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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rough The Forest Aug 31. 2021

미술관에서 산책하기 - (2) 국립현대미술관 워치&칠

우리 집에서, 워치 앤 칠



  앞으로 쓸 글들은 전시의 소개나 작가의 소개가 아니다. 그러한 정보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검색하기만 해도 쉽게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의 글들은 전시와 작품들의 개인적 감상을 중심으로 한다. 전시 전체를 다루는 대신 작품 하나하나에 담겨 있는 의미들에 대해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진중하게 접근하고자 한다. (사실 전시 전체를 다뤄보려는 큰 목표가 있었지만, 써보니 점점 지치는 스스로를 발견했고 분량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러다간 하나 쓰고 녹다운될 것 같은 강한 느낌을 받았다.)  


  앞 포스팅에서 다루었듯이 이는 정답을 찾는 여정은 아니다. 단지, 현대미술이라는 것을 일상이라는 경계 안에서 조금은 쉽고 재밌게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에서 시작된 사소한 감상문이다. 보리스 그로이스는 그의 책 <새로움에 대하여>에서 니체를 이렇게 말한다. 


니체의 사유의 힘은, 그가 철학 전통 비판을 통해 새로운 철학적 원리를 세우려 했던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철학 외적 특정한 삶의 실천을 철학적으로 가치화하려 했다는 데에 있다. P. 110


  물론 나는 니체라는 사람의 발톱의 때의 때만큼도 따라가지 못하겠지만, 어쨌든 이 글들을 통해 미술 외적 삶의 실천을 미술을 통해 가치화시켜보는 기회를 가져보고자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가는 길은 언제나 좋다. 안국역에서 나와 새로이 생긴 서울공예박물관을 지나 덕성여중/여고를 지나는 길은 언제나 싱그럽다. 그렇게 미술관으로 걷던 중, 입구에서 현수막들이 보였다. 현수막들은 각각의 처우 개선을 위한 메세지를 담고 있다. 그러한 메세지가 미술관을 배경으로 하니 그 현수막 또한 어떤 예술적 의미를 담고 있는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한다. 반대로 쉼의 장소가 되는 미술관에 이런 현수막이 걸려 있는걸 보니 한편으로 서운하기도 하다. 쉼터를 침해당한 기분이랄까. 시스템과 기술은 점점 발전하는데 사람과의 관계는 발전하지 않는 것일까. 시스템과 기술을 구현하기 위한 기계 부품들은 저마다 조화로이 움직이며 작동하고 발전하는데, 그걸 이용하는 인간의 관계는 왜 지속적으로 삐걱대고 있는 것일까.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워치 앤 칠(Watch &  Chill)이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예술을 감상 혹은 바라보면서 칠링이라니! 편안한 분위기에서 미디어 아티스트의 작품을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가진 채 그리고 아무런 정보도 미리 파악하지 않은 채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개인적으로 - 매체 종류와 미술관 위치를 제외하고 - 미리 전시를 파악하는 과정은 감상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그래서 가끔 드는 생각은 전시에 대한 소개가 전시장 마지막에 놓이면 어떨까라는 것이다. 자유롭게 감상하고 마지막에 잠깐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건 어떨까하며)




 총 4개의 파트로 나뉘어 있다. <거실의 사물들>, <내 곁에 누군가>, <집의 공동체>, <메타-홈>


나의 칠링은 <거실의 사물들>에서 끝난 듯하다. 다른 파트로 갈 수록 작품 수는 늘어났고, 상영시간도 길어졌으며, 내용은 갈수록 - 집에서 칠링하며 보기엔 - 진중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곳이 제일 ‘우리 집에서, 워치 앤 칠’할 수 있는 분위기와 내용을 가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의 칠한 감상은 여기까지다. 처음 들어갔을 때 오민의 <에이 비 에이 비디오>, 2016 는 마음의 안정감을 가져다 주었다. 반복적으로 보여지는 일상의 사물과 보기 좋게 배열되는 이들의 상영은 마치 내가 쇼파에 누워 멍때리는 듯한 감정을 만들도록 했다. 퍼포머의 발소리와 의자가 놓이는 등의 소리도 이러한 감정을 증폭시켰다.


오민, <에이 비 에이 비디오>, 2016, 컬러, 유성, 12분 50초,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러한 과정의 연속은 내가 자연스레 각 사물이 가진 모습에 대해 집중하도록 했다. 그리고 작가는 이를 보여준다. 빛에 반사되는 사물의 모습과 질감들 그리고 자석에 붙는 금속의 다양한 소리 등을 우리에게 제안한다. 



 소파에 누워있듯 편하게 칠링을 하다가 갑자기 생각의 장소에 머물게 되었다.


‘줄세우기’에 관한 것이다. 


