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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rough The Forest Sep 11. 2021

미술관에서 산책하기 - (3) 문화비축기지 디지털아우라

오픈미디어아트페스티벌 - 디지털 아우라/2021. 9. 9 - 9. 12


  간단하게 문화비축기지는 이전 70년대 석유파동으로 만약을 대비하여, 석유를 비축했던 석유비축기지를 새롭게 용도변경 한 곳이다. 총 5기의 석유탱크가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변모하였다. 전시를 보기 위해 방문했을 때, 그 규모에 놀랐다. 엄청 넓고, 엄청 크다. 

문화비축기지 / 탱크 겉면에 녹슨 모양이 나름대로의 장면을 연출한다


  미디어 아트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이라는 제목은 호기심을 자극했다. 과연 어떤 축제가 펼쳐질지, 얼마나 다양한 미디어 아트가 소개되고 있는지, 더불어 문화비축기지가 보여주는 위용을 보니 더욱 기대감이 컸다. 


제5회 오픈미디어페아트페스티벌 디지털 아우라는 예술을 통해 디지털 기술이 인간, 환경, 사회, 예술에 미치는 변화를 탐구하고 질문한다. 뉴 크리에이터스, 디지털 인포테크, 디지털 생태 섹션으로 나누어 AI와 알고리즘의 발전으로 등장한 새로운 예술 창작자들, 새로운 미디어 도구와 넘쳐나는 정보, 미래의 환경 및 디지털 생태에 관한 시각을 보여주는 예술가들의 실험적인 작품이 소개된다. 네이버 전시소개


T1,T2,T4,T5의 장소에서 전시가 이루어진다. 각각의 장소는 <뉴크리에이터스>, <대만 및 퀘벡/캐나다 작가 스페셜>, <디지털 인포-테크 & 디지털 생태>, <디지털 생태>를 주제로 한다. 돌아다녀보니 추후 이곳에 국제전이 열린다면 전시하기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우라를 느끼기 충분했다. 처음부터 로봇, 데이터, AI를 이용한 작업들을 볼 수 있었고 이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장면과 행위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팀보이드(Team VOID), <Over the Air> (2018) / 세계의 공기질 데이터를 수집하고 반응하여 오른쪽의 그림처럼 결과물을 낸다. 불균형할수록 대기질이 좋지 않다


  T1 에서의 작업들은 기술과 예술의 접점을 바탕으로 기계가 중심이 되어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큰 틀에서 봤을 때 이 곳은 전체 전시의 맛보기이며 '앞으로 이런 전시를 할거야'라는 메세지를 전달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T2의 미래탐사는 급진적인 기술 발전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던지는 메세지들로 구성된 것처럼 느껴졌다. 바로 앞의 미래부터 더 먼 미래까지 다양한 가정들과 면면들을 관람객에게 보여준다. 


수(SU), <Future Shock> (2019), 싱글채널, 비디오, 20분


어두운 전시장 내에서 다양한 비디오들이 상영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메인스테이지(?)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이 작업을 만났다. 시작부터 던지는 메세지는 강력하다. 


"개인사의 변화 속도를 조절하는 법을 빨리 배우지 않는 한, 우리는 엄청난 적응 붕괴를 겪게 될 것이다."


  영상의 일부 내용은 좀 더 먼 미래의 일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있었지만, 다른 일부는 이미 삶 속에 깊숙히 침투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도에 대한 이야기, 개인화에 대한 부분과 같이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면 바로 파악할 수 있는 측면들이 영상에서 제시되고 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그리고 틱톡과 같은 매체들이 그러하지 않을까. 스스로를 숨길수도 있고, 과장할 수도 있고, 긴 호흡으로 드러낼 수도 아니면 쇼츠나 틱톡으로 짧은 호흡으로 보여줄 수 있다. 무조건 나쁘다고 그렇다고 무조건 좋다고 말할 수 없다. 가치가 있고 없고의 문제를 따지기 보다는, 우리는 이제 '개인사의 변화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파악해야 한다. 사람들은 점점 개개인의 시공간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변형시켜 드러낼 수도 있다. 이러한 방식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말그대로 뒤쳐지는 것 같은 적응 붕괴를 겪게 된다. 


  이러한 적응붕괴 혹은 각각의 시공간을 경험하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 작업은 바로  황웨이슈앤의 <Hei Ye 2020>(2020)이다. 

황웨이슈앤(Huang Wei-Hsuan), <Hei Ye 2020>, 2020, Audiovisual, 29분 08초


 회전하거나, 확대되고 축소되길 반복하는 영상과 다양한 사운드를 표현하는 이 작업은, 다양한 미디어를 맞닥뜨리는 개개인의 경험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멍하니 보고 있자니 조금의 어지러움이 동반한 불편감을 느꼈다. 그러나 이러한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혹은 이 느낌을 즐기며 계속 이 화면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앞서 말한 개인화와 속도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적응붕괴가 이런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부분에서는 AR, MR, VR과 같은 기술들과 로봇과 AI가 발전하고, 다른 한부분에서는 다양한 소셜 미디어들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로봇, 데이터의 시공간과 개개인이 갖는 시공간이 모두 다른데, 이러한 가운데에서 적응을 한다는 것이 과연 쉬울까라는 질문을 해본다. 





  이러한 생각으로 복잡한 찰나에 이 작업이 눈에 들어왔다. 천완전(Chen Wan-Jen)의 <Deep Royal Blue>(2017) 이다. 소셜 미디어, 미래 충격 등의 복잡한 생각들을 한 번에 밀어주는 잔잔하지만 강한 힘을 가진 작업이었다. 



천완전(Chen Wan-Jen), <Deep Royal Blue>(2017), 영상 설치, 컬러, 5분 55초


  밸런스의 중요성을 떠올렸다. 무겁고 진중하고 복잡하게 미래를 논하는 가운데, 대양을 적적하게 유영하는 장면을 보니 전시에 있어서도 이러한 밸런스가 중요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모형의 바다를 보지만 전시장에서 나에겐 진짜 바다처럼 다가왔다. 머리가 편안해지면서 새로운 작업들을 볼 수 있겠다라는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오히려 앞서 말한 <Future Shock>보다 이 작품을 메인에 걸어놓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한편으로는 누군가는 미래가 어떻든 간에 아무런 관심없이 바다에서 수영하며 여유로이 지내는 것을 가장 최선으로 여길 수 있다. 그 또한 그 사람의 시공간이다. 





 이제는 기술과 큰 범위의 삶대신 좁지만 깊은 삶을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과 맺고 있는 환경 그 자체 말고, 환경이라는 범위에서 더 들어가 특정한 주제를 바탕으로 기술과의 접점을 이야기해보는 것은 어떨까. 진행되고 있는 전시 목록을 정리하던 도중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하는 《냉장고 환상》(2021) 전시를 보게 되었다. 냉장고라는 단어에서 시작하여 음식문화와 냉장기술을 아우르는 전시의 흐름을 살펴보며, 미래를 위한 전시들이 이제는 미래 그 자체보다 좀 더 삶에 들어와 작용하는 것이 어떨까라는 작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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