갔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나 분위기 같은 '서론'을 우선 느껴보는 것이 좋을 수 있다. 공원에 처음 들어갔을 때 '운동을 할거야!'라고 마음을 먹으면 팔의 궤적과 보폭이 커지면서 빠른 운동을 하게되지만, '산책을 할거야!'라고 마음을 먹으면 느긋하게 주변을 보며, 분위기를 느끼며 많은 사유들 속에 빠지게 된다. (운동=산책일 경우도 있겠지만)
또 하나 확인해보면 전시를 보는 관람자 자신의 기분이나 전시에 대한 기대감 즉, 자기를 둘러싼 느낌에 대해 확인해보는 것도 좋다. 왜냐하면 그때의 기분에 따라 다가오는 전시, 작품, 분위기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작품이 주는 무언가를 찾아보는 것, 감상해보는 것도 좋지만 반대로 감상자 스스로에게 나타나는 감정의 형상을 느껴보는 것도 예술 감상의 다른 방식이 될 수 있다. 우울할 때 작품은 더 우울함을 줄 수 있고, 오히려 치유의 시간을 제공할 수 있다.
3. 작가의 의도 또한 중요하다.
앞서 감상의 '서론'을 작성했다면, 이제는 본론으로 들어가야 한다. 서론이 '감상의 준비를 위한' 마음가짐이라면 본론에선 '본격적으로 작품을 보기 위한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번에 작품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1번에서도 언급했지만, 작품을 '그 자리에서' 바로 '이해'하려고 했을때, 돌아오는 것은 불쾌함과 난해함뿐이다.
그럼에도 작가의 의도를 살펴보려고 노력하는 것은 중요한 포인트다. 스스로의 감정과 전시장의 분위기를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기서 멈춘다면 이는 자신의 감정을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것으로 끝맺음 된다. 감정과 분위기를 확인했다면 - 이제 미술관, 작품과 인사를 하고 친해졌으니 - 한발짝 더 나아가 상호작용하고 스스로를 확장하려는 단계를 밟으면 된다. 이해의 가능 여부를 떠나 작가의 세계에 접근하는 과정 자체는 사고의 지평을 넓히려는 시도이고 이에 따른 결과가 수반된다. 작가의 의도는 '작가의 의도'에서 끝나야 한다. 그것이 하나의 수렴점이자 정답이 되어서는 안된다. '작가의 의도는 이거인거 같은데, $#^@#^@ 나는 이렇게도 보이고 저렇게도 보이는데?' 에서 방점이 찍히는 부분은 '나는 이렇게도 보이고 저렇게도 보인다'라는 다양한 접근방법과 결과물이다. 작가의 의도는 각자의 감상을 위한 좋은 촉매제가 된다.
중요한건 - 또 말하듯 - 과정에서 보여지는 조급함과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감상자가 잔뜩 힘을 주면 작품도 잔뜩 힘을 줄 것이고, 긴장을 풀고 여유를 갖고 다가간다면 작품 또한 그렇게 다가올 것이다.
요약하자면,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작품을 비롯한 주변에 다른 부분까지도 관심을 가져보고, 작품과 분위기에 가까워질 충분한 시간을 확보한 후, 작가와 미술관이 하는 말에 귀 기울여 보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들은 필자가 미술관을 다녀보면서 나름대로 정립한 감상에 대한 작은 의견에 불과하다. 분명한 것은 예술과 예술 작품에 대해 갖는 태도가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과 재미있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심오하고 진지한 것을 추구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태도에 따라서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을 추구하는 것인데, 이는 고유한 방식이 존재해야 관람자 자신에게 고유한 흔적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고유한 방식과 흔적은 스스로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현대 예술이 주는 난해함은 하나의 관람 방식으로 해체될 수 있고, 조합될 수 있으며 이러한 과정의 흔적은 새로운 통찰력을 위한 토대가 될 수 있다. 이런 과정이 작가가 존재하고 작품이 존재하며 관람자가 존재하는 하나의 사소한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