  취업 전선에 있는 나로선 이러한 생각은 바로 채용과정을 떠올리게 했다. 채용은 인간을 줄세우는 대표적인 행위이지 않을까. 어떤 기준을 통해 차례대로 배열되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들, 겉으로 보이는 것은 종이에 불과하지만 내용을 3D화 하면 가지각색의 색깔과 모양이 차례대로 나열되지 않을까. 여기서 누구는 선택되고 누구는 그대로 놓인다. 

  그렇다고 이러한 줄세우기가 반드시 어떤 부정적인 의미만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줄세우기는 질서를 형성하고 이것에 의해 불화나 복잡함을 해소한다. 당장 방에 있는 옷더미와 책더미를 비롯한 잡동사니 더미를 떠올려보자. 이들은 줄세우기가 필요하다. 매우 절실하게. 


 작품 속 사물의 줄세움도 다양한 의미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길이와 색과 같은 기준 없이 배열되어 있어 복잡해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적당한 간격으로 놓여 있는 모습은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너무 지루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혼잡하지도 않다. 칠링하기에 좋은 작업처럼 느껴졌다.



  바로 옆에 있는 작품으로 움직였다. 위안광밍의 <주거>, 2014 였다. 


위안광밍, <주거>, 2014, 컬러, 유성, 5분 33초, 작가 및 TKG+ 소장, M+ 제공


이러한 장면이 지속되고 주변엔 기포와 같은 것들이 부유한다. 이를 두고 봤을 때는 물속에서 촬영한 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잠시 후 이러한 편안함은,



이렇게 파괴된다. 그리고 분열된 사물의 파편들이 슬로우 모션처럼 떠다닌다. 멍하니 쳐다보는 동안 머리 한켠에서는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걸?’ 어떤 외부의 힘이 작용하여 본래의 모습을 없애버렸지만, 어떤 윤리적인 기준을 위반하지 않는 한에서 이런 모습은 나름대로의 조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펼쳐지는 책의 모습과 기울어지는 식물들의 모습, 서있지 않고 날아다니는 의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정체성을 뽐내고 있다. 나름대로 괜찮지 않은가?



 주거란 작게는 생활 기기, 가구 및 실내 장비, 실내 공간, 주택, 거주지 등까지 확대되는 물리적 주택의 범위와 취침 · 취미 등의 개인 생활, 식사 · 휴식 · 단란 등의 가족 공동생활, 접객 · 사교 등의 근린 생활과 공동체로서의 지역 생활을 포함한 사회생활이 함께 어우러지는 생활의 장소로 개념 지을 수 있다. 이러한 주거의 역할은 가족생활을 보호 · 유지하고 가족의 화목을 도모하며 가족을 양육하고 보호하는 기능과 휴식 및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기능, 가사 노동의 장소가 되고 지역 사회생활이 기반이 되는 기능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주거 [住居] (Basic 중학생을 위한 기술·가정 용어사전, 2007. 8. 10., 기술사랑연구회)



  제목을 보고 주거에 대해 찾아본 후엔 이 작업을 단순히 영상미의 조화로움으로 결론내릴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일상의 평안함 가운데 폭탄에 맞은 것처럼 터지고 파괴되는 장면은, 다양한 주거의 모습에서 도사리고 있는 불안과 균열의 가능성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뉴스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것은, 이웃주민이 보기엔 너무나도 보기 좋은 가정이지만 사실은 엄청난 폭력의 참상이 숨어있었던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를 배경으로 한다면 앞의 작업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하나의 부조화 속 조화로운 영상미가 아니라 가정의 잔인한 참상의 모습이다. 


 이는 나의 머리와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는 주거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각각이 갖고 있는 생각과 감정의 주거 양상은 단정한 모습을 띨 수도 반대로 복잡하지만 화려한 모습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모습이든 평안함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닐까. 




 의자, 빨래집게, 청소기, 바닥 타일, 장난감... '거실의 사물들'에서는 집을 이루는 물건과 이들의 배치, 나열, 순환의 장면을 담은 작품을 소개한다. 사물을 단순한 대상이라기보다 고유한 활기가 있는 물질이자 자체의 역량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사물 사이의 관계, 그리고 이들이 인간과 사회에 미치는 정동적 효과를 탐색한다. 감염병의 유행으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물건과 친밀함이 생기는 현상을 은유하며, 가정을 구성하는 물질과 이들이 나타내는 개인과 집단의 경험, 무의식, 정체성의 문제를 다룬다.  글은 국립현대미술관



 거실의 사물들 파트를 설명하는 문구를 보니 내가 느낀 내용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였다. 청개구리인 나는 좀 다르게 봤으면 좋겠다는 억지도 있었지만, 어쨌든 의도를 잘 읽은 것 같은 느낌이다. 나중에 전시기획을 한다면 이런 일치를 잘 이루어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작업 두 개를 보았을 뿐인데 이렇게 글이 길어져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